[플랜G] 당신과 나의 이동할 권리

2017.06.05 | 4대강

익숙한 물 내음. 이 물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내가 태어난 곳에 도착한다. 알에서 부화해 7cm의 치어가 될 때까지, 나는 이곳에서 자랐다. 4년 만에 다시 돌아왔지만, 아직도 입 안 가득 들어오던 민물의 냄새가 생생하다. 이 냄새가 먼바다에 살던 나를 이리로 이끌었다. 그때와 같은 고향의 민물 냄새. 먼 여행의 끝이 눈앞에 다가왔다. 꼬리를 더 빨리 움직여 상류로 향한다. 그러나 나를 맞이한 것은 내가 태어났던 자갈이 아니라, 벽이었다. 아주 단단하고 커다란 벽.

 

당황했다. 4년 전 이 강을 떠나 바다로 갈 때, 여기 이런 벽은 없었다. 눈앞에는 막다른 길, 등 뒤로는 지금껏 헤엄쳐 온 푸른 강물뿐이었다. 그 어느 곳에도 ‘이 강은 여기서 끝이 나니 이곳에 알을 낳으세요.’ 혹은 ‘이 길은 막혔습니다. 넘어가려면 이쪽으로 오세요.’와 같은 표시가 없다. 사실 나에게 표지판 따위는 필요 없다. 내가 태어나 떠나온 곳은 이 벽 너머에 있다는 것을 내 코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강의 상류로 올라가려면, 이 벽을 뛰어넘는 수밖에 없다. 바다에서 강으로 들어온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아 힘이 들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알을 낳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왔다. 꼬리로 물을 세차게 밀어내며 벽 위로 뛰어오른다. 그 커다란 벽에 부딪혔다. 지느러미가 찢겼다.

 

당신들은 나를 ‘연어’라 불렀다. 바다에서도 그랬고, 강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연어는 나의 종(種)을 가리킬 뿐, 사실 내 이름은 연어가 아니다. 다른 연어들이 불러주는 이름이 있지만, 당신들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당신들은 나를 늘 연어라 불렀다. 나 말고 다른 연어도 연어라 불렀다. 수천 마리의 각각 다른 연어를 모두 연어라 불렀다. 내가 강과 바다, 물속의 다른 생명과 맺고 있던 관계는 연어라는 이름 뒤에 감춰졌다. 강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아가는,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나의 삶보다 당신들은 나의 살이 얼마나 맛있는지, 달콤한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당신들에게 나는 그저 음식이었다. 도시 곳곳, 반짝이는 간판의 무한리필 연어 집에 찾아가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주황빛의 생선.

 

커다란 연어잡이 배가 호시탐탐 나와 친구들을 노리는 무시무시한 바다에서, 나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네 번의 해를 보냈다. 그리고 알을 낳기 위해 내가 태어난 강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다에서 강으로 들어와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하류에서 중류까지 부지런히 헤엄쳐 왔지만, 이 커다란 벽을 만나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강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전부를 막아 그 어떤 것도 상류와 하류를 오 가지 못하도록 만든 이 벽, 당신들의 언어로 ‘댐’ 또는 ‘보’라고 부르는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가 나를 막고 있다. 나처럼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오는 회유성 물고기는 모두 보 앞에서 무력하다. 우리는 물 밖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다. 물 밖에서는 당신처럼 이동할 다리나 이동수단도 없다. 우리가 가진 건 지느러미와 꼬리가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를 넘으려 애쓰다 지치고 만다.

 

당신들은 물을 얻거나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강을 막는다. 보를 짓고, 짓고, 또 지어서 한국에는 3만 3천 개가 넘는 보가 생겼다. 그렇게 당신들은 제 욕심을 채우려다가 당신들도 모르는 사이 강에 사는 모든 생명의 삶을 제멋대로 바꾸어버렸다. 상·하류를 자유로이 이동할 권리와 안전한 곳에 알을 낳을 권리, 본래의 방식과 습성대로 살아갈 권리를 모조리 빼앗아갔다. 당신들은 도에 지나치게 우리의 삶에 간섭했다. 연어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염려한 인간들이 상류로 올라가려는 우리를 잡아 배를 눌러 알을 꺼내 가는 경우도 있었다. 알을 ‘인공증식’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알을 낳고 생을 마칠 수 없게 되었다. 우리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 걱정된다면, 우리를 잡아 억지로 알을 빼앗는 것보다 보를 없애는 것이 더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도 해마다 가을이면 많은 수의 연어가 알을 빼앗기고 있다.

 

주위에 하나둘, 친구들의 시체가 보인다. 이곳에서 함께 태어난 나의 친구들. 우리는 우리의 집과 다니던 길을 막을 권한을 당신에게 준 적이 없다. 우리에게 이동은 생존의 문제다. 우리는 살기 적합한 곳으로 이동하고, 먹이를 찾아 이동하고, 새끼를 낳기 위해 이동한다. 이동을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다. 찢겨나간 지느러미가 아프다. 얼마나 더 힘을 낼 수 있을까. 커다란 보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작다. 계속 뛰어오르다 힘이 빠지면 이곳에서 죽게 되겠지. 피 냄새가 난다. 입 안 가득 퍼지던 고향의 민물 냄새에 친구들의 피 냄새가 섞여 들어온다.

 

빅이슈 155호에 실린 글입니다.

녹색연합 이다솜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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