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어떻게 걷는가 – 우리나라 걷는 길의 현재

2018.09.20 | 백두대간

2007년 전후부터 시작된 걷기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이었다. 걷는다는 것은 원초적인 행위다. 이런 욕망이 산업사회에서 건강과 여가로 수렴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동의 목적이 아닌 여가와 힐링의 목적으로 걷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2010년을 전후하여 각 부처와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걷는길(트레일)을 조성했다. 2012년까지 불과 3년 사이 수 천 km에 달하는 389개의 걷는 길이 만들어졌다.

행정안전부는 명품길, 국토부는 누리길, 환경부는 생태문화탐방로,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생태탐방로, 산림청은 숲길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길 사업을 벌였다. 한때 온 나라의 산림과 하천은 ‘길 공사중’이었다. 각 부처와 지자체가 협의 없이 유행처럼 길 사업에 뛰어들다 보니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정부는 지자체에 수억의 교부금을 내리고 모든 책임을 지자체에 일임했다. 길 조성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관리·운영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었다. 정부 주도의 ‘걷는길’로 물리적 공간을 조성하는데 그쳤고, 운영관리 방안은 세워지지 않았다.

그 결과 노폭과 노면이 걷기에 불편함이 없는데도 추가로 데크를 설치하거나, 길은 고작 1km를 조성하는데 화장실,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위해 무려 10억을 쓴 곳도 있다. 경관이 좋다는 이유로 산 정상 능선부는 물론, 오르기 힘든 바위 절벽과 해안가까지 무리하게 목재길을 만들었다. 제대로 된 실사를 거치지 않아 대중교통이 확보되지 않거나 국도변 갓길과 같은 위험한 곳조차 이정표를 세워 걷는 길로 둔갑되었다. 동해안과 같이 경관이 수려한 지역은 각 부처와 지자체의 경쟁적인 선점식 걷기길 조성으로 2개에서 많게는 8개까지 중복 지정되어 이용자에게 혼선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은 사후 운영관리가 각 지자체의 산림과나 문화관광과로 떠넘겨져 개통 당시 몇 차례 걷기 행사를 치른 후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길의 운영관리를 위해 배정할 예산이 없을뿐더러 길에 대한 전문 지식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용자가 없는 길은 유실되거나 흉물로 방치되었다.

무엇보다 이용자의 안전 측면에서 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홈페이지조차 구축돼 있지 않다. 길을 조성만 했을 뿐, 이후 관리·운영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고, 관리·운영 방안과 계획이 없는 길은 그 태생부터 불안전한 길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길 사업을 고민하기 전에 지금까지 조성한 길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관리·운영에 대한 범 정부 차원의 진단과 해법이 절실하다.

자연을 책임 있게 이용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적용해 탐방 문화에 변화를 가져와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관련 법안 정비다. 걷는 길은 「자연환경보전법」, 「자연공원법」, 「국유림의 경영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산림문화휴양에 관한법률」,「산지관리법」,「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등 각각의 법률에 근거하여 환경부, 산림청, 문화체육관광부, 국토부 등이 각각 길을 조성한다. 2012년에는 걷는길의 운영관리를 위한 비영리 민간 기구의 육성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걷는 길의 조성관리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상정되었으나 각 부처의 협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자동 폐기되었다. 통합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걷는길 조성과 운영관리를 위한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생태관광에 입각한 조성 가이드라인뿐만 아니라 운영관리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이미 각 부처에서 각각의 법률로 각 사업의 근거를 부여하고 있기에 당장 통합관리에 준하는 법률 제정이 어렵다면, 최소한 앞서 제시한 조성과 운영관리 원칙이 각 부처별 선정 기준 등에 포함되어 실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연과 생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되고 여가 문화의 확산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고 즐기려 한다. 더욱이 주 5일제 근무의 확산과 정착으로 인해 정부의 정책과 관광업계의 수요창출로 자연으로 가는 방법과 길이 쉬워지고 있다.

우리가 자연을 찾고 즐기는 것이 자연 스스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자연과 생태계를 찾고 그것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려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건강하고 건전한 여가와 관광의 일환이다. 향략적이고 소비적인 여가와 관광에 대비하여 국가나 사회에서 권장하고 보급해야 할 일이다. 다만 이런 자연과 생태계를 대상으로 한 여가와 관광이 자연과 생태계 자체에 부담과 피로, 나아가 훼손과 파괴를 이이지지 않는지는 이제부터라도 차분히 따져보아야 한다.

걷기 열풍속에 자연과 생태계를 찾고 관찰하고 즐기는 행위는 가장 바람직한 여가이자 교육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계속 나타났다. 이제 바람직한 자연과 생태계를 즐기고 찾는 방법과 자세가 정부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해외에서 걷는길(Trail)은 1960년대부터 활성화되었으며 국가나 주 단위의 사업으로 분류되어 통합적인 조성과 운영관리를 하고 있다.

  • Long-Distance Nature Trails

일본의 장거리 자연도보(Long-Distance Nature Trails)는 일본 전역을 종횡으로 연결하며 순환한다. 총 연장 약 2만 1천km에 이르며 ‘걷는 길’ 뿐만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까지도 연결한다. 영국의 Foot Path(산책로) 제도를 모델로 하였으며 이미 1970년에 도입되었다. 일본의 대표적 생태관광지인 고시키가하라는 예약가이드제에 입각하여 생태관찰로를 탐방하도록 조성되었다. 총 20km와 10km의 탐방로 2개소를 운영하며 1일 탐방객은 15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 Walking Track

호주의 Walking Track은 1960년대 중반에 건설된 소방로(Fire Trail)를 현재의 탐방로로 사용하고 있다. Walking Track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환경평가를 거쳐야 하고, 환경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해설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며 유형별, 난이도별도 나누어져 있다.

  • Walkway

뉴질랜드의 Walkway는 1970년대 초 뉴질랜드 산악협회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으며 뉴질랜드 전국토의 약 1/3에 해당하는 지역을 도보길로 이어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표현되는 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한 Milford Track(밀포드 트랙)은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총길이 53.5km의 3박 4일 산행 코스다. 이곳을 탐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3박 4일을 머물러야 하고 편도로만 진행해야 한다. 개인 여행자는 하루에 40명만 허가하기 때문에 6개월 전에 예약해야만 탐방이 가능하다.

 

· 서재철(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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