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동자가 아프면 마을도 아프다, 마을이 아프면 노동자도 아프다

2018.10.18 | 유해화학물질

여기 마을 전체가 아픈 곳이 있다.

마을주민 70여 명 중 17명이 암에 걸려 투병을 하거나 사망했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마을의 오분의 일이 암에 걸리는 동안, 주민들은 마을 경계에 위치한 아스콘 공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스콘 공장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 같다고 아침이면 역겨운 냄새가 사람들을 어지럽게 하고 자주 빨래와 텃밭의 작물들 위로 검은 검댕가루가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국회와 지자체를 찾아다녔다.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 내기마을이 뉴스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때다.

 

국립암센터가 지난 2013년 내기마을 주민건강피해에 대한 기초현황조사를 발표하면서 그 심각성이 주민들의 일방적인 주장에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국립암센터의 조사 결과, 마을 남성의 폐암 발생이 전국 수준의 8~10배였다. 이제 남은 것은 주민들의 집단적 암 발병이 무엇 때문인지 알아야 하는 일이다. 질병관리본부와 남원시는 2014년 서울대 백도명 교수에게 ‘남원 내기마을 암 발병 역학조사’를 맡겼다. 연구의 결과는 주민들의 의심과 주장이 다르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스콘 공장의 가동이 대기 중 초미세분진(PM2.5)의 일부인 다핵방향족화합물(PAHs·1군 발암물질 벤조피렌 포함)의 증가시키고 개인의 흡연력 등이 암을 불러왔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남원 내기마을 주민 건강피해 문제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만 해도 아스콘 공장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것이 주요한 민원이었다. 1군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나온다는 말은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사이 안양 연현마을, 평택 세교산업단지, 의왕 고천동 등 아스콘 공장 주변의 주거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악취와 건강피해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결국, 환경부는 올해 가을 아스콘 공장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에 대한 규제를 시작하기로 했다.

 

전국에는 아스콘 공장이 430여개가 있다. 공장 주변으로 아파트 단지가 생겨났다. 서울이나 부산 해운대 같은 곳에는 들어 설 수 없는 공장이 도시의 외곽 ‘변두리’라 불릴 법한 마을에 들어서기도 했다. 공장과 주거지역을 구분하여 오염물질 배출을 관리하고 주변 환경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국토의 지속가능한 이용의 철학이 난개발과 규제완화로 무력화되며 발생한 문제다. 아파트를 허가하지 말아야 할 곳에 아파트를 허가하고, 공장을 내주지 말아야 할 곳에 공장을 내준 것이다.

 

한밤, 뜨끈하고 찐득한 새 도로 위의 노동자들

전국의 아스콘 공장은 주거단지와 뒤섞여 갈등과 논란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런 아찔한 풍경 사이를 출장으로 오가다 서울의 집으로 늦은 밤 귀가할 때면, 한남대교를 넘어 장충동으로 들어서는 도로 어디쯤 붉은 표지판을 세워두고 아스팔트를 쏟아내고 다지는 일을 반복하는 노동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마스크 하나 없이, 아스콘을 쏟아붓고 도로를 새로이 정비하는 이들. 이들은 아스콘공장에서 나오는 발암물질을 둘러싼 걱정과 우려 그리고 대책의 어느 곳에 있을까.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도로 한복판에서 일해야 하는 이들이 만지작거리는 아스콘은 어쩌면 오늘 내가 방문한 공장에서 생산된 것일지도 모른다.

1군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아스콘 공장에서 배출되어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한다면, 아스콘이 생산되는 공정 한가운데 있을 노동자들에게는 더 치명적일 것이다. 공장 주변의 주민들이 아프다면 노동자는 더 아플 수밖에 없다. 전국에 위치한 430여 개의 아스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얼마나 많을까. 신도시가 개발되고 새로운 도로가 뚫릴 때마다 아스콘을 쏟고 다지고 녹이는 일을 도로 한복판에서 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안전장비가 쥐어질까.

 

 

노동자가 아프면 마을이 아프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이 있다. 다치기 쉬운 일, 때때로 죽을 수도 있는 일, 안전하지 않은 일은 더 적은 보상을 받고, 덜 보호받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 한밤중 아스팔트를 깔던 노동자들은 어떤 이들일까. 하청일까 하청의 하청일까, 아니면 하청의, 하청의 하청일까. 도시에서 밀려난 아스콘 공장이 도시의 변두리에서 가동되고, 고작 목장갑 일회용 마스크를 쥔 노동자들이 도로를 만든다. 우리는 이러한 존재들을 대기업의 하청공장 불산 누출 사고에 죽게 되는 노동자를 통해서나 알게 된다. 대기업이 위험한 업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기기 위해 불법 파견을 한 노동자들이 메탄올에 중독되어 실명하고서야 어슴푸레 생각하게 된다. 집단으로 암이 발생한 마을이 뉴스에 나와야 짐작하게 된다.

 

환경부는 올해 2월 울산 여천동의 벤젠농도가 6년 만에 환경기준을 달성했다 밝혔다. 지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벤젠의 대기환경기준(5㎍/㎥) 이하가 된 것이다. 환경부 입장에서야 자랑할 만한 일이고 우리로서도 환영할 일이지만, 마음 한편이 서늘해지는 걸 느낀다. 아, 그러면 울산 여천동 주민들은 지난 6년간 대기환경기준을 초과하는 벤젠 영향을 받았겠구나. 역시 1군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벤젠이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생각하다가, 울산의 수없이 많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떠올린다.

 

노동자가 아프면 마을이 아프다. 가난한 노동자가 아프면 가난한 마을의 주민들이 아프다. 부정의 한 세상은 이들에게 정확한 정보조차 주지 않는다. 이런 현장들 속에서, 녹색연합의 환경운동은 아프다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탓이 아니라, 그럴만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사회의 어딘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채는 과정이다. 건강한 사회는 위험을 누군가에게 몰아주지 않는다. 병이 어느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발생 될 일도 없다.

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 배보람
*미디어 참여와 혁신에 기고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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