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딘가에서 또 다른 가리왕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요~

2018.06.21 | 행사/교육/공지

고등학교 교사인 저는 연간 학교 행사 중 체육대회를 가장 좋아합니다(경쟁에 치우진 ‘대회’라는 용어 대신, 학교에서는 ‘사제동행 체육행사’라고 부릅니다). 아이들이 사각 벽을 벗어나 학교의 온 공간을 자유롭게 즐기는 것도 곁에서 보기 즐겁지만, 저 스스로 운동이 즐겁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등한 조건 하에 자신의 능력으로 정정당당하게 상대방과 일대일로 경쟁하는 것과 다함께 힘을 모아 승패에 상관없이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를 통해 배워온 삶의 자세와 마음가짐은 지금 저의 중요한 일부분입니다. 운동을 하는 것을 즐기는 만큼 공정한 스포츠 경쟁을 보며 선수들의 노력과 땀의 결실을 응원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동계 올림픽이 개최된다고 들었을 때, 단순히 생활체육인의 입장에서 환영하였고 직접 현장을 즐기며 대회에 기여할 수 있는 자원봉사에 지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유치 과정에서의 문제나 대형 스포츠 이벤트로 인한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무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공적인 개최를 바라는 마음,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연을 즐길 수 있다는 기대감과 올림픽으로 인해 발생할 자연 훼손, 환경오염, 갈등에 대한 우려 사이에서 자원봉사 최종면접을 망설일 정도로 고민도 했습니다. 결국, 살면서 다시없을 기회라 생각하며 평창 동계 올림픽 자원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에게 보람 있고 즐거운 경험이 되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하얀 설원의 경기장이 울창한 숲이었다는 사실을 잊을 수는 없었습니다.
시민의 힘으로 교체된 새로운 정부는 평창올림픽위원회가 내건 평화, 문화, 경제, 환경 올림픽이라는 목표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전 정권과는 다르리라는 기대감에, 면접과 교육을 거치며 걱정하던 때와는 달리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저와 같은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던 덕인지 여러 우려와 달리 전반적으로 성공적이라는 평가 아래 올림픽과 패럴림픽 대회가 마쳤습니다. 하지만 대회의 마무리를 보며 돌아서는 제 걸음을 붙잡는 것은 추억과 아쉬움이 아니었습니다. 밝은 조명이 꺼지고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사라진 채 남겨진 경기장을 보자니, 덮인 눈이 녹고 난 다음 드러날 벌목된 땅과 잔해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큰 잔치를 거들었다는 보람보다 잔치 한번 열겠다고 오백년 숲을 베어내 신나게 땔감으로 써버린 듯한 죄책감이 들어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에서 만난 가리왕산
저는 평창 올림픽 기간 중 우크라이나 선수단을 지원하며 평창선수촌에서 주로 근무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설상 종목 경기가 많아 근무 차 선수단원들과 함께 스키경기장을 찾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남자 알파인스키 경기 결과가 예상보다 부진하여 다소 실망한 채 다같이 선수촌으로 돌아온 날, 경기 정보를 정리하던 중 그 가파른 하얀 슬로프 경기장이 가리왕산의 오백년 숲이 베어진 자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리왕산 하봉을 오르는 길은 정선알파인경기장이라는 이름으로 용평리조트에 마련된 용평알파인경기장과 함께 슈퍼대회전, 알파인스키 경기에 활용되었습니다. 2주 남짓한 올림픽 대회기간에만 사용되는 한시적 시설을 만들기 위해 수백년 동안 지켜온 천연숲을 훼손하여 공분을 샀습니다. 저는 대회 이후 숲을 복원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싶었고 믿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 스스로 눈을 감고 저 자신을 속인 것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파헤쳐진 산과 베여진 나무가 있던 모습 그대로 복원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이기적인 회개일 수 있지만, 그 땅을 밝고 지나간 죄책감과 적어도 다시 나무가 심어지고 숲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가리왕산을 꼭 다시 와보고 싶었습니다.

