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증인3 – 언제까지 사과를 먹을 수 있을까? – 농부에게 닥친 기후위기

2019.12.31 | 기후위기대응

– 증인3 마용운님은 9년차 사과농부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과를 재배하는 농부 마용운이라고 합니다. 제가 농사를 짓고 있는 곳은 경남 함양 서하면이고요, 여기에서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부모님 뒤를 이어서 9년째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일단 저희 사과밭을 간단하게 소개드리겠습니다. 봄이면 예쁘게 꽃이 피고, 여름이면 온 세상이 초록초록한 가운데 사과 열매가 자랍니다. 가을이면 빨갛게 사과가 익고 저는 또 저 사과들을 수확하느라 엄청 바쁘고 힘든 시기를 보냅니다. 겨울이 되면 사과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고 눈에 덮인 채 쉽니다. 이 사과밭에는 사과뿐만 아니라 저희 아이들도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밭에서 지렁이 잡는 것을 제일 좋아합니다. 아이가 지렁이를 잡아들고 해맑게 웃습니다. 하지만 아빠인 저는 저희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짓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 기후위기 때문입니다.

▲ 농장의 아이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대부분의 사과는 빨갛게 익습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빨갛고 달콤한 맛의 사과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대부분의 농가가 빨간 사과를 재배합니다.

그런데 저렇게 사과가 빨갛게 익으려면 사과 표면에 안토시아닌이라는 빨간 색소가 만들어져야 됩니다. 이 색소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요. 하나는 당이 축적되어야 합니다.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열심히 일하고 광합성을 하면 포도당이 만들어지고 그 포도당이 열매로 옮겨가서 열매 속에 당이 축적됩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기온이 조금 떨어져서 시원한 가운데 햇빛을 받게 되면 사과가 빨갛게 익어갑니다. 그런데 지난 초가을 날씨가 어땠습니까? 예전에는 가을장마라는 말조차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매해 가을 닥치는 장마 때문에 가을장마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저희 동네는 지난 8월에 15일 동안이나 비가 왔고 9월에는 16일이나 비가 왔습니다. 게다가 9월 들어서는 1일~12일 사이에 10일 하루 빼놓고 11일간 꼬박 비가 왔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13일이 추석이었던 것입니다. 사과 재배 농민에게 추석은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흔히 말하는 대목이죠. 선물용, 제수용 사과 수요가 아주 많이 늘어나서 사과 가격이 제일 좋을 때가 바로 추석입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을 앞두고 빨갛게 익은 사과를 따서 포장하고 시장으로 내놓아야 할 그 시기에 이렇게 하루도 빼지 않고 추석 전날까지 계속 비가 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렸죠. 사과가 빨갛게 되려면 안토시아닌 색소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제일 필요한 것은 햇빛입니다. 햇빛이 없는 상황에서 사과가 빨갛게 익겠습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 게다가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제13호 태풍 링링이 온다는 것입니다. 태풍이 오면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사과들이 어떻겠습니까? 엄청 떨어집니다. 농민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석 시장이 지나면 과일에 대한 사과에 대한 수요가 많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과 가격이 대폭 하락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계속 해가 안 나오니까 사과는 예쁘게 익지 않는데 태풍은 온다고 하죠, 추석은 다가오죠, 추석 지나면 사과 값은 떨어지는데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다급해진 농민들이 덜 익은 사과들을 수확해서 추석을 앞두고 시장으로 엄청 많이 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겠어요? 사과 값이 폭락했습니다. 제대로 익지 않은 사과를 시장에 내니까 시장과 소비자가 외면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결국 추석 시장을 앞두고 사과 값이 엄청 떨어졌고 추석이 지나서는 문제가 더 심해졌습니다. 추석이 지나면 가뜩이나 수요가 줄어드는데 추석을 앞두고 미처 따내지 못한 사과들이 그제야 익어서 왕창 시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파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고, 저 같은 경우에도 이미 올해 사과 2/3 가량을 수확하고 판매를 마친 상황인데 예년 매출액의 반 토막도 건지지 못한 상황입니다. 거의 폭락한 수준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수차례의 태풍이 강타하여 바닥에 떨어진 사과가 훨씬 많다.

올해는 게다가 태풍도 기록적으로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1959년과 더불어서 7개로, 태풍이 가장 많이 온 해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태풍이 왔는데 그 중 가장 마지막에 온 태풍은 저희 사과 밭 위로 지나갔습니다. 다행히 저희 사과 밭은 아주 한꺼번에 초토화되는 그 정도의 피해는 면했지만 2012년에 태풍 볼라벤이 왔을 때는 정말 심각한 피해를 겪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사과가 매달린 사과보다 훨씬 더 많았고 심지어 똑바로 서 있어야 할 나무들이 바람에 기울어져 일으켜 세우고 복구하느라 정말 고생 많이 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사과 재배하는 농민들은 태풍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후변화 때문에 태풍의 빈도와 강도가 점점 더 세질 것이라고 합니다. 올해는 일본으로 갔던 하기비스 같은 슈퍼태풍은 오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언제라도 그러한 태풍이 우리 밭에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해 엄청난 폭염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지구적으로 기온이 변화하고 뜨거워지고 폭염이 계속되는 것을 사과나무가 제일 먼저 알아차립니다. 영주 지역에서 사과 꽃을 제일 먼저 피운 날을 조사했습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대체로 4월 말이었는데 근래 들어서는 4월 중순으로 확 앞당겨졌습니다. 저희 농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전에는 2014년 4월 14일이 제일 일찍 첫 꽃이 핀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희 농장에서는 작년 4월 11일이 가장 이른 꽃을 개화시킨 날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꽃을 피우기 4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요. 그날 꽃이 피려고 꽃봉오리가 빨갛게 커지는 상황이였는데 4월 초에 사과 밭에 눈이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일기예보를 살펴봐도 별로 심각하게 눈이 많이 오거나 꽃샘추위가 강력하게 오는 등의 예보는 없었어요. 그래서 4월 7일에 눈이 살짝 흩날리기에 신기하네 정도로만 생각하며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동네가 완전히 겨울왕국이 된 것입니다. 4월 8일 아침, 당시에 저희 동네는 벚꽃이 만개한 상황이었는데 그 벚꽃 위로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아 쌓여 있었습니다. 사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빨갛게 사과 꽃봉오리들이 자라고 있는데 그 위에 눈이 오고, 꽃샘추위로 어린 잎이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날 일기예보 어플을 확인해보니 저희 지역 최저온도는 영하 4.5도라고 나왔습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온도냐 하면 아까처럼 저희 사과 밭의 꽃들은 이미 빨간 꽃봉오리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홍뢰기라고 하는데 초기에는 영하 4.44도가 되면 꽃의 90%가 죽는다는 온도입니다. 후기에는 영하 3.89도만 되어도 꽃의 90%가 죽는 온도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꽃봉오리를 칼로 잘라 보니 가운데에 있는 암술이 갈색으로 얼어 죽은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한해 농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아휴, 올해 농사 망했구나,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 막 피어난 꽃송이와 어린 잎을 눈들이 덮어버렸다.

