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레토코 세계자연유산을 가다

2007.02.05 | 백두대간

일본은 홋카이도의 시레토코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10개의 문화유산과 3개의 자연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시켜 중국, 인도와 더불어 아시아 최대의 세계유산 보유국 반열에 올랐다. 이러한 성과는 일본의 범국민적 노력과 장기간의 조사연구와 민관협력, 정부의 지원, 관리보전에 따른 준비의 결과로써, 우리에게 세계유산 등재활동의 모범답안을 제시해 주고 있다. 한국의 녹색연합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한반도의 생태축이자 문화의 등뼈인 백두대간의 의미를 재평가하고 알리기 위해 백두대간 자연문화유산(복합유산) 선정활동과 더불어 세계유산 등재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그 활동의 일환으로 녹색연합 활동가(4명)와 백두대간 자연문화유산 선정위원(4명)은 이번에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자연유산의 환경과 생태를 둘러보고, 등재 성공 과정과 등재 이후의 관리와 실태를 살펴보고 적용하고자 시레토코 세계자연유산을 탐방하였다.

글/사진: 이용한(녹색연합 자연문화유산 선정위원)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을 빠져나온 버스가 고속도로로 들어섰을 때, 빗방울이 흩뿌리기 시작했다. 오후 2시인데도 하늘은 제법 컴컴해서 도로의 차들은 온통 전조등을 켜고 달린다. 여기서 시레토코를 가는 것은 홋카이도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가는 것과 같아서 부지런히 달려도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린다. 더더욱 홋카이도의 고속도로는 제한속도가 80킬로미터에 불과하고, 중간 지역인 오비히로를 지나면 내내 험하고 가파른 산길이 시레토코 반도까지 이어져 있다. 홋카이도의 가장 동북쪽, 마치 여우의 꼬리처럼 생긴 반도가 오츠크해를 향해 길게 뻗어 있는 곳. 홋카이도의 땅끝이라 할 수 있는 시레토코는 아이누어로 ‘지구의 끝’이란 뜻을 담고 있다.

밤 늦게 도착한 지구의 끝. 사실상 시레토코는 일본에서도 접근하기가 가장 어려운 지역 가운데 한 곳으로, 일본인들조차 외국에 나가는 것보다 힘들고 먼 여행지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시레토코에 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행할 가치가 충분한 곳이라고 다투어 말한다. 본래 국립공원인 시레토코는 지난 200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일본의 떠오르는 생태 여행지(Eco Tour: 우리나라에서는 생태 여행이 꼭 갯벌을 체험하고 새를 관찰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외국에서는 자연 생태지역을 방문하거나 그 지역의 문화자원을 둘러보고 체험하는 모든 여행을 에코 투어로 정의한다)로 주목을 받고 있다.

시레토코는 오츠크해 남단, 즉 북반구의 가장 낮은 위도에 위치하고 있어 해마다 겨울(1월)이면 북쪽으로부터 유빙이 떠밀려와 바다 전체를 뒤덮는다. 북쪽에서 떠내려온 유빙은 시레토코 자연 환경과 생태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유빙이 물러가면서 유빙이 운반한 풍부한 동.식물성 플랑크톤이 새우나 물고기(연어나 송어는 곰의 먹이가 된다) 등의 먹이가 되고, 이는 다시 흰죽지참수리나 흰꼬리수리와 같은 조류나 곰과 같은 포유류 등의 먹이 자원이 되는 것이다. 유빙이란 것이 풍요로운 바다 생태계를 만들어 육상 생태계를 돕는 생태순환 고리 노릇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유네스코에서도 이렇게 바다에서 육상으로 이어지는 복합적인 생태계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해, 자연유산 지역에 육상(48,500ha)뿐만 아니라 해역 22,500헥타르(ha)를 함께 포함시켰다.

