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탐사단 8기 “생각하는 현진”

어느덧 산양 조사를 시작한지 20일. 절반 남짓 지난 지금, 나는 3가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첫째는, 매번 산에 갈 때마다 기록하는 것들의 의미이다.

매번 수북이 들고가도 번번히 다 채워 뒷장을 메꾸게 하는 야장 위의 글자들. 최승혁 활동가가 지친 몸을 이끌고 던지듯 내려놓은 GPS와 함께 찍힌 산양 똥들. 무인 카메라에 찍힌 몇 천장의 사진들 속 생명체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야장을 적어 내려갔었다. 산양 똥의 색이 흑갈색이면 어떻고 회색이면 어떻다는 거지? 헌데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 수많은 기록이 모여서, 비로소 산양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산양이 방금 싼 똥은 녹갈색에 윤기가 흐른다. 오래된 똥은 말라 비틀어져서 회색이거나 흰색 곰팡이가 핀다. 그 색만으로도 산양이 이 자리에 언제 들렀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똥이 뭉쳐 있으면, 소화를 잘 못한 산양의 것이다. GPS와 함께 찍은 산양 똥의 규모로, 그곳이 오래, 자주 쓰이는 똥자리인지, 지나가다 툭툭 흘린 똥인지도 보인다.

야장을 보면 그곳에 산양이 어떻게 머물렀는지, 어디를 보고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다. 새가 지나간 허공에 발자국을 보고 그 새를 알 수는 없다. 헌데 산양의 흔적을 보며 그 자체를 본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최근 똥얼마 지나지 않은 산양의 배설물. 윤기가 흐르고 있다.

둘째는, 안전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관한 것이다.

산에서 발을 접질려 한 번 넘어진 뒤로는, 심리적 부담감이 적지 않다. 발목을 다시 다칠까 두려워 이전에는 스스럼 없이 내딛었던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바위를 넘을 때면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먼저 머리를 채운다.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무릎에 긴장을 많이 해서 코스가 짧은 길이더라도 산에 다녀오면 무릎이 얼얼하던 적도 있다. 어쩌면 조심조심 걷는 것이, 더욱 안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걸음 내딛을 때 마다 공포가 든다면, 나의 심리적 안정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발목을 다친 지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는, 그런 부담감이 어느 정도 줄었다. 위험해 보이는 곳에서는 무조건 몸을 낮추고, 잡을 수 있는 것을 찾는다. 단, 나뭇가지를 잡을 때에는 힘을 너무 주지 말고 그 나무가 지탱할 만한 것인지 신경 쓴다. 상황에 맞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안전에 한 발짝 더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 비록, 바지는 본디 흙색인지 다른 색인지 모르게 되지만.

화이팅

매일 조사 시작 전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을 외친다.

셋째는, 그날그날이 똑같아 보이는 일상들의 새로움이다.

산을 오르고, 산양의 흔적을 기록하고, 다시 내려오고, 집에 돌아오면 그 날 기록한 것들을 정리한다. 어찌 보면 매우 단조로운 일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하지만 매일 산에 들면서 한 순간도 지루하다고 느꼈던 적이 없다. 어제의 산과 오늘의 산은 다르다. 다른 장소에서, 시간 마다 다른 빛깔과 온도를 낸다.

햇빛이 따사로운 날, 눈앞으로 쏟아지는 반짝거림에 눈을 뜨지 못할 때가 있는가 하면, 부슬비가 오거나 안개가 촉촉히 끼면 땅과 나무에 있는 수많은 거미줄이 하얀 색으로 빛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산양이 좋아하는 탁 트인 바위지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항상 일렁이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선사한다.

이 곳에는 손님도 많이 찾아온다. 첫 주에는 일정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셨던 최승혁 활동가가 합류했다. 바쁘신 서재철 위원님도 산에서 침엽수에 대해, 지도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셨다. 이전에는 오소리, 멧돼지, 삵 등의 배설물과 발자국에 집중하였는데, 이번 주에는 김진원 선생님이 오셔서 여러 식물들의 이름과 생활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사람이 한 명 들고 나기만해도 누구와 함께하냐에 따라 산의 분위기가 확 바뀐다. 다채로운 산행이다.

하루하루 산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면서 내가 얼마나, 어떻게 달라질지 걱정 되면서도, 기대되는 나날들이 지나간다. 

가곡면 풍곡리 조사  손님들과 함께한 산양 조사

글 : 야생동물탐사단 8기 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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