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들의 집, 울프하우스 (WOLF HOUSE)

울프 그리고 하우스
2018년 1월, 여성의 독립성과 창조성을 지지하고 여성성의 힘을 치유하고 복원해 나가는 주거공간 – 울프하우스가 시작되었다. 울프하우스(WOLF HOUSE)의 앞 글자인 울프(WOLF)는 「자기만의 방」을 쓴 버지니아 울프(woolf), 그리고 여성 내면에 존재하는 야생성을 상징하는 늑대(wolf)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공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우스(HOUSE)를 선택한 이유는「크레용 하우스」와「헤이 하우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크레용 하우스는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반전 반핵 운동가인 오치아이 케이코가 설립한 복합공간이자 출판사이고, 헤이 하우스는 루이스 헤이가 설립한 영성 전문 출판사이다. 나는 이 두 여성 대표의 일과 삶을 보면서 이제는 나에게도 나와 우리를 위한 새로운 집(하우스)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약함을 드러내는 공간
나에게 집이란, 신체적·사회적·정서적으로 존중받는 공간이자, 함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더불어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되는 공간이다. 울프하우스는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집의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비영리 영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비혼여성을 위해 하나의 방을 구하자’는 「십시일방」 펀딩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가까운 지인들이 펀딩에 함께 해 준 덕분에 필요한 보증금 일부를 마련할 수 있었으며, 추가로 필요한 보증금 마련방법을 가르쳐준 친구, 펀딩 소식을 듣고 안부 연락을 주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방을 구하는 과정이 홀로 외롭지 않았다. 연약함을 드러내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고립되지 않았다. 집을 구하는 과정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모두와 함께 하는 유쾌한 프로젝트로 전환되었다.

애초에 한 개의 방을 마련할 생각으로 ‘십시일방’ 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펀딩에 참여해준 친구가 마침 자신이 살고 있던 단독주택 2층의 방 세개 딸린 집에서 이사하게 되었다면서 그 집에서 살아보겠냐며 연락을 주었다. 그렇게 십시일방은 십시삼방이 되었다. 덕분에 2017년 12월 겨울, 나는 내가 계속해서 살고 싶었던 동네를 떠나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부암동에서 울프하우스라는 몸과 마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공간을 시작하게 되었다.

 

달과 태양과 별들의 흐름을 따라 지내는 공간 – 입춘 모임과 장 담그기

이사를 하고 난 뒤, 이를 친구들과 함께 기념하고 싶었다. 내 것인 듯 내 것이 아닌 공간이었기에 모두와 함께 이 공간에서 추억을 남기며 축하하고 싶었다. 더불어 서울에서도 달과 태양과 별들의 흐름에 따라 순환하는 삶을 살겠다는 각오 또는 바람이 있었다. 내가 사는 장소가 꼭 농촌이 아니어도, 농사가 꼭 주요한 업이 아니라 할지라도,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만큼,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며 살아가고 싶었고, 그런 힘을 키워내고 싶었고, 이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18년 봄, 첫 번째 입춘 모임을 기획하였다.

늑대들이 모였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노래하고, 타로를 잘하는 사람은 타로점을 봐주고,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요리를 해오고, 말없이 누군가를 잘 챙겨주는 사람은 모임 중 어딘가 빈 곳을 채워주고 있었다. 더불어 비어있던 집은 친구들에게서 받은 물건들로 차곡차곡 채워져 나갔다. 카펫, 책상, 책장, 그릇, 의자, 이불 등이 채워지면서 사소한 물건 하나에도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었다.

장독도 샀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 샀다. 집 앞에 볕이 드는 마당이 있는 울프하우스에 장독 하나를 놓고, 장을 담그기로 하였다. 그렇게 올해의 된장과 간장이 만들어졌다.만약 내가 굉장히 건강했더라면, 굉장히 돈이 많았더라면,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할 줄 알았다면 이런 풍요는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내면의 여성성과 남성성 그리고 신성함을 깨우는 공간
2019년 2월이 되었고, 울프하우스가 시작된 이후 1년 사이에 함께 사는 늑대들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누군가는 이사를 가고, 또 새로운 누군가가 찾아오는 순환이 이어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올해 봄맞이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울프하우스에서 꼭 하고 싶었던 행사를 하기로 했다. 바로 FULL MOON RITUAL – 보름달 의식이었다.

사람의 내면에 여성성, 남성성이 모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이래야 해, 남성은 이래야 해, 라며 고정된 성 역할과 행동 양식을 부여받는 것에 오랫동안 한계를 느껴왔다. 만약 우리가 우리 내면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통합시킨다면, 그리고 이미 성을 기준으로 이름 붙여진 이 특성이 통합되어 새로운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신성한 야생성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내면의 통합과 야생성을 불러일으키는 우리만의 의식을 치러보고 싶었다.

마침 지난 가을부터 울프하우스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한나’가 하와이의 전통춤인 훌라댄스를 배우고 있기에 함께 재밌는
일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정월대보름을 맞이하여 ALOHA FULL MOON RITUAL이라는 타이틀로 훌라를 통해 내면의 신성함을 일깨우는 행사를 만들어 보기로 결의하였다. 마침 행사 하루 전에 ‘초’가 빈방으로 이사를 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환영하는 시간까지 가질 수 있는 여러모로 알찬 시간이 될 것 같았다. 행사 당일, 우리가 초대한 손님들로 울프하우스의 작은 거실이 꽉 찼다. 우리 내면의 신성함 – 여성성과 남성성을 춤으로 일깨워보자는 모임의 제안에 행사에 참여한 누군가는 북을 들고 왔고, 역시나 많은 음식과 함께 예기치 못한 만남과 풍요가 뒤따랐다. 한나는 정성들여 훌라댄스의 의미와 춤동작을 가르쳐주었다. 훌라댄스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함이 느껴지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통합, 신성함 그 자체였다. 손님들이 떠나고 난 뒤에도 그 여운은 한참을 갔다. 정월대보름 당일, 한나 그리고 초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넋을 놓고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나누었다.

모쪼록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힘을 지닌 늑대들처럼 우리 또한 우리의 몸과 마음, 영혼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며 연결되는 한 해가 되기를! 부암동 울프하우스의 새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글 · 하얀늑대

하얀늑대(김민주)님은 사람과 자연이 갖고 있는 본래의 야생성과 창조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끌어낼 수 있는 삶의 양식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현재 여성들이 자신의 독립성과 창조성을 끌어내고 격려받을 수 있는 주거공간 「울프하우스」를 서울 부암동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생물다양성을 위한 생태 활동으로「생명의 정원」이라는 책의 번역을 추진하여 김우인, 박아영과 함께 공동번역으로 출간, 명상하는 정원 만들기 워크숍 등을 실행하고 있다. www.wolfhous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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