■ 내셔널 트러스트로 지켜낸 세계자연유산

시레토코의 샤리 마을에서 짧은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산책을 하는데, 거짓말처럼 사슴이 눈앞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홋카이도 사슴이다. 가만 보니, 어미 사슴이 새끼 사슴을 데리고 나온 게 분명했다. 조심스럽게 10여 미터 가까이 접근을 해도 사슴은 그저 귀만 쫑긋 세울 뿐 도망칠 생각이 없다. 한 마디로 이 곳의 사슴은 사람 무서운 줄을 모른다. 그만큼 이 곳 사람들이 사슴에게 무서운 짓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런 행복한 풍경은 이튿날 아침에도 똑같이 되풀이되었다. 이번에는 숙소에서 불과 50미터 떨어진 곳에 여섯 마리의 홋카이도 사슴이 나타나 풀을 뜯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5미터쯤 가까이 다가가도 사슴은 아랑곳없이 즈이들끼리 둘러서서 아침 식사를 즐겼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레토코에서는 홋카이도 사슴이 이미 적정 수를 넘어 개체수 조절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한다. 사슴이 민가에 내려와 피해를 입히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마다 3미터 높이의 울타리를 칠 계획도 이미 세워놓았다는 것이다. 사슴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니, 어쩐지 우리에겐 행복한 비명으로 들릴 뿐이다. 숙소로 돌아와 함께 온 일행들에게 조금 전에 만난 사슴 얘기를 해 주었더니, 곧 곰이라도 만날 것처럼 다들 기대에 부푼 표정이다. 첫날 일정은 시레토코 국립공원 자연센터와 샤리마을 지방사무소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가는 동안에도 도로에는 <곰 출몰 주의> 표지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어디선가 당장이라도 곰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연센터에 도착할 때까지 곰은커녕 그 흔하다는 사슴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시레토코 자연센터는 1988년 샤리 마을을 주축으로 한 지역민들이 설립한 시레토코재단(22명)이 환경성과 샤리 읍사무소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국립공원 관리와 자연해설, 생태 조사연구 등을 주요 업무로 삼고 있다. 시레토코재단은 샤리 읍사무소와 함께 시레토코 반도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 주역이기도 하다. 처음 시레토코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첫걸음은 1993년 읍사무소 환경보전과에서 세계자연유산에 관한 조사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어 1997년 시레토코의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1인 1백평방미터(m2) 갖기 운동’과 ‘1인 8천엔 기부운동’을 전개하면서 본격적인 세계유산 등재활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본래 홋카이도는 아이누족의 터전으로 130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누족이 대대로 사냥과 채집생활을 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1868년 메이지 정부가 홋카이도를 식민지화하면서 100여 년 전 본격적인 홋카이도 개척과 인구 이주가 시작되었다. 워낙에 기상이 혹독한 곳이어서 한때 일본인들은 홋카이도 개척을 포기하고 본토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홋카이도는 제법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발전했고, 급기야 1970년대 이르러서는 샤리 마을에 부동산 투기 열풍까지 불어닥쳤다. 이에 이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 다름아닌 1백평방 갖기 운동을 전개했고, 결국 그들의 터전과 시레토코의 자연환경을 지켜내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활동이 세계유산 등재 당시 유네스코 실사단(2004년)으로부터 매우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시레토코재단은 바로 당시 1백평방 갖기 운동과 8천엔 기부운동을 통해 샤리 마을이 출자한 기금으로 설립된 것이다. 1백평방 운동에는 모두 49,024명이나 참여했으며, 당시 모은 기부금만도 5억 2천만엔이나 되었다고 한다. 샤리마을에서는 이것으로 지역 주민들이 보존하려 했던 지역의 땅 가운데 97.4퍼센를 사들일 수 있었다. 이렇게 지켜낸 소중한 자연은 오늘날 관광사업으로 발전해 시레토코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자연센터에서 만난 다나카 나오키 씨에 따르면, 시레토코 국립공원과 라우스 온천시설에 연간 230만 명 정도가 다녀간다고 하며, 그 중 샤리 마을을 찾는 관광객 수도 17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시레토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2005년에는 언론매체의 홍보효과로 관광객 수가 20%나 증가했다가 올해는 작년에 비해 그 수가 6% 정도 감소했습니다.”

