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녹색연합, 전국 걷는 길 실태 조사 결과 보고

2012.10.12 | 백두대간

녹색연합, 전국 걷는 길 실태 조사 결과 보고

– 각 부처별 중복 지정 투자로 예산낭비
– 관리운영 부재로 이용자 혼란 가중, 안전문제 심각
– 걷는 길 조성 가이드라인 수립과 통합 관리⦁운영방안 마련 시급

2007년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올레로 시작된 걷기 열풍은 전국적인 ‘걷는 길(트레일) 조성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각 부처와 지자체의 계획 없는 무분별한 길 조성, 과도한 경쟁과 선점식 사업으로 인해 ‘생태계 보전과 이용, 지역 사회와의 소통’ 이라는 가치는 사라지고, ‘걷는 길(트레일)’자체가 전시 행정의 표본이 되고 있다. 행안부는 명품길, 국토부는 누리길, 환경부는 생태문화탐방로, 문체부는 문화생태탐방로, 산림청은 숲길 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길 사업을 벌여, 온 나라는 ‘길’ ‘공사 중’이다.

2012년 현재 정부에서 조성한 길만 무려 500여(지자체 조성 길 제외) 곳에 달한다. 하지만, 현재 각 부처에서 실시하고 있는 길 사업의 문제는 심각한 상태다. 아무런 준비 없이 유행처럼 길 사업에 뛰어들다 보니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성 이후 관리·운영 방안이 없다. 특히 관리·운영 문제는 최근 제주올레 사고 이후 화두가 되고 있는 걷는 길 이용자의 ‘안전 문제’와 직결된다. 그러나 각 부처는 자신들이 조성 또는 선정한 길이라는 생색만 낼 뿐 관리·운영에 대한 책임은 모두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다.

녹색연합은 2012년 6월부터 각 부처에서 조성한 약 500여 곳의 길을 대상으로 전국 ‘걷는 길(트레일)’ 실태조사를 벌였다. 이번 조사는 우리나라 걷는 길의 조성 원칙과 관리·운영 방안을 수립하기에 앞서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 현장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인구의 고도 밀집과 개발 과잉으로 녹지공간과 걷는 공간 자체가 부족한 서울 · 경기 일부는 조사에서 제외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권역별로 나누어 km 당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곳을 선별해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길의 규모와 길이가 방대해 일일이 가보지 못한 곳은 지자체의 자료를 취합해 사업의 규모와 현장 상황을 파악했다. 조사 결과, ▶ 중복 지정 투자로 인한 예산낭비 ▶ 각 부처와 지자체를 통합한 걷는 길 조성 가이드라인 부재 ▶ 보행자 안전 위험과 혼란 가중 ▶ 길 조성 이후 관리운영 부실 등 다양한 문제점이 나타났다. 또한 각 부처와 지자체가 조성한 길이 종합 계획 없이 중복되면서 국가 트레일 위계가 무너졌다. 이제라도 길 사업에 뛰어든 부처들은 신규 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지금까지 조성한 길을 어떻게 관리·운영 할 것인지, 범정부적인 차원의 진단과 해법 강구가 절실하다.  

● 부처별 트레일 조성 사업 현황

1) 행정안전부 : 명품녹색길 [국비+지방비=5:5] 조성

행안부는 2011년 가장 늦게 후발주자로 길을 조성했음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 가장 많은 예산을 썼다.
▶ 환경부 5년간 49개소, ▶ 국토부 3년간 30개소, ▶ 행안부는 2년간 125개소다. 2년간 1천 2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집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길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합 홈페이지조차 없다. 언론에 노출된 공식적인 길 명칭으로 개별 홈페이지가 운영되고 있는 곳은 125개소 중 단 3곳이다.

자료 분석 결과 ▶ 행안부는 길 조성 사업으로 1km 당 평균 8천 2백만 원을 썼다. ▶ 산림청 1km 당 약 1천 4백만 원, ▶ 환경부 1km 약 3천 만 원 ▶ 국토부 1km 5천 5백만 원(해안누리길, 관동팔경 녹색경관길 제외)으로 타 부처의 길 조성 예산과 단순 비교해 볼 때 몇 곱절의 예산이 들어갔다. ‘친환경’, ‘생태’ 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산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데크 등 각종 시설물 사업을 한 것이다. 행안부의 존치 이유는 공무원 인사와 행정조직 관리와 민생치안 및 재난관리다. 단 한번도 ‘걷는 길’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적도 없는 행안부에서 길 사업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뿐더러, 행안부가 삼고 있는 주요 정책 목표 중 ‘국민이 만족하는 행정서비스 제공,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사회 구현, 창의와 신뢰의 선진 지식정보사회 구현, 경쟁력 있는 선진 지방자치 구현, 지역경제 활성화 및 서민생활 안정화 추진’ 등에 역행하는 일이다.

