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녹색빛] 빨간 철가방과 슬기로운 생활

― 내가 가진 오래된 물건에 대하여

 

느지막이 독립을 결정해 이삿짐을 싸는 중이었다. 짐 옮기는 걸 돕던 동생이 놀란 목소리로 묻는다. ‘헉. 누나 이거 아직도 가지고 있어?’ 귀여운 꽃모자를 쓴 곰 두 마리가 그려진 빨간 철가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제는 ‘응답하라 1994’에나 나올 법한 단어, ‘국민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다. 학교를 마치면 매일같이 문방구에 들러 준비물을 사곤 했는데, ‘슬기로운 생활’이라는 과목에 필요한 교구 중 하나였던 ‘물체 주머니’가 기억에 남는다. 주머니 안에는 온갖 재질의 물체가 있었다. 유리구슬, 수수깡, 조금만 힘을 줘도 쉽게 찌그러지는 고무공, 치즈처럼 비닐 사이에 붙어 있는 색깔 고무찰흙, 그리고 각양각색의 단추 따위를 조그마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장면이 떠오른다. 물체 조각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통에 적당한 보관함이 필요했을 테고, 아마도 그때 빨간 철가방이 등장했던 모양이다. 물건을 넣을 때면 가방에 달린 고리 잠금장치를 90도 정도 움직여야 했는데 그 모양이 독특해서 마음에 들었던 느낌이 어렴풋하다.

 

자그마한 물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쓰임을 잃었고, 빨간 철가방은 창고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다 이사를 할 때면 정신없이 흐트러지는 작은 것들을 모아 담는 역할을 이따금 해냈다. 때때로 엄마의 우표 수집함이 되기도, 각종 리모컨을 담는 정리함이 되기도 하면서. 어떤 물건을 사고, 물건들을 정리해 담아두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다 이상한 소비의 순환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러고 보니 쌓아 둔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서 정리함이라는 물건을 사기도 한다. 그리고 그 정리함을 차곡차곡 쌓기 위해서 다시 수납장을 구매하고… 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어린 나에게 문방구는 별천지였고, 만물상회였다. 선반에 빼곡히 쌓인 물건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재미있었다. 문방구에 가야만 ‘갖고 싶고, 사고 싶다’는 생각이 일던 그때와 달리, 소비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지금은 소비 욕구가 없는 때에도 수많은 광고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다. 이미 있는 물건도 더 좋은 것, 더 예쁜 것을 구매하라는 유혹을 뿌리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눈을 뜨고 지내는 시간 내내 소비에 대한 도전을 끊임없이 받는 셈이다.

 

과일이나 가전제품은 팔지 않는, 문방구의 소소하고도 명쾌한 용도는 이제 거의 폐기 당했다. 반려동물부터 골프채까지 살 수 있는 대형 마트가 모든 가게의 용도를 대체하며 그야말로 ‘만물상회’처럼 부상했다. 갖가지 물건이 고층빌딩처럼 쌓이고, 쏟아질 것만 같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는 데도, 무엇을 얻어야 할지 몰라 소비를 주저하게 되지만 어느새 새로운 디자인을 강조한 광고와 1+1 묶음 판촉물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외치며 집에서도 물건을 쌓아두길 바라는 것만 같다.

 

하지만 어림없지. 언젠가 이런 소비 자본주의에 홀딱 넘어가지 않겠다 다짐한 후 몇 년 동안 쓰레기 제로를 위한 삶을 꾸리기 시작했고, 이사를 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나를 둘러싼 물건과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중이다. 사고, 쓰고, 버리는 일회적이고 선형적인 관계가 아니라, 나의 취향과 필요를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정의롭게 만들어지고, 유행을 타지 않으며, 버릴 때를 염두에 두고 재활용이나 재사용이 가능한 소재인지 살피고, 웬만하면 기본 10년은 거뜬히 쓸 수 있는 살림살이들을 찾는다. 가끔 주변사람과 나누기도 한다. 굳이 여기에 ‘관계’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물건에 사연과 추억이 깃들면 오랫동안 사용해도 잘 버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물건에 대해 골똘히 들여다보는 시간은 우리를 덜 소비하게 하고, 이 세계와 삶의 태도에 대해 더 사유하게 만든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빨간 철가방은 덜 소비하고 더 사유하게끔 돕는 물건들을 담는 역할을 맡았다. 꽃무늬 손수건, 밀랍초, 대나무 빨대처럼 자연을 닮은 작은 물체들은 지구와 인간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한 이야기 자리마다 등장할 준비를 한다. 내 나름의 ‘슬기로운 생활’을 위한 물건들로 철가방은 다시 채워졌다. 먼지처럼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들을 본다. 기스가 나고, 모서리는 닳았고, 잠금장치 표면은 완전히 녹이 슬어버렸다. 어릴 때 보다 지금 이 가방에 더 애착을 가지게 된 건 나와 우리 가족의 손때가 잔뜩 묻어 있기 때문일 테다. 문득 ‘오래되어 좋은 것’이란 단순히 오래 가지고 있던 물건이 아니라, 버리고 새것을 장만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버리지 않고, 쓰임새를 갱신하며 간직한 물건이 아닐까 싶다. 폐기될 뻔한 오랜 기억을 소환해내며 나의 역사와 조우하는 것, 오랜 물건이 주는 뭉근한 기쁨이다.

 

 

글 | 전환사회팀 배선영

*이 글은 빅이슈 201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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