시레토코재단에서는 학교나 마을회관에서 지역민과 학생들에게 ‘이 곳에서 곰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까’에 대한 교육도 시키고 있다. 가령 숲으로 들어갈 때는 자연센터에서 불곰 출몰정보를 확인하고, 불곰 퇴치 스프레이나 방울, 호루라기 등을 휴대할 것과 불곰과 맞닥뜨렸을 때 소란을 피우거나 달리지 말고, 침착하고 적절하게 행동하라는 것이 재단에서 알려주는 방법들이다. 시레토코에서는 종종 곰이 민가로 내려오거나 농사에 피해를 줄 때가 있고, 간혹 사람에게 위협을 주거나 달려들어 어쩔 수 없이 죽일 수밖에 없는 불상사가 일어나곤 한다. 이 때는 곰에 대한 사살 면허권이 있는 직원만이 곰을 죽일 수가 있다. 이런 곰에 대한 주의사항은 팸플릿이나 표지판 곳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는데, 국립공원 탐방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곰에 대한 교육을 받는 셈이다.

■ 불곰을 만나러 가다

시레토코 국립공원의 탐방로는 자연센터 인근과 라우스다케산(해발 1661미터), 시레토코 5호 등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5호 탐방로이다. 71,000헥타르(ha)에 이르는 세계자연유산 지역 중 국립공원의 면적은 38,600헥타르(ha)이고, 그 중의 80퍼센트 이상이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특별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시레토코를 찾는 관광객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은 탐방로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 셈이다. 5호 탐방로는 원시림에 둘러싸인 다섯 개의 호수를 한 바퀴 일주하는 생태 탐방로이다. 첫 번째 호수에서 마지막 호수까지 돌아보는데, 약 한 시간이 걸리며, 맑은 날에는 호수에 비친 시레토코 연봉의 아름다운 자태와 자작나무의 환상적인 반영을 만날 수 있고, 곳곳에서 야생동물의 발자국과 흔적(똥과 나무를 갉아먹은 흔적들)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곳에서 곰과 같은 야생동물을 만나리라는 기대는 버리는 게 좋다. 녀석들은 사람들이 자주 나다니는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센터에서 일러준 바에 따르면, 요즈음 곰을 만나기 위한 최적의 장소는 바로 이와오베쓰 강이라고 한다. 이와오베쓰 강은 연어와 송어가 올라오는 길목이기도 해서 하구에는 현재 연어와 송어를 잡아 부화하고 방류하는 채포장이 들어서 있다. 불곰은 바로 이 채포장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강 하류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다. 이맘때쯤 올라오는 연어와 송어를 잡아먹기 위해서다. 초식동물인 불곰이 기나긴 겨울잠에 들어가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지방 축적인데, 연어와 송어는 바로 이들의 겨울나기를 위한 지방 공급원이나 다름없다.

어쨌든 곰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와오베쓰 강으로 가야만 한다. 날은 흐리고 또다시 하늘에선 가랑비가 흩뿌렸다. 버스에서 내려 우리가 이와오베쓰 강 하구에 다 이르렀을 때, 건너편 산자락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되었다. 무언가가 어슬렁어슬렁 강가로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인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나는 좀더 그것을 자세히 관찰하려고 급히 망원렌즈를 갈아끼우는데, 누군가 “곰이다!”하고 소리쳤다. 렌즈보다 눈이 먼저 곰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그 소리에 놀란 곰이 숲으로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사진 찍을 새도 없이 녀석은 금세 숲으로 사라져버렸다. 틀림없는 불곰이었고, 불곰과의 첫만남은 그렇게 경황이 없었다.

