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희망/회원에세이] 동백꽃 다시 핀다, 무모하고도 열정 가득했던 나의 모험 – 박윤미회원

동백꽃 다시 핀다, 무모하고도 열정 가득했던 나의 모험

 

나의 삶은 평범하며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웠다. 2017년 사순기간에 성당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탄소단식을 제안한 것을 시작으로 대림절에는 ‘절전, 즐거운 불편’(절전운동)을 했다. 제안하고 그 자리를 지켰을 뿐인데 파문처럼 번져나가며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이어졌다. 2018년에는 ‘행복한 절전, 내가 끌게요’라는 제목으로 절전운동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절전소모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절전이 곧 타인을 위한 발전’이라는 멋진 말은 나의 마음을 끌었다. 그러나 마음 뿐, 버거웠다. 생태환경활동은 단지 절전만이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요소를 돌아보게 했다.

 

어느 날 녹색순례 ‘동백꽃 다시 핀다’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뛰었다. 오랜 숙제처럼 안고 있던 강정과 4.3, 9박10일 간의 도보순례, 게다가 활동가들과 함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바닥에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통증이 있는 상태여서 내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런데 간절함은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 그것에 도전하기로 나를 이끌었다.

 

매일 척추교정을 받고 근력운동을 했다. 처음에는 10분도 힘들었던 경사로 러닝머신(수동) 걷기가 한달이 지나자 1시간까지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주변에서도 나의 변화를 알아챘다. 지인들은 나의 모험과 노력을 지켜보았다. 무모하다고 말리는 지인도 있었고, 자기는 못하지만 꼭 성공하길 바란다고 빌어주는 지인도 있었다. 걷기 운동 이외에 다른 여력이 없는 나를 위해 배낭도, 침낭도, 우비도 지인들이 구해주었다. 날마다 조금씩 두둥실 떠올라 하늘의 별처럼 빛나던 녹색순례에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9박10일,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그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순례 첫날은 제주도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택시 기사 아저씨도 만나고, 3살 때 4.3으로 아버지를 잃은 유족도 만났다. 길에서 먼저 4.3 이야기를 들었다. 이성권 생태관광협회 국장님이 4.3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셨다. 무참한 살상을 겪고도 침묵으로 살아남아야 했던 제주도민들의 삶이 충격적이었다. 순례 둘째날은 <레드 헌트>의 조하성봉 감독님과 함께 사려니 숲길을 헤치고 이덕구 산전에서 제를 올렸다. 조하성봉 감독님은 4.3 자료는 많으니 그 자료를 스스로 찾아보고 왜 4,3이 일어났는지, 4.3이 우리에게 어떤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라고 요구했다. 어떤 사건을 겪은 것과, 결과로서 그 사건을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밀푀유처럼 무수한 결이 그 안에 있다. 얄팍한 동정이나 분노, 진위 따지기는 금물,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그들 마음의 여정을 함께 걷는 것, 녹색순례는 그렇게 함께 굽이굽이 결을 따라 걸었다.

 

사려니 숲길 24킬로를 걷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고비였다. 순례를 끝까지 할지, 아니면 돌아서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울창한 삼나무길도 유채꽃밭도 말도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하나 둘, 하나 둘, 발걸음 바르게 걷는 것에만 집중했다. 덕분에 끝까지 걸었다. 24킬로 걷기를 성공하고 나서야 비로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하루종일 비가 내려도 아무리 힘들어도 웃을 수 있었다. 주변의 배려와 도움이 있었기에,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파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기뻤다.

 

거문오름에서 마을주민들만이 안다는 길로 들어섰을 때 그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동이었다. 돌 위에서 폭신했던 이끼, 길을 가늠할 수 없게 쌓인 낙엽, 상산나무의 향긋한 냄새가 감각을 깨웠다. 비를 맞은 나무와 풀들은 생명력이 가득했고, 섬 휘파람새가 아름답게 노래했다. 모든 것이 감탄과 경이였다. 그래서 강정을 보는 것이 더 가슴 아팠다. 성산의 제2 공항 예정지의 아름다움 또한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생명이 생명에게 가하는 폭력, 그렇게 쉽게 때려 부수고 인공구조물을 건설하는, 또 다른 폭력이 예고된 현장이다. 4.3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제 그만 하자, 함께 살자.

순례를 함께 하며 활동가들의 모습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연령 차이, 직급의 차이가 있을텐데 느껴지지 않았고, 수평적으로 느껴졌다. 활동가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쓰레기 분리수거가 아니라 쓰레기를 안만드는 삶이란 것을 말해줬다. 그 흔한 생수병 하나 없고, 비닐 쓰레기도 별로 없으며, 총량은 도저히 40여명의 쓰레기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휴지 쓰레기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 환경운동이 단지 구호나 운동 차원이 아니라 일관성 있게 그들의 삶의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매일 1회용 샘플 화장품 껍질과 쓰레기가 된 비닐을 버리면서, 식탁에서 쓰고 버린 티슈를 수북히 남기면서 엄청 부끄러웠다. 그래서 “적게 갖고 적게 쓰는 단순 소박한 삶이 영원한 진보”라는 말이 더 가슴에 남았다.

 

9박10일의 녹색순례, 무모하고도 열정 가득했던 나의 모험은 끝났다. 지인들의 부러움과 환영 속에 개선장군처럼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내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식탁 위에서 냅킨을 뽑으려다 손이 멈칫 한다. 남은 야채를 냉장고에 보관할 때 비닐을 뽑으려다 멈칫 한다. 쉽게 사마시는 생수 대신 텀블러를 더 자주 찾는다. 일을 하다 어려움을 겪을 때 제주 동요를 기억한다. 고찌글라, 고찌가게(같이 가자, 함께 가자)!

 

글: 박윤미(제21회 녹색순례단)

* 나무와 걷기 그리고 사진을 좋아한다. 무언가 탈바꿈이 필요한 시기, 나비가 되겠다고 녹색순례에 갔다가 애벌레로 즐겁게 사는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녹색순례 스케치 영상 (이다솜 촬영, 편집)

 

녹색순례 오마이뉴스 기사 (신수연, 임태영, 정규석 작성)
기사1. 제주 사려니 숲길에서 만난 비극 http://omn.kr/qugg
기사2. 면면은 다채롭고 아름다워야한다 http://omn.kr/quql
기사3. 제주 곳곳의 학살현장, 마주하자니 먹먹 http://omn.kr/r4w3
기사4. 132구 시신, 한데 묻은 사연 http://omn.kr/r4w7
기사5. 너무 많이 죽었다, 아름다움도 죄스러운 제주 http://omn.kr/r4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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