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거기 서 있겠습니다.

2019.07.15 | 설악산

아침, 경복궁역에서

채짱 : 안녕하세요, 녹색연합 인턴 채짱입니다! 오늘은 설악산 케이블카 백지화 촉구 캠페인 활동 소식을 전하려합니다. 월요일 아침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경복궁역 고궁박물관 앞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백지화를 위한 피케팅 시위를 진행하였습니다. 모두가 바쁜 월요일 아침임에도 활동가 여럿이 모여 함께 목소리를 내었기에 힘을 주고받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 바쁜 출근길의 도시민들에게 저 멀리 있는 설악산의 케이블카 설치를 백지화하자는 우리의 목소리가 와 닿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설악산을 지켜내자는 진심은 전해지기를 바랐습니다.

부엉이 : 오늘 아침은 비 냄새가 물씬 났습니다. 조금은 어두운 하늘이었지만 점점 강해지는 햇빛을 가려주는 구름에 감사한 마음이 생기는 날씨였습니다.
저는 녹색연합에 인턴으로 들어온 활동가 부엉이입니다. 그리고 오늘 채짱과 함께 설악산 케이블카 백지화 촉구 피케팅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경복궁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며 지하철에 오르자 조금은 생소한 감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들이 가는 곳과 내가 가는 곳은 같은 경복궁역인데 같은 마음일 수 있을까?’

설악산 케이블카 지금은

현재 설악산 케이블카는 관광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악산은 국립공원에 속하며 5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원칙적으로 개발이 금지된, 우리나라 생태의 핵심인 곳입니다. 특히 멸종 위기종 1급인 산양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보전 가치가 높은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했을 때 관광으로 인한 지역 경제 활성화의 효과는 과연 확실할까요?

우리나라에는 케이블카 약 50여 개가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흑자를 내는 곳은 단 2곳 밖에 없습니다. 즉 케이블카가 지역 주민과 지자체의 살림에 보탬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녹색연합이 2017년 연구한 결과 설악산은 이미 도로와 탐방로로 인해 총 112개의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린 설악산에 경제성조차 확보되지 않은 케이블카 사업이 필요한 것일까요?

그래서 녹색연합에서는 7월 한 달 간 피케팅과 함께 도보순례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피케팅 단상

채짱 : 설악산 케이블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집 앞의 용봉산을 내려오다 공터에서 자그마한 뱀을 만나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용봉산과 수암산 앞 공터가 있던 곳은 신도시 개발 차원에서 넓디넓은 호수 공원으로 뒤바뀌었습니다. 이후 밤공기를 마시러 산책 삼아 호수 공원에 들리곤 하는데 높은 곳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보면 불빛 가득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이 경관이 숲에 살던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를 빼앗아 얻어졌다는 걸 떠올리면 한없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호수 공원 끝자락과 산 사이 새로 들어선 차도는 몇 년 전 자그마한 뱀을 만난 곳을 지나갑니다. 새로 들어선 차도에 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쳐갈 때, 호수 공원에서 열리는 문화공연의 음악 소리가 동네 전체에 울려 퍼질 때 숲에 사는 야생동물을 생각하게 됩니다. 호수 공원을 봤을 때 괜스레 설악산 케이블카를 떠올리게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부엉이 : 처음으로 녹색연합에서 피켓을 드는 것이기에 조금은 어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피켓을 잡는 손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피케팅을 하던 중 마침 빨간불에 노인복지관 버스 한 대가 멈추었습니다. 버스에 타고 계시던 할머니 몇 분이 제가 들고 있는 피켓을 유심히 쳐다보셨습니다. 그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흔히들 설악산 케이블카에 대한 분쟁을 환경보전 대 장애인과 노약자의 이동권 문제 혹은 환경보전 대 지역개발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자체가 우리의 자손에게 빌려서 살고 있는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대립의 사항이 아닌 순서의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이전에 거대한 생태의 순환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이기 때문이죠. 생태의 문제는 조금 더 근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을 정리하며

채짱 : 생태계와 경관 보전을 위한 국립공원인 설악산에 레저와 관광을 명목으로 한 케이블카를 들이게 되면 개발 패러다임이 강화되어 다른 국립공원에도 언제든지 케이블카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인간이 잠깐 누리는 기쁨과 편리함을 위해 야생동물의 생존 문제를 뒤흔들고 서식지를 훼손해야만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국립공원을 보전하면서도 인간이 건강한 삶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안은 충분히 있을 터입니다.

생명력 넘치는 설악산을 지키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라는 구호 속에 담긴 야생동물들의 삶과 미래가, 설악산 자연생태계 보존을 위한 마음이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가 백지화되길 바라봅니다.

부엉이 : 피케팅은 8시 반에 시작해서 9시 20분까지 이어졌습니다. 제 앞으로 생각보다 많은 차와 사람들이 지나갔고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 끝났다 싶었을 때 약속한 시간에 닿아있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절대 다수결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대화이고, 배려이며,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피케팅은 소리 내어 외치지 않습니다. 다만 말없이 소통하기 위해 보여주고 행동하는 것이 피케팅입니다. 우리가 피케팅을 하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차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피켓에 써진 무언의 외침들을 보고 지나갔습니다.

분명 그들의 생각을 우리가 직접 알 수는 없겠지만 설악산의 케이블카에 한 번쯤은 다시 생각을 해볼 것입니다. 그 생각의 순간이 짧든 길든, 케이블카에 찬성하던 찬성하지 않던 외침이 닿는 순간, 우리는 분명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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