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과 함께 걷는 금강소나무숲길

2018.09.22 | 산양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걸어야 하는가

– 산양과 함께 걷는 금강소나무숲길

지난해 5월 저녁 뉴스를 장식했던 지리산 반달가슴곰 km-53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지리산과 약 80km 이상 떨어진 수도산에서 반달가슴곰이 발견된 사건이다. 웅담 채취를 위해 사육되고 있는 반달가슴곰이 탈출한 것인지, 복원한 지리산반달가슴곰인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곰인지 우왕좌왕했다. 사육농가에서는 탈출한 개체가 없다고 했고, 종복원기술원은 곰에 표식기가 없고 더구나 그렇게 멀리까지 갔을 리 없다고 했다. 사람들 눈에 띈 곰은 당장에 포획되었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표식기가 탈착되어 그간 이동경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복원개체 km-53으로 확인되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개척해 찾아 나선 km-53은 이후 두 번이나 포획되었고 교통사고까지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철창 신세를 지고 있다.

지리산 가까운 백운산에 둥지를 틀었던 km-55는 두 달 전 올무에 걸려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지난 4월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동물1급인 반달가슴곰 복원 목표인 최소존속개체군(MVP) MVP(minimum viable population, 하나의 집단이 존속할 수 있는 최소의 개체수를 가진 집단)
50마리를 예정보다 빨리 달성했다며 자축한 지 한 달만의 일이었다. km-53, km-55 모두 정부가 수천 억 원을 들여 복원한 생명들이다. 야생동물이 새로운 서식지를 개척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지리산 권역을 벗어나면 위험에 처하는 이유는 뭘까.

국민소득이 증대하고 5일 근무가 정착되면서 국민 여가 활동이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자연자원을 이용한 휴양 욕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매년 평균 3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지리산국립공원을 비롯한 산악형 국립공원은 데크와 돌계단 등 탐방 편의를 위한 각종 시설물이 정상부까지 연결되어 있다. 이로 인한 탐방압력으로 극심한 훼손이 반복된 지 오래다. 실제 국립공원의 예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탐방로와 각종 시설물 정비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호랑이와 곰, 표범 같은 대형 포유류가 백두대간을 활보하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언뜻 매우 낭만적이다. 그러나 실상 우리나라 야생생물의 마지막 안식처라고 이야기하는 국립공원에서 이들이 사람의 간섭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 반달가슴곰이 50개체 이상 살아가는 지리산국립공원 탐방로에는 곳곳에 ‘곰출현 주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구석구석 탐방로와 도로가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모두 조각나 있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의 주인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공존’과 ‘상생’을 이야기하지만 사람과 야생동물이 같은 공간에서 사이좋게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공존’에는 그만한 댓가가 따른다. 우리는 지리산반달가슴곰을 위해 지리산국립공원을 내어 줄 수 있을까. 야생동물을 위해 탐방 인원을 제한하고 극히 일부의 탐방로만 이용하는 ‘공존’을 선택할 수 있을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 주변에 야생동물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탐방로를 발견할 수 있다.
지리산둘레길을 떠올려보자.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해 ‘공정여행’, ‘생태관광’ 등의 개념이 도입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한 여행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했다. ‘생태관광(ecotourism)’은 1983년 멕시코의 Ceballos Lascurain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다(Ceballos Lascurain, H. 1996). 홍학(붉은 학)의 서식지인 멕시코 유카탄 북부의 마리나(marina)의 개발을 막기 위해 자연자원을 관광 상품화 하는 생태관광을 개발할 것을 제안하였다. 홍학의 서식지도 지키고 지역 주민들도 관광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혜택을 받는 것이다. 그는 생태관광을“자연경관을 학습하고 감상하고 즐기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그 지역의 야생동물만이 아니라 기존의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관광으로서 비교적 평온하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경관이 우수한 지역으로 여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Ceballos Lascurain, 1988).

지리산둘레길은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기본 계획 구상 단계에서 생태관광의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성찰의 길, 순례의 길의 의미를 담아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고 자연경관과 이질적인 시설물들은 넣지 않았다. 종주형 산행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산 정상을 ‘정복’하는 대신에 멀리서 산을 조망하고 구불구불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 3개 도 5개 시군과 120여개의 마을이 지리산둘레길 연결된다. 오고가는 관광객들의 쓰레기만 봤던 지역 주민들은 둘레길을 직접 관리하고 운영하며 이는 지역사회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지리산둘레길의 기본계획에 참여했던 녹색연합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사례를 고민했다. 지금은 울진군의 대표 브랜드가 된 ‘금강소나무숲길’이다. 여의도의 35배에 달하는 거대면적이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묶여있으며 보호구역으로는 가장 규제가 강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 자리하고 있어 경관과 생물다양성 면에서 어지간한 국립공원에 뒤지지 않는 곳이다. 또한, 이웃한 삼척과 더불어 남한에서 가장 많은 산양(멸종위기종1급/천연기념물 제217호)이 서식한다. 동북아 일대에만 살고 있는 아무르 산양의 최남단 집단 서식지, 남방한계선이다. 산양이 7, 8부 능선의 험준한 암릉을 자유자재로 뛰어다니는 하늘이 내린 생태계의 보고이며 십이령을 울고 넘었던 보부상의 애환이 깃든 척박한 애증의 땅이기도 하다.