얼마 뒤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기사가 다급하게 뛰어와 또다른 소식을 전했다. 위쪽에 지금 곰 세 마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서둘러, 그러나 조심스럽게 기사가 알려준 장소에 이르렀을 때, 이미 두 마리의 곰은 천천히 숲을 헤치고 들어가는 중이었다. 다른 한 마리의 곰은 우리 때문에 연어를 못잡게 되어 아쉬움이 남는지, 나무덤불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우리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불과 40여 미터 떨어진 거리였다. 세 마리의 곰을 승용차에서 지켜본 일본인 부부에 따르면, 녀석들이 개울을 건너와 불과 10여 미터 앞에서 똥을 누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보았다고 한다. 우리와 곰과의 대치는 5분 이상 계속되었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곰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먼저 자리를 피했다.

시레토코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생태계는 풍부한 먹이자원과 바다와 육지가 어울린 행복한 풍경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이 곳의 불곰 생식밀도는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데, 전문가에 따르면 시레토코 지역에 약 200~300마리의 곰이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특정지역의 곰 출생율과 생존율을 파악해서 나온 통계 수치다. 오래 전 우리나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반달곰 복원활동과 연계하여 이 곳을 다녀가기도 했다. 홋카이도에서 불곰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동물이다. 홋카이도의 본래 주인인 아이누족은 불곰을 ‘기문카무이’(‘산의 신’이라는 뜻으로 그들이 육지에서 믿는 최고의 신이었다. 바다에서는 ‘범고래’를 최고의 신으로 믿었다.)라 하여 신적인 존재로 여겼다. 그들은 곰이 ‘신들의 세상’에서 사람과 똑같은 생활을 하다가 때때로 곰의 가죽을 입은 상태로 이 땅에 내려온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사냥으로 곰을 잡았을 때조차 곰을 신의 나라로 돌려보내는 ‘곰 보내기’ 의식을 치렀다. 본래 곰 보내기(‘카미오안테’라고 함) 의식은 숲에서 발견한 새끼 곰을 집에 데리고 와 정성껏 키운 뒤, 제의와 함께 곰을 신의 나라로 돌려보내는 의식이었다.
  


곰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을까. 오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슴들이 가는 곳마다 눈에 띄었다. 우리가 하루 동안 만난 사슴만 해도 20여 마리가 넘을 정도였다. 시레토코에는 곰을 비롯해 홋카이도 사슴과 여우 등의 포유류, 흰죽지참수리(노란 부리와 흰 날개가 특징)와 흰꼬리수리(흰꼬리가 특징이며, 날개를 펴면 2미터가 넘는 대형 맹금류), 수리부엉이(날개를 폈을 때 1.8미터나 되는 세계 최대종 부엉이로서 명종 위기종)와 같은 조류, 점박이물범을 비롯한 바다표범류, 밍크고래를 비롯한 다양한 고래와 연어, 송어 등의 어류가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해안에서 해발 약 1,600미터의 산꼭대기까지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다양한 식생이 연속해서 존재하며, 우점종인 떡갈나무와 졸참나무, 자작나무와 가문비나무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 아이누족과 함께 한 에코투어



한국에서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나는 시레토코에서 보았고, 심지어 심통이 났다. 도대체 이 대단한 자연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있는가. 자연이란 손 대지 않았을 때만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일부러 공원을 만들고, 동물원을 만들고, 식물원을 만드는 것은 순전히 이 땅의 주인 노릇을 하려는 인간의 욕심과 눈요기 때문이다. 지구상 생명체의 대부분은 산업혁명 이후인 최근 100여 년 동안에 사라졌다. 이제껏 인간이 자연을 위해 한 일이라고는 화석연료를 불태우거나 전쟁을 일으켜 이 땅의 날것들을 죽이고,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켜 지구의 수명을 단축시킨 것밖엔 없다. 대량생산에 대량소비를 함으로써 이 땅을 대량폐기장으로 만들어놓은 것밖엔 없다. 최근 영국의 한 과학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2100년 쯤에는 지구에서 인간이 살만한 공간은 남극밖엔 남지 않을 것이라고.