읽다가 구겨버린 신문지처럼 폐허로 남아있던 가리왕산
평창 올림픽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 졸업한 제자 중 두 명에게서 자기들도 봉사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중 한명(정유라(22))과 계속 연락이 맞닿아 녹색연합의 현장 출동으로 가리왕산에 함께 다녀왔습니다. 우리가 순간의 이익을 위해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자연을 훼손한 만큼 저 다음 세대와 함께 그 곳에 가보고 싶었고, 그 아이도 자기 또래와 자기 다음 세대에게 스스로 보고 느낀 것을 알려줄 것이라 희망했기 때문에 함께 가길 권하였습니다. 새벽 일찍 만나 포항에서 정선까지 차를 타고 가며 푸른 동해안과 더 짙푸른 산들을 지나왔습니다. 울진을 지나 강원도를 향하면 향할수록 첩첩이 쌓여 푸르른 산들을 보고 제가 감탄하면 길동무가 옆에서 검색해본 다음 산의 이름을 얘기해주고 등산을 좋아하시는 할머니 따라 산을 다닌 얘기도 해주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산천에 대해 같이 얘기 나누며 가리왕산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고 보니,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황량한 계곡과 앞자락에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들이 주위 풍경과 너무 이질적이며 동시에 너무 파괴적이어서 둘이서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시멘트로 덮인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보니 예전에 선수단 차량을 타고 내렸던 주차장(P3) 자리도 보이고 선수구역(RA)으로 올라가기 위해 이용하던 곤도라 탑승장도 보였습니다. 읽다가 구겨버린 신문지 마냥 폐허로 남아 있는 모습이 황망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항상 깨끗하게 닦여있던 슬로프는 눈이 녹고 나자 벌건 자갈밭을 드러내고 있었고, 요 사이 내린 비에 쓸려 내려온 토사가 산사태를 일으켜 폐건물을 덮친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잔인한 행위에 동참한 것 같아서 비탈진 슬로프를 거슬러 올라가고 숲길을 지나 내려오는 동안 마음이 자꾸만 무거워졌습니다.

함께 간 제자에게 정선까지 오던 길에 얘기한 게 한 가지 있었습니다. 올림픽 자원봉사가 자랑스러운 추억이 되려면 가리왕산의 모습을 기억하고 복원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하지만 가리왕산 현장을 보니 그런 생각조차 양심의 가책을 덜고자 하는 이기심에서 나온 것 같았고 우리의 무관심과 무능력, 무대책성에 화가 났습니다. 길 중간에서 녹색연합 활동가 한 분이 저에게 예선 이 길에 나무와 숲이 온전했던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키장 건설 강행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녹색연합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반대에 앞장서 왔다는 걸 알고 있지만, 뉴스로만 보고 듣고 직접 와보지 못했기에 ‘오고 싶었지만 못 와보았다’는 대답으로 부끄러움을 감추었습니다. 우리 숲과 산이 파괴된 현장에서 반성의 마음으로 움츠러들었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들과 지켜가야 할 것들, 알아야 할 것들,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즐거움에 훼손된 자연에 눈감고, 무감각해지는 것이 위험하지 않을까
세계인의 축제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행사나 축제,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들은 해마다 지구 곳곳에서 개최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지향한다는 명목을 갖고 있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남북 간의 대화가 재개되는 교두보가 되기도 했듯 그러한 행사들은 단순히 경연과 축제 이상의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화합과 평화도 이 땅이 푸르고 맑을 때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이며, 생존과 지속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갈등과 위기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간적인 소비의 즐거움에 치우쳐 자연을 훼손하고 그에 눈감는, 그리고 심하게는 무감각해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렇게 제가 올림픽에서 경험하고 느낀 진정한 가치와 올림픽으로 인해 생겨난 피해와 문제점, 이를 지켜보고 난 다음 깨달은 바를 공유하는 것이 별 것 아니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입니다.

 

 

 

 

 

 

 

 

 

푸른잎으로 덮이고 물길이 제길따라 흐르는 가리왕산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처음처럼 다시 학교 얘기로 돌아가자면, 지난 봄방학 평창 올림픽 자원봉사를 마치고 왔을 때 아이들이 호기심에 차 이것저것 많이 묻기도 하고 궁금해 했습니다. 기말고사가 마치고 우리에게 조금 더 여유가 있을 때 멋진 수업으로 준비해서 소개해주마 하고 약속했습니다.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며 기말고사 준비가 마치고 나면 올림픽뿐만 아니라 가리왕산의 이야기를 담은 자료를 만들 생각입니다. 수업 후 느끼는 감상과 생각은 아이들의 몫이지만, 수업을 통해 희망하는 바는 아이들이 앞 세대의 잘못된 선택을 답습해서는 안 되며 가리왕산을 위해 그리고 세상 어딘가에서 또 다른 가리왕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에 아이들이 공감해 주리라는 것입니다. 끝으로 이런 희망의 재료를 마련하고 지켜주는 녹색연합과 회원 분들에게 유대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가리왕산 하봉을 향할 때는 푸른 잎이 덮이고 물길이 제 길 따라 흐르는 숲을 지나 가보길 희망합니다.

 

 

 

 

 

 

 

 

 

 

 

 

 

*글: 김경민 회원/ 사진: 김경민회원, 김영남 회원,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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