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곰 세 마리네 집들이를 다녀와서

2019.10.16 |

먼저, 사육 곰의 실태에 대하여 미디어에서 처음 접했는데, 사람의 이기심과 욕심은 어디까지 행해질지 너무나 잔인하게 이루어지는 그 모습들이 잊히지 않는다. 지옥 같은 그곳에서 구출된 반이, 달이, 들이가 청주동물원에서 여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평소 야생동물과 환경에 대해 관심이 많아 녹색연합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관련된 소식들을 종종 접했었다. 피드를 보며 관심에서 행동으로까지 옮기시는 활동가분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 저런 행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환경을 알리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사육 곰 농장에 있던 곰들이 구출되어 청주동물원에서 지내게 되어 곰들의 집들이에 초대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곰들이 구출되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눈으로 만나고 담당자분들이 겪으신 이야기도 듣고 싶어 빠르게 집들이 초대장에 답신했다! 😀

청주에 살면서 사육 곰에서 처음 구출된 곰 친구들이 청주동물원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청주동물원으로 출발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이 모였는데, 다들 초면이라 어색하고 낯가리는 분위기가 맴돌았다. 연령대도 다양해서 오늘 활동 분위기가 좀 어색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녹색연합 활동가분이 준비한 빙고 게임을 하며 서로서로 이야기도 하고 웃으면서 처음에 있었던 벽들이 많이 허물어져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녹색연합 측에서 준비해주신 도시락을 먹었는데, 채식 도시락이어서 조금 놀랐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의미가 있던 점심식사였다. 채식을 시도했지만, 채소를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막막해서 항상 실패했는데, 완전한 채식으로 먹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채식이지만 영양소별로 다 있고 맛도 있어서 채식 도시락에서 정말 환경을 생각하시는 곳이라는 걸 느꼈다.

칡넝쿨을 엮고 호박을 파서 곰들이 먹이행동을 할 수 있도록 장난감을 만들어요

손이 작은 어린참가자들이 호박 안에 맛있는 맛있는 먹거리들을 채워주고 있어요.

점심 이후에 반이, 달이, 들이를 만나러 가기 전에 집들이 겸 다가올 할로윈 데이 겸해서 호박과 칡넝쿨을 이용하여 곰 친구들의 행동 풍부화를 위한 선물을 만들었다. 호박 속을 파내고 곰들이 좋아하는 도토리, 과일, 애벌레 등을 넣는 작업을 했는데 같이 하는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파내서 준비하면서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칡넝쿨을 얼기설기 말아서 공처럼 만들었는데, 만들면서 풀 냄새가 계속 나서 철장 속에 갇혀있던 반이, 달이, 들이에게 후각을 자극할 수 있는 장난감이 될 것 같아서 더욱더 열심히 만들었던 것 같다. 칡넝쿨 공 틈 사이사이에 곰들이 좋아하는 간식들도 꽂아 넣고 드디어 반이, 달이, 들이를 만나러 갔다. 반이, 달이, 들이가 구조된 후 생활하게 될 곳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환경 조성이 잘 되어있어서 놀랐다. 더는 시멘트와 철장이 아닌, 흙과 나무가 있는 장소에서 먹고, 놀고, 자고 있을 곰 세 마리를 생각하니 그동안 사육 곰 구출에 힘써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구조된 반이, 달이, 들이가 너무나 다행이었다.

선물한 호박을 마음껏 먹는 반이와 들이

호박속에 토마토와 당근, 도토리들을 다양하게 듬뿍 넣어서 주었어요.

반이, 달이를 만났을 때 털이 반질반질해서 소위 말하는 곰돌이 같아서 보는 내가 흐뭇했다. 방사장으로 나와서 반이, 달이가 냄새로 준비된 호박 선물을 찾아 먹을 때 준비한 보람있게 정말 맛있게 먹어줘서 너무 좋았다. 늙은 호박은 사람인 나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무슨 맛인지 잘 모르지만, 반이, 달이가 굉장히 맛있게 먹어줘서 어떤 맛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후각으로 호박을 찾았을 때 호박을 물고 뒤편으로 가서 먹으려 해서 먹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아 아쉬워했지만, 그런 우리 마음을 알았는지 다시 앞쪽으로 와서 자리 잡고 먹방을 보여줘서 너무 기뻤다. 저렇게 먹을 거 좋아하는 친구들인데 음식물 찌꺼기나 사료만 먹고 있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칡 넝쿨 공도 찾아서 갖고 놀고, 먹어주길 바랐지만, 곰들은 호박 선물이 더 마음에 들었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호박 선물을 정말 좋아하며 먹어줘서 행복했다.

들이는 아직 반이, 달이와 함께 있지 못해서 곰 세 마리가 같이 있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이, 달이와 합사 연습을 통하여 다치는 일 없이 안전하게 합사되어 세 마리가 다 같이 야외 방사장에서 놀고, 먹고,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실내방사장에서 들이가 호박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서포터즈

그동안 동물원이라는 곳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는데, 동물들을 위해 바닥재도 흙으로 바꾸고 최대한 그들의 생활습성에 맞게 환경을 조성해주고자 하는 노력을 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고, 부정적이었던 생각이 깨졌다. 동물원이 더는 사람이 주인이 아닌 동물이 주인인 곳이 되어가고 있음을 시민들과 정부의 인식이 변화되어가고 있는 것을 ‘곰 세 마리네 집들이’ 행사를 통하여 느꼈던 것 같다.

곰 세 마리네 집들이 행사를 통해 다양한 연령층이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것 같다. 환경과 동물권 등에 대하여 점점 더 많은 분이 의식을 갖고 참여해주시는 것 같아 동물과 사람이 공존해 나갈 수 있는 방면이 이른 시일 내에 만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반이, 달이, 들이에게 제2의 곰생(生)을 마련해준 것처럼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삶을 위해 정말 작은 일부터 조금씩 하루하루를 매일 행하여 나간다면 또 다른 생명들에게도 여생의 제 2막을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글. 윤은경 님(곰세마리 집들이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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