사라진 십이령길이 ‘금강소나무숲길’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마을 공동체도 유지할 수 있는 길. 산양도 살고 담비도 살고 주민도 사는 ‘공존’의 길은 무엇일까. 전문가, 시민단체, 주민들이 머리를 맞댔다. 처음 길을 조성할 때만 해도 구름다리, 데크, 조형물 등의 탐방객 편의 시설을 놓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주민들은 많은 유혹을 마다하고 있는 그대로의 길에 찬성해주셨다. 돌계단에 쓰이는 돌 하나와 나무 조각 하나도 숲길에 있는 것들을 사용해 이질감이 전혀 없도록 했다. 가장 많은 손길이 들어갔음에도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듯 전문가들도 감탄하는 길이다. 이렇게 13.5km 중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소박한 원두막 쉼터와 간이 화장실만이 있다. 탐방로 주변에 대한 자원조사와 생태조사만 2년 이상이 소요되었고 옛날 보부상들이 울진 흥부장에서부터 봉화, 영주, 안동 등 내륙지방으로 행상을 할 때 넘나들던 십이령(열두고개) 중 네 고개를 지역주민들과 발품을 팔아 고스란히 살렸다.

1890년경 울진과 봉화(춘양)를 왕래하던 보부상들을 도와주었던 접장 정한조와 반수 권재만에 대해 은공을 기리는 비석이 탐방객들을 맞이한다. 탐방객은 등짐 대신 배낭을 매고 금강소나무숲길을 걷다보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지난다. 곧게 뻗은 금강소나무가 기품있게 내려다 본다. 힘들게 넘은 보부상 고갯길의 고단함을 모두 날려주는 구간이다. 이 아름다운 길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금강소나무숲길을 조성하며 오랜 시간 가장 많은 공을 들여 탄생된 것이 바로 예약탐방가이드제 구간별로 하루 80명~100명 인원을 제한하며 1일 1회 탐방으로 전 구간을 가이드가 해설하며 동행한다. 숲길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시행되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의 식물과 동물을 속속들이 잘 아는 지역주민들은 숲해설사가 되었고 이는 고용창출과 소득에 직접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이용자들도 당연히 작은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한다. 인터넷을 통해 반드시 사전예약을 해야 하고 하루 80명 이상 탐방할 수 없다. 오전 9시에 모여 전 구간을 숲해설사와 동행해 정해진 길로만 가야한다. 처음 예약탐방가이드제가 익숙하지 않은 탐방객들은 마을로 무작정 찾아와 숲길을 걷겠다며 떼를 쓰기도 했다. 1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예약탐방가이드제’라는 것이 정착이되었다. 탐방객의 숙박과 도시락은 지역주민들이 제공하면서 수익을 얻는다. 이제 5구간으로 늘어난 금강소나무숲길은 모두 예약탐방가이드제로 운영되고 있다. 숲길을 관리하고 운영하기 위한 비용은 모두 정부(산림청)에서 지원한다. ‘금강소나무숲길’이 13.5km로 시작해 확장되면서 ‘예약탐방가이드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의 지원, 주민들의 참여, 탐방객들의 이용 등 세 박자가 모두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걷기는 하나의 국민 레저 문화로 자리 잡았다. 생태관광은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 가서 휴양만 하고 오는 관광이 아니다. 배기가스만 뿜으며 지역에 쓰레기와 먼지만 남기는 관광은 이미 전국에 많지 않은가. 지리산둘레길에서는, 울진에서는 마을에서 소비하고 마을의 문화와 동화되어 보자. 하루 이틀은 두천리 주민이 되고 소광리 주민이 되어 걸어보자.

아름다운 자연을 지켜주신 지역주민들게 감사한 마음으로 길을 나서자. 야생생물의 서식지에 다녀가는 손님의 마음으로 숲에 들어서자. 우리의 걸음을 재촉하는 데크와 시설물들이 다른 생명에게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려보자.
정해진 시간, 정해진 길을 걸으며 지금 내가 지나는 이 길은 산양도 지난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글: 배제선(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 사진: 녹색연합

*녹색연합 회원과 함께 하는 울진 생태여행에 참여하세요
– 일정: 10.27(토)-28(일)
– 장소: 울진금강소나무숲길 및 동해 바다
– 인원: 20명
– 문의: 녹색이음팀 허승은 (070-7438-8537)
– 구체적인 일정이 나오면 다시 안내드립니다. 홈페이지와 이메일을 확인해주세요~

  • 위 글은 녹색희망 264호에서도 확인하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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