그래도 다행히 몇몇 꽃들은 정상적으로 피고 열매가 맺혔습니다. 하지만 사과가 동그랗게 예쁘지 않고 한쪽이 찌그러지고 모양이 울퉁불퉁하게 생긴 못난이 사과들이 엄청 많이 발생했습니다. 사과 표면도 빨갛게 예쁘지 않고 누런색으로 거칠거칠하게 무늬가 생기는 현상이 엄청 많았습니다. 저희 밭에 있는 아리수라는 품종은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누렇게 되는 현상이 생겨서 전부 다 정상가격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 밭에는 배나무가 있는데요, 올해에는 나뭇가지에 배들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지난해에는 10년도 넘은 배나무 세 그루에서 배를 딱 네 알 수확했습니다. 올해는 이러한 상자로 세 상자 넘게 수확했는데, 지난해에는 왜 그랬냐 하면 배는 사과보다 이틀 정도 더 일찍 꽃을 피웁니다. 꽃이 피기 직전에 꽃샘추위를 만나서 꽃은 피웠지만 암술이 싸그리 죽어서 겨우 네 알만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정말 배 농사를 짓지 않은 게 천만다행입니다.

지난해 말고 또 기록적인 폭염이 있었던 것은 2016년입니다. 태풍이 온 것도 아니고 바람이 분 것도 아닙니다. 폭염과 가을장마를 겪으면서 저희 홍옥 사과나무들은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열매를 다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이렇게 심각하게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5년이 지구 역사상 가장 더웠다고 하죠. 앞으로는 점점 더 더워진다고 합니다. 이렇게 폭염이 닥치면 사과는 천성적으로 시원한 곳을 좋아하는 작물이기 때문에 열매가 잘 크지 못합니다. 색깔도 안 나죠, 맛도 없어서 좋은 품질의 사과를 생산할 수 없습니다. 가을장마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비가 오게 되면 병도 엄청 많이 증가합니다. 잎과 열매에 병이 많은 것은, 바로 사과에 발생하는 병들의 원인이 대부분 곰팡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곰팡이가 증식하려면 무엇이 제일 필요합니까? 물입니다. 비가 많이 오면 곰팡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엄청나게 병을 일으킵니다. 사과 중에는 겉에 조그만 상처가 있는 사과도 있는데 속을 갈라보면 벌레가 파먹고 들어가서 사과를 망쳤습니다.

복숭아순나방이라는 벌레가 전에는 1년에 3~4세대만 번식한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기온이 따뜻해지니까 성장 속도가 빨라지며 이제는 1년에 5번, 5세대나 증식한다고 합니다. 올해 이 벌레가 먹은 사과만 버린 게 4톤이 넘습니다. 정말 농부로서 환장할 노릇입니다.

그렇다고 병 많고 벌레 많다고 마구잡이로 농약을 뿌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정말 힘듭니다. 우리나라 사과 주산지가 옛날에는 대구였는데 지금은 대구가 너무 더워서 사과가 거의 없고 경북 북부가 주산지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토의 60% 정도에서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데, 앞으로 10년, 20년 후면 30% 정도의 지역에서 재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희 농장은 다행히 여기 백두대간에 맞물려 있어서 10년, 20년은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40년, 50년, 60년, 70년이 지나 2090년대가 되면 우리 땅의 1%에서만, 강원도 높은 산꼭대기에서 지리산 꼭대기에서만 사과를 재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과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과요? 사과 아닙니다. 귤도 아니고 배도 아니고, 바나나입니다. 바나나를 비롯해서 망고, 오렌지, 포도, 키위, 자몽, 파인애플 등 엄청 많이 달고 맛있는 수많은 수입과일들이 우리의 식탁을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도 이렇게 심각해지는데 저는 정말로 고민입니다. 언제까지 제가 사과 농사를 지어야 될까요? 저에게는 정말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저희 아이들의 아이들도 저렇게 사과나무 그늘 아래에서 사과 열매를 아작아작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게 바로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바로 여러분께서 도와주셔야 됩니다.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서 여러분께서 조금 더 관심 가져 주시고 조금 더 참여하고 행동하고 실천해 주셔야 합니다. 정말로 정말로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9 그린컨퍼런스 연사들의 발표를 발췌하여 정리한 내용입니다.
녹색희망 특별호 269호 <기후변화의 증인들>에서 관련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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