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증인5 – 한반도 침엽수의 마지막 기록 

2019.12.24 | 고산침엽수

증인5 환경운동가 서재철님은 녹색연합에서 생태분야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는 어쩌면 처음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사라지는 생물종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전지구적 기후변화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고민과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저의 활동 현장에서 기후변화가 도래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제가 녹색연합의 실무자로 일한 지 20년 조금 더 되는데요, 기후변화가 10년 전에 중요한 환경문제, 그리고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일로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녹색연합의 실무자로 누구를 만날 때마다 ‘환경이 곧 기후변화다. 그리고 앞으로는 기후변화가 환경단체 모든 일을 압도하거나 규정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고 속도감 있게, 마치 축구에서 스트라이커가 정신없이 공을 다루며 골을 넣듯이 우리 생활 주변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한반도 고산침엽수의 죽음, 멸종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한반도에서 소나무가 대표적인 침엽수죠. 이 소나무과 안에 소나무류, 전나무류, 가문비류, 입갈나무류 등 네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이중에서 두 가지, 전나무류와 가문비류가 고사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침엽수는 육상에서 기후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 생물종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된 생명체입니다. 동물보다 식물, 식물 중에서도 침엽수, 침엽수 중에서도 특정 고도에 사는 전나무류 등이 기후변화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만의 현실이 아니라 유럽, 아시아, 북미 등 주로 북반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 하늘에서 찍은 지리산 구상나무의 집단고사 현상

녹색연합에서 제가 실무자로 일하면서 이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사진입니다. 2015년도에 정부에서 지리산을 비롯해서 백두대간의 산사태를 조사하는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그때 지리산에 헬기를 타고 모니터링 하는 과정에서 제 카메라에 이 사진이 찍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2000년 초반에 지리산지킴이 혹은 지리산 국립공원 직원들 일부로부터 구상나무가 시름시름 앓거나 죽어가는 곳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2010년 전후에 그런 현장을 부분적으로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멸종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이라고 짐작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저는 지리산에서도 구상나무가 본격적으로 떼죽음, 소위 집단고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때부터 지리산뿐만 아니라 한라산, 덕유산,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까지 해발고도 1,200m가 넘는 산을 다니며 이 상황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산지에서는 크게 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세 종이 죽음을 당하는데요. 사실 조사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매우 우울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부분적으로 죽어갈 때 조사가 어렵지, 거의 죽어 있거나 죽어가고 있는 것이 보통 70%에서 많게는 90%가 되어 있기 때문에 온전히 살아있는 것을 찾는 작업이 그다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정도로 지금 집단고사의 양상은 아주 전면적이고 빠른 속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조사를 GIS(지리정보시스템)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분석합니다. 이렇게 현장조사 결과를 자료에 얹어보기도 하고 세밀하게 파악해 보기도 합니다. 항공모니터링, 정부와 소위 거버넌스를 통한 조사에도 참여해 작업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얻어낸 데이터를 다시 시민과 함께 현장에 직접 들어가서 죽어 있는 현장을 살펴보고 그리고 또 어떻게 죽어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사람이 백혈병이나 암에 걸려서 죽을 때는 구체적인 양상이 어떤지 의학교과서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침엽수가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구체적인 것을 모릅니다. 시름시름 앓다 잎이 떨어지고, 곁가지가 떨어지고, 온전히 모든 잎이 탈색해서 떨어진 다음엔 잔가지가 떨어지고, 겉껍질이 떨어질 때까지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그리고 한 번 앓기 시작했을 때 다시 회복하는지의 정보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시민과 함께 구상나무와 가문비 등이 죽어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아시겠지만 구상나무와 가문비는 말을 못합니다. 텔레그램도 못하고 카카오톡도 못하죠.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해 줘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야기를 하려 했고, 하고 있지요.

지금 대표적으로 이 친구들이 살아가는 곳은 대한민국 남한에서는 바로 한라산부터 설악산까지. 구상나무는 특히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분비나무는 태백산부터, 분비나무는 태백산부터 시작해서 개마고원 등 러시아를 거쳐서 아무르 강까지 이어지는 넓은 면적에 서식하는데 적어도 한반도 남쪽에서는 분비나무까지 거의 다 집단적인 고사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한라산은 지금 이런 모습입니다. 우리 시민이 한라산 아주 좋아하십니다. 한국에서 등산 좋아하시는 분은 백록담은 한 번은 가야 됩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성판악까지 백록담까지 이어지는 코스, 진달래밭 코스에서 해발 1,700m~1,800m에서 보이는 모습입니다. 마치 폭격을 맞아서 부서진 건물처럼 구상나무가 뿌리까지 뽑혀 있거나 부러져 있거나 때에 따라서는 생선가시처럼 서 있습니다.

겨울철에 눈이 내리지 않거나 눈이 적게 내리거나 그 내린 눈이 빠르게 증발되고, 봄철엔 가물어서 건조하고, 여름엔 더위가 나무의 뿌리부터 나무의 줄기속까지 물을 저장해서 잎까지 전달하는 통로를 흔들어 댈 때 이 구상나무는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데이터가 사실 무색한 것 같습니다. 실은 오늘, 그리고 어제 제주도에서 아시아와 유럽의 학자들과 대한민국의 많은 전문가, 그리고 NGO들이 모여 구상나무의 죽어가는 실상과 보전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었습니다. 제주도 그 자리에서 이곳으로 와서 오늘 이 발표를 다시 합니다. 그런데 이런 데이터가 몇 퍼센트의 고사를 설명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거의 한라산의 구상나무는 떼죽음이고 지리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리산에서 고산 침엽수가 가장 발달해 있던 천왕봉 중봉에서도 녹색의 활엽수를 뺀 나머지 침엽수들은 회색이나 흰색으로 다 죽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걸어가는 등산로 옆에서는 생생히 죽은 모습이 많이 보이지 않을 뿐이고요. 대부분의 나무는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태백산, 함백산, 설악산까지 분비나무도 밑동이 부러지거나 가지가 다 떨어지면서, 그렇게 침엽수는 한반도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설악산의 침엽수도 마찬가지로 죽음의 길을 걷고 있죠. 건강한 구상나무에서 잎이 탈락되고, 붉은잎 변색을 하고, 잎이 모두 떨어져서 잔가지가 탈락하고, 껍질도 떨어지고, 부러지거나 뿌리까지 뽑히면서.. 고사목 지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구상나무나 분비나무만 사라지고 다른 나무는 괜찮을까요? 대한민국 산림의 30%가 침엽수나 소나무입니다. 그러면 높은 고도에 있는 이들 나무만 사라지고 소나무는 무사할 수 있을까요? 제가 녹색연합의 활동가로 앞으로 얼마나 일할지는 모르지만 개인적 바람이 있다면 적어도 이 일을 하는 동안 만큼은 소나무에게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바람과 상관없이 객관적인 상황은, 물리적으로 제 오감으로 느끼는 현장의 상황은 매우 속도감 있고 매우 빠르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침엽수가 고사하는 원인은 기후변화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주제,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기록될지 모르는 이 멸종의 이야기는 곧 우리 삶의 언저리에 점점 더 다가오는 기후변화의 목소리가 아닐까요.

고맙습니다.

 

 

 

 

 

 

 

2019 그린컨퍼런스 연사들의 발표를 발췌하여 정리한 내용입니다.
녹색희망 특별호 269호 <기후변화의 증인들>에서 관련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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