저녁이 되면서 시레토코에는 비가 내렸고, 오츠크해 바다로부터 토네이도성 바람까지 불어닥쳤다. 본래 홋카이도가 바람이 심한 지역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피부로 느끼는 바람은 무서울 정도였다. 이튿날 아침 TV를 보다보니, 홋카이도에 토네이도가 덮쳐 19명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다행히 아침이 되자 바람은 한층 잦아들었다. 시레토코의 두 번째 날은 ‘시레토코 아이누족 에코투어리즘 연구회’(NPO Shinra에 속해 있는 연구회)의 안내를 받아 에코 투어에 나섰다. 이 연구회는 시레토코가 귀중한 자연의 보고임과 동시에 대대로 이 곳의 자연과 공존해온 아이누족의 생활양식, 자연관, 문화 등을 주체적으로 알리기 위한 단체이다. 아이누족 가이드인 하야사까 씨에 따르면, 일반적인 관광 프로그램에는 한번에 20여 명까지 참여할 수 있지만, 에코투어에는 한번에 10명 정도로 인원이 제한된다고 한다.

하야사까는 가장 먼저 우리를 연어가 올라오는 온나데쯔(아이누어로 ‘오래된 강’이란 뜻) 계곡으로 안내했다. 어제 곰을 보았던 이와오베쓰 강보다 폭도 좁고 수심이 얕아서 연어를 관찰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이 곳으로 올라오는 연어는 대부분 연어와 송어인데, 이 곳에서는 연어를 가리켜 ‘백연어’라고도 말한다. 여기까지 오느라 온몸이 헐고 상처를 입어 몸빛이 허옇게 보이기 때문이다. “연어는 아이누어로 시뻬라고 합니다. 음식이라는 뜻이죠. 아이누족에게는 연어가 곧 음식이었으니까요. 대대로 아이누족은 연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연어를 따로 ‘카무이 체프’라고 해서 ‘신의 음식’이라 불렀고, 맨 처음 잡은 연어는 신에게 바쳤습니다. 이 의식을 ‘카무이 노미’라 합니다. 120년 전만 해도 일본인은 바다에서 연어를 잡고, 아이누는 강에서 연어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허가 없이 연어를 잡다가는 곧 체포되고 맙니다.” 하야사까의 설명이다.

아이누족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강의 상류로 올라간다고 믿고 있다. 강의 상류에 천국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연어가 알을 낳고 최후를 맞기 위해 강의 상류로 거슬러오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아이누(‘사람’이라는 뜻)는 일본 홋카이도와 쿠릴 열도, 사할린 등에 거주하는 종족으로, 인종학상 유럽인종과 몽골인종의 피가 섞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인과의 혼혈로 인해 그 인종적 특질과 고유문화가 점점 소멸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들의 신체는 쌍꺼풀이 진 우묵한 눈과 튀어나온 광대뼈, 털이 많은 갈색 피부, 작은 키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들이 처음 일본에 터를 잡은 것은 기원전으로 거슬러올라가지만 8세기 무렵부터 일본인에게 밀려나기 시작해 홋카이도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때부터 식민화 말살정책과 동화정책 등으로 아이누족의 혈통뿐만 아니라 고유한 문화와 풍습조차 존망의 위기에 놓여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홋카이도 전체 인구의 4퍼센트(아이누라고 자칭하는 사람만. 어떤 이는 현재 16,000여 명의 아이누족이 남아 있다고 추정한다.)가 아이누족이라고 한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아이누에 대한 차별(취직에서부터 결혼까지)이 뿌리깊게 존재하고 있으며, 미국의 인디언과 비슷한 숙명으로 역사에서 퇴장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누족 가이드와 함께 한 에코투어는 오싱코신(용이 승천하는 폭포하는 뜻) 폭포와 해안을 따라 이어진 아이누의 성지 몇 곳을 돌아 샤리마을 촌장(촌장은 아이누어로 ‘코탕쿠르크’라 하며, 마을의 최고 연장자는 ‘에카시’, 의식을 집행하는 무당은 ‘투스쿠르’라고 함)이 머무는 항구마을에서 동코리(아이누의 다섯줄 전통 기타)로 연주하는 아이누족의 전통음악 공연을 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들의 전통악기인 동코리 안에는 과거 물범털과 같은 귀중한 것을 넣어 연주했다고 하며, 지금은 영혼을 상징하는 열매를 넣는다고 한다. 악기 안에 혼을 집어넣었으니, 그 악기가 내는 소리는 자체로 영혼의 소리나 다름없다.

