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착취해 얻는 건강, 원하시나요?

2017.10.12 |

철창 속 곰들의 비명

평소보다 조금 일찍 눈을 떴다. 지난 주, A 신문사에서 곰 사육농가와 녹색연합 사육곰 활동을 취재하고 싶다고 했다. 오늘이 지방의 한 사육농가에 가는 날이다. 신문사 앞에서 기자와 만나 취재차량을 타고 사육농가로 향했다. 기자는 사육곰과 관련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기자의 물음에 대답하는 중 머릿속엔 열악한 사육장이 아른거렸고 심장 박동 수가 조금 빨라졌다. 코에서는 사육장 냄새가 나는 듯했다.

2시간 정도를 달려 농가에 도착했다. 다시, 끔찍하고 안타까운 사육장 현실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기자는 농장주와 대화하며 취재를 시작했고 사진기자는 노후한 사육장과 오랜 시간 철창에 갇혀 아무런 의욕과 의지가 없는 사육곰의 슬픈 눈을 찍으려 고군분투했다.

사육장의 처참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낡고 오래되어 녹슨 철창과 어두침침한 분위기는 외부인이 쉽사리 다가설 수 없게 만든다. 힘겹게 한 발짝 다가서면 이내 분변과 썩은 사료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찌른다. 움찔하게 되지만 참고 앞으로 나아가면 그제야 곰이 눈에 들어온다. 대여섯 마리가 한 우리에 들어가 있는데 어린 곰들은 대개 상처나 장애가 있다.

넉넉하지 않은 사료와 열악한 환경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곰이 어린 곰들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작은 상처도 모자라 팔 다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철창에 혼자 지내는 곰은 의미 없는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보인다. 철창 끝에서 끝까지 계속해서 오가고 머리를 자꾸만 크게 돌린다.

좁은 곳에서 오랜 시간 갇혀 지내는 것이 정신적 장애로 발현했을 터이다. 사람을 보면 공격성을 드러내는 곰도 있다. 포효하고 철창에 부딪히며 사람을 위협한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온전한 곰은 찾아볼 수 없다.

1980년대 초반 정부는 농가 소득 증대 일환으로 재수출 목적의 곰 사육을 권장했고 당시 일본, 말레이시아, 대만 등지에서 곰이 들어오게 됐다. 지금 사육되는 곰은 이 곰들의 후손이다. 80년대 초반 400여 마리 곰이 수입됐고 거듭된 증식으로 2000년대 중반에는 그 수가 1400여 마리로 늘어나기도 했다.

2014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증식금지 사업이 완료되며 더 이상 이 끔찍하고 처참한 철창에서 태어나는 곰은 없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36개 농가에서 600여 마리 곰이 웅담채취를 위해 사육되고 있다.

증식금지 사업이 완료됐다고 개체수가 줄어들길 마냥 기다려야 할까. 인간의 욕심과 그릇된 보신문화로 태어난 이 곰들에게 마지막이라도 곰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줘야 하지 않을까. 환경부는 증식금지 사업으로 모든 할 일을 끝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증식금지 완료

남은 개체 문제가 숙제로 남아있지만 증식금지 사업 완료는 한국 곰 사육 역사에서 큰 전환점임에 틀림없다. 녹색연합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긴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의 지지와 성원, 그리고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WAP는 녹색연합이 사육곰 활동을 시작한 2003년부터 함께한 단체다. 1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한국 사육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 기술 지원을 제공했다. 특히, 중요 사안이 있을 경우에는 직접 한국까지 방문하며 지지하고 힘을 보탰다. 현재 WAP는 아시아 지역 내 웅담 산업을 철폐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WAP(World Animal Protection,전 WSPA)는 1981년 설립된 동물보호단체다. 14개국에 지역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지역적/국제적 동물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사육곰 대책위원회가 큰 역할을 했다. 대책위원회는 2010년 사육곰 특별 법안이 발의될 때 법안 관련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녹색연합 제안으로 구성된 협의체다. 협의체는 환경부, 전국사육곰협회, 전문가,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했다. 특별법 발의 이후에도 중요 사안을 논할 때는 이 자리를 통해서 이뤄졌다. 증식금지 사업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도 대책위원회 회의를 통해서다.

2012년, 대책위원회 결정으로 환경부는 전체 사육곰 현황을 파악하고 이후 관리 대책을 모색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를 기반으로 이후 대책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수 있었다. 여러 대안 중 정부가 모든 사육곰을 사들여 관리하는 ‘전량매입안’이 사육곰 정책 폐지 취지를 잘 살리고 국민 정서에도 잘 부합했다.

전량매입안이 선택되고 추진됐다면 가장 이상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부 반대로 전량매입안은 무산되고 차안이었던 증식금지조치가 선택됐다. 반대 이유는 ‘사적재산 가치에 대해 국가가 보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참극이 정부 정책 혼선에서 시작된 것을 생각하면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이다.

사육곰 특별법이 통과되지 못했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었기에 증식금지 사업 기간 동안 예산이 삭감되지 않을까 걱정해야 했다. 증식금지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버티는 농가를 설득하는 작업도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증식금지 사업이 완료됐다. 국제 사회는 이 성과를 고무적인 성과로 평가하며 한국의 사육곰 정책이 빠른 시일 내로 종식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육곰 관련 특별 법안은 3차례 발의됐고 2개 법안은 녹색연합이 직접 관여했다. 주요 내용은 사육곰 증식금지조치, 국가 주도 전량 매입, 매입한 곰의 관리다.

흙 밟고 뛰노는 곰 볼 수 있기를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실제 웅담 수요다. 한국 웅담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웅담 수요는 과연 줄어들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중국과 베트남, 새롭게 웅담 공급처로 떠오르고 있는 미얀마와 라오스의 주요 고객은 한국 관광객이라고 전해진다. 한국 웅담은 비싸기 때문에 값싼 해외 웅담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보신 관광이다.

사육곰 문제의 깊은 곳 한 켠에는 그릇된 보신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2005년 녹색연합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웅담 구입 경험 및 구입 의사가 있다’는 응답은 4.4%로 나타났고 웅담채취 목적의 곰 사육 찬성 비율도 9.4%로 나타났다. 구입 용도는 본인이나 타인의 건강식품 혹은 병 치료 목적이었다. 비교적 낮은 비율이지만 여전히 보신문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웅담채취용 곰 개체를 줄여나가고 사육곰 정책을 폐지시키는 것과 더불어 왜곡된 보신문화를 개선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녹색연합은 첫 사육곰 활동이었던 웅담거래실태조사와 유사하게 올 하반기 주요 약재 시장을 다니며 약재상 조사를 실시한다. 웅담을 포함해서 야생동물을 이용한 약재 종류, 약재 출처, 유통 경로 등 제품 현황을 조사할 계획이다. 더불어 곰 사육과 웅담 관련 설문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2017년 한국 보신문화와 웅담수요를 파악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현장 취재를 다녀오고 일주일 뒤, 해당 기사가 지면과 인터넷에 실렸다. 사진 속 곰은 너무도 지치고 슬퍼보였다. 이 곰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더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로 이 곰이 뜬장이 아닌 흙을 밟고 신나게 뛰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최승혁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사진: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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