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을 넘는 오염, 담장에 막힌 권리

2019.02.18 | 군기지

1945년 해방 직후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더욱 공고해졌다. 한반도를 둘러싼 적대적 관계는 한-미동맹을 낳았고, 미군은 70년 가까이 한국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이 미군기지에서 환경오염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건 아마도 2000년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일 것이다.

영화 <괴물>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이 사건은 전 국민에게 충격과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서울시민의 식수원에 무단으로 독극물을 버리고서도 미군은 책임을 회피하는 오만한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 외에도 미군기지에서는 고엽제 매립, 기름 유출, 폐기물 불법 매립, 탄저균 반입 등 시민의 안전과 환경을 위협하는 일들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군사기지의 폐쇄적인 특성상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일부분에 불과할지 모른다.

만약 기지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다면 기지 주변은 어떨까? 미군기지 안에서 발생하는 오염이 확산되어 기지 외부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지자체와 정부에서는 미군기지 주변의 환경오염에 대한 여러 가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선 서울 한 복판에 자리한 용산기지에 대해서 서울시는 매년 지하수 정화용역을 실시하고 있다. 2001년에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녹사평역 인근과 2006년 사고가 발생한 캠프 킴 주변지역이 조사 대상 지역이다.

이 두 지역에서는 벤젠, TPH, 에틸벤젠 등의 유해물질이 매년 지속해서 검출되고 있다. 녹색연합이 서울시로부터 입수한 2018년 최신 조사결과에 따르면, 녹사평역에서는 1군 발암물질인 벤젠이 무려 1,170배나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왔다. 2017년에 비해서 4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TPH도 기준치의 14배에 달했다. 캠프 킴 지역의 TPH는 293배에 달했다.


2017년 11월 트럼프 방한에 맞춰 미 대통령에게 오염된 주한미군기지 정화와 책임을 요구하다

용산기지만이 아니다. 환경부는 미군기지 주변 환경오염에 대한 조사를 2008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이하 공여구역특별법)은 5년마다 기지 주변 환경기초조사를 하도록 되어 있다. 녹색연합은 2008년 이후 지난 10년간의 환경기초조사보고서 전체를 입수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현재 반환되지 않고 미군에 공여 중인 53개 기지 중 24개 기지 주변에서 심각한 토양, 지하수 오염을 확인했다.

그 오염은 어느 정도일까? 토양에서는 기름유출 사고에서 나타나는 TPH를 비롯하여 납,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 다이옥신, PCBs와 같은 독성물질도 검출되었다. 지하수에서도 TPH, 벤젠, PCE, TCE, 납, 비소 등의 각종 유해물질이 기준을 초과하였다. 이 물질들은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등 인체에 매우 유해한 물질들이다.

가장 많은 종류의 토양오염 물질이 나타난 곳은 부평의 캠프 마켓이다. 기지 주변은 TPH, 구리, 납, 아연, 니켈, 다이옥신, PCBs 등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TPH는 기준치의 32.6배, 납은 29.2배에 달했다. 가장 많은 지하수 오염물질이 확인된 곳은 경북 왜관의 캠프 캐롤이었다. 2011년 고엽제 매립 의혹이 있었던 이 곳에서는 TCE, PCE, VC, Pb, cis-1,2-DCE 등의 물질이 검출됐다.

TCE는 25.4배, PCE는 89.5배나 기준을 초과했다. 부산의 55보급창에서는 지하수에서 TPH가 489.3배, 비소가 3.7배나 기준을 넘어서는 고농도의 오염이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경기도 동두천시, 의왕시, 평택시, 의정부시, 포천시, 경북 김천시, 광주시, 대구시 등 전국 곳곳에 위치한 기지들이 이 땅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부평 캠프 마켓의 모습

환경기초조사 보고서는 이런 오염이 주변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2012년 왜관 캠프 캐롤 보고서는 “일부 지역은 지하수를 생활용수 및 음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용금지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2017년 원주 캠프 롱 보고서는 “현재 공여구역 주변으로 인근 지역 주민에 의한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 및 오염예방 등의 관리가 요구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2012년 대전 리치몬드에 대해서는 “조사지역 일대는 현재 상수원보호구역에 해당되어 ‘우선 관심지역’으로 관리가 필요”하다고 적고 있다. 미군기지가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고 있으며 관련 대책이 시급히 마련될 필요가 있다.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오염원은 미군기지 내부에 있다. 용산기지의 경우, 녹사평역과 캠프킴 모두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2001년과 2006년 이후 매년 지하수를 퍼내어 정화작업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기지 안에 있는 오염원을 그대로 둔 채로는 정화의 효과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기지들도 마찬가지다. ‘환경기초조사보고서’들도 모두 “오염원이 기지 내부에 있으므로 기지내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법을 적용한다면 당연히 권한을 가진 지자체가 기지 내부를 조사하고, 오염을 일으킨 미군에 정화 조치를 명령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법은 미군기지 담벼락을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미군기지 내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태원 입구 광장에는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오염지하수를 모아놓은 집수정이 있다.

그 원인은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있다. 한-미 소파에 따르면 미군은 한국의 환경법령과 기준을 단순히 ‘존중’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 구속력이 없는 셈이다. 이것은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미국과 맺은 협정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두 나라의 협정에는 해당 국가의 법이 적용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당국의 미군기지 내부 출입이 보장되어 있지만, 한국은 이러한 권한이 사실상 보장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또한 독일 소파에는 환경오염 발생 시 미군이 정화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미군은 기지 반환 시 한 번도 본인이 저지른 오염을 책임지고 정화한 사례가 없다.

환경오염에 적용되는 기본 원칙이 있다. 바로 오염자부담원칙이다. 오염을 일으킨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군이라고 해서 이 원칙에 예외가 될 이유는 전혀 없다. 2018년부터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19년 2월에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올해도 이런 평화의 바람은 계속되어야 한다.

상대국의 주권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평화의 기초다. 한국 땅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마땅히 한국의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한국민의 환경권을 보장하기 위해 미군은 자신이 일으킨 환경오염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한국의 법과 시민의 권리가 미군기지의 담장에 가로막히지 않는, 그런 평화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글 : 녹색연합 정책팀장 황인철(hic7478@greenkorea.org)
(참여와혁시 2019년 2월호 기고글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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