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 불평등의 미세먼지

2019.02.21 | 미세먼지

지난 12월 11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입사 3개월 차의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어 숨졌다. 김용균, 24살의 젊은 노동자는 고속으로 석탄을 싣고 움직이는 설비에 머리와 몸을 밀어 넣고 기계가 제대로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업무 그 자체가 곧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이었다. 사람이 죽은 그날 이른 아침에도, 컨베이어벨트는 다시 돌아갔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 김미숙 씨는 아들의 일터가 그런 곳인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도 알지 못했다. 김용균을 죽인, 그 발전소에서 지난 2008년부터 10년 간의 산재 사고는 58건, 이중 사망 사고는 12건에 달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가 일했던 컨베이어벨트를 보고, 이제야 알았다. 스위치만 누르면 환해지는 방이, 종일 콘센트를 꼽아두던 텔레비전의 드라마가, 몇 번의 터치로 흘러나오던 음악이 노동자들의 목숨으로 만들어진 전기로 돌아가는 것임을 말이다. 나는 사람의 목숨 값에 걸 맞는 사용료를 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이 값싼 전기의 소비자일 뿐이다.

값싼 전기는 노동자만 죽이지 않았다. 충남의 도시들은 지역 이름을 잃어버렸다. 30년 이상 가동한 낡은 화력발전소를 당진이나 보령으로 기억한다. 젊은 노동자가 죽은 발전소를 태안으로 알며, 송전탑으로 이어지는 풍경을 서산으로 떠올린다. 값싼 전기를 위해 마을과 지역 전체가 발전소가 되었다.

지역 주민들은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기오염 물질의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이곳에서 생산한 전기를 쓰는 이들은 따로 있다. 이 거대한 비대칭의 수혜자는 누구보다 수도권에 사는 이들과 대기업이다. 값싼 전기를 소비자의 권리로 누리면서도 직접적인 피해는 알 필요가 없다. 전기 소비자의 삶에 안주할 수 있는 환경이 구조적이라 해도, 고통을 모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다.

정부와 발전소들은 경제 발전을 위해, 일자리를 위해, 한여름 폭염에 대응할 예비 전력을 위해 발전소가 필요하다며 신규 발전소 건립을 두고 도시 사람들과 지역 사람들을 은근히 이간질했다. 대기업과 일부 언론사는 발전소나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떼를 쓴다며 비아냥거렸다. 발전소의 사회적 비용은 지역에 전가되고, 편익은 수도권과 대기업이 누렸다. 그러다 석탄 화력발전소가 미세먼지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소비자에게까지 피해가 미치자 규제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제 석탄 화력발전소는 지역이 아닌 ‘중앙’ 또는 ‘전국’의 이슈가 되지 않았나.

다른 소비로 미세먼지를 해결 할 수 없다.

미세먼지가 국내 전역을 뒤덮는다는 경보가 울리면, 사람들은 길을 가다 편의점에 들러 마스크를 사고, 공기청정기를 켜거나, 공기청정기를 구매해야 할까 고민한다. 동시에 ‘미세먼지 테마주’라는 키워드가 주식 정보로 나돌며, 이와 관련 상품을 생산하는 회사의 주식도 일제히 들썩인다.

더 좋은 제품으로 환경문제를 피하려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장고 끝의 악수가 될 것이다. 지금의 환경 문제를 소비로 어찌해보려는 순간, 우리의 소비가 다시 오염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심각해질 때마다 정부와 언론을 앞세워 중국 탓을 하곤 하지만, 우리 역시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생산하는 물건으로 생존하고 있지 않은가. ‘해외 제품을 사야 할까, 국내 제품을 사야 할까?’ 공기청정기가 중국 상표든 한국 상표든 아마 그것은 중국의 톈진 이나 시안 같은 공업 도시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소비자인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볼품없이 초라한 것뿐이다. 게다가 석탄 화력발전소가 즐비한 충남의 도시들처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상품이 전 세계 소비자에게 향하고 이윤은 다국적 기업의 몫이 되는 동안, 중국 시민들과 노동자들은 더러워진 공기와 환경오염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질문은 “어떻게 미세먼지를 피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이 부정의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느냐?”여야 하지 않을까.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산업구조, 나라와 나라를 넘나들며 생산과 소비가 분절된 현대사회에서 무엇이 해결책인지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매번 우리가 온 몸으로 대면하는 이 오염은 우리에게 지금까지와 다른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 만은 분명하다.

지난해 연말, 해답의 힌트를 줄 것 같은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강원대와 KIST 연구진이 2016년 연일 이어진 촛불집회의 차량 통제가 서울 광화문 등 시내 대기 질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광화문 인근 대기오염 물질이 10%가량 줄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새로운 사회 시스템과 민주주의를 위해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순간, 미세먼지가 줄어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비가 아니다. 불평등한 오염과 미세먼지를 해결 할 방법은 바로 여기에 있다. 팽창하는 소비를 멈추고, 우리 삶과 공동체의 민주주의를 돌보는 일, 지난 2016년 촛불 집회 때처럼 말이다.

 

 

글: 배보람(녹색연합 전환사회팀)

*이 글은 빅이슈 197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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