사흘째 계속되는 악천후 속에서 우리는 시레토코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본 시레토코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의 극히 일부분만을 본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시레토코의 진면목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우리가 일정을 끝내고 시레토코 고개(해발 738미터)를 향해 달려갈 때,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풍경은 오츠크해 연안에서 너댓 마리의 고래가 헤엄치며 공중으로 물줄기를 내뿜는 행복한 풍경이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갯바위에는 가마우지가 떼를 지어 올라앉아 있고, 이따금 해안 절벽에서는 흰꼬리수리와 물수리가 날아올랐다. 시레토코 세계자연유산을 간직한 홋카이도는 일본에서도 자연 경관과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지만, 그것의 미래는 그리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전지구적 현상이 된 지구온난화는 홋카이도의 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쳐 이 곳의 겨울은 점점 더 짧아지고, 날씨는 점점 더 따뜻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유빙과 함께 환경오염으로 죽은 새들이 5천마리 이상이나 국경을 넘어 시레토코 해안으로 떠밀려 왔다고 한다. 수백, 수천 킬로미터 밖의 오염일지라도 그것의 피해와 영향은 나비효과처럼 번져나간다. 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나라는 제주도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한 유네스코의 1차 실사가 완료되었지만, 제주도의 난개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많은 주민들조차 보전의 가치보다 개발의 이익이 크다고 여기고 있다. 이제 막 세계복합(자연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은 백두대간은 사정이 더욱 심각한 상태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의 생명축인 백두대간은 등뼈가 잘리고 살점이 잘려나가는 파괴와 훼손이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 그 안에 깃든 소중한 유무형의 문화들마저 급속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현재 녹색연합이 추진하고 있는 백두대간 세계복합유산 등재 활동은 어쩌면 그런 심각함에서 비롯된 절박한 자구책일지도 모른다. 어떤 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는 그 사전준비에서부터 유네스코 실사와 등재까지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리는 조사와 절차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절실한 것이 지역민의 관심과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다. 전 국토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개발공화국의 깃발도 이제는 내릴 때가 되었다.

<한중일 3국의 세계유산 등재현황>

현재 우리나라에는 종묘를 비롯한 7개의 문화유산이 유네스코에 등재돼 있으며, 일본은 10개의 문화유산과 3개의 자연유산, 중국은 24개의 문화유산과 5개의 자연유산, 4개의 복합유산이 유네스코에 등재돼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자연유산이 없는 나라에 속한다. 세계자연유산뿐만 아니라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나 람사협약으로 등록된 곳조차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자연생태를 국가적 차원에서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이 땅에 엄연히 존재하는 생태계의 가치를 등한시하거나 가치를 제대로 규명하려는 노력을 펼치지 않은 탓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자연생태와 문화, 역사에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등 많은 사전 준비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은 시레토코를 자연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정부와 지역민과 학계가 협의체를 만들어 10여 년 동안 준비하고 활동을 펼친 끝에 등재에 성공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제주도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한 유네스코의 실사가 1차 완료되었고, 백두대간을 복합유산(자연문화)으로 등재하기 위한 준비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적 차원(문화재청)의 지원이나 협의체 구성이 아직은 미비한 실정이고, 지역민의 관심도 아직은 냉담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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