2) 국토해양부 : 개발제한구역 누리길 [국비+지방비]

2010년 10개 사업을 선정해 42억원을 지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누리길 사업을 진행해 현재 30개소에 이른다. 그 취지와 목적으로 볼 때 개발제한구역의 필요성, 제한적 이용의 실효성 등을 충분히 제고해 제한구역 내 살고 있는 주민들의 편익, 소득 증진을 위한 사후 관리·운영방안이 도출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010년 첫 해 사업 선정의 기준을 보면 ‘최대한 자연상태를 유지, 친환경적’이라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으나 실제 사업은 대부분 데크로드, 전망대, 화장실, 편의시설 등 시설물 설치에 치중되었다. 또한, ‘사업 선정 기준 평가표’에 지역주민 의견수렴은 5%, 사후관리 계획 역시 15%에 불과했다. 특히, 홈페이지가 없는 등 홍보 방안이 전무하여 2011년 기 조성된 누리길 10개소를 기반으로 연구한 ‘2011년 개발제한구역 누리길 조성 가이드라인 수립’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2012년 현재까지 개선된 사항은 없으며 누리길 30개소 중 단 한 곳도 홈페이지 등 유사한 최소한의 공간조차 없다.

국토부가 해결해야할 시급한 과제는 유행을 쫓아 트레일 조성 사업을 벌일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열악한 보행자도로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다. 시골에 가면 아직도 국도와 지방도에 인도가 없어 주민들이 목숨을 내놓고 갓길을 걸으며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국도는 노폭이 채 2m도 되지 않는 곳도 있어 경운기나 트랙터가 차선을 침범해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매년 국도 갓길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 발생 건수를 토대로 국도 전면 재정비 계획을 수립하고, 경제개발과 고속성장 신화가 낳은 자동차 우선 정책 대신 사람 중심의 도로 정책 전환에 먼저 힘써야 한다.

2) -1 국토해양부 : 해안누리길[국비]

국토부는 2012년 전국의 해안을 U자형으로 묶어 해안누리길로 선정했다. 길의 직접 조성이 아니라 경관이 수려하고, 주변 관광 자원이 풍부한 전국 52개 해안, 505.1㎞를 해안누리길로 선정했으며 이 중 전북 부안 변산마실길과 새만금 방조제, 내소사 숲길 등은 코레일과 연계해 관광상품으로 개발했다. 그러나 실제 조사 결과 관광 이벤트가 진행되었던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해당길이 해안누리길로 지정된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70% 이상이다(▶ 각 지자체 개별 문의) 지자체와 제대로 된 협의 없이 부처 주도형으로 사업을 진행한 결과다.

2) -2 국토해양부 : 관동팔경 녹색 경관길

관동팔경 녹색 경관길은 강원도 고성 대진등대부터 해안길을 따라 울진의 월송정까지 동해안의 6개 관동팔경을 잇는 걷는 길로 길이 총 330km, 2014년 완료 계획이다. 특히 경관이 수려한 동해안을 중심으로 한 중복 투자로 길의 명칭이 난립하고 있다. 동해안 일대는 ▶ 국토부의 관동팔경 녹색 경관길 ▶ 국토부의 ‘해안누리길’ ▶ 문광부의 ‘동해안 탐방로 해파랑길’ 이 중복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지자체에서 조성한 ‘동해안 낭만가도’(강원도와 6개 시·군 60억원 투자 / 고성∼삼척 간 국도와 지방도 연결 / 총 연장 240㎞)와도 중복된다. 같은 길에 각 부처, 지자체가 개별로 길을 조성해 예산을 집행한 예산낭비의 전형이다.

3) 환경부 : 생태문화탐방로[국비+지방비/ 5:5]

환경부는 2008년부터 생태탐방로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2012년 현재까지 49개소에 사업을 추진했다. 국가생태문화탐방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탐방로를 국가급과 지역으로 나누어 나름의 위계 설정을 하고 있으며 핵심, 전이, 완충 구역을 구분하고 시설물 설치에 대한 기준 또한 마련되어 있다. 해마다 탐방로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함은 물론, 결과보고서를 발간해 ‘국가급 탐방로’의 인증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진행된 결과는 가이드라인과 상이하다. 환경부 역시 국가생태탐방로의 위상에 맞는 통합 ‘홈페이지’가 없으며 시범 사업을 실시해 운영 중인 곳 역시 개별 홈페이지를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 최대 면적의 ‘왕피천생태경관보전지역’ 내에 탐방로를 개설하고도 탐방로를 비롯한 ‘왕피천생태경관보전지역’의 홈페이지가 없음은 탐방로 뿐만 아니라, 환경부의 생태계 보전 관리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4) 문화체육관광부 : 문화생태탐방로[국비]

문체부는 2009년부터 길 조성 사업을 진행해왔다. 신규로 길을 개설하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 소재 자연경관이 수려하거나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한 길들을 심사 평가하여 관리·운영에 지원해왔다. 통합홈페이지가 구축되어 있어 문화생태탐방로의 정보가 상세히 드러나 있다. 그러나 많은 예산과 공을 들여 발굴한 길이 부처간 지자체간의 소통 부족으로 현장에서는 충분히 안내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용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광역단위의 ‘해파랑길’(부산~강원도 고성)을 선정하면서 민간이 개척한 길과 지자체의 길이 중복되면서 길의 위계가 뒤엉켰다. 길의 중복 지정으로 인한 이정표의 혼재, 길의 위계 문란, 현장에서의 안내 부족은 부처를 뛰어 넘어 전체 길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5) 산림청 : 숲길[국비]

국유림 중심으로 조성되는 길로써 공공의 목적이 뚜렷하다. ‘지리산숲길’과 ‘금강소나무숲길’ 등은 민관협력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다. 매 해 길의 운영결과보고서가 발행되고 있으며 탐방객의 수요 조사와 만족도 조사도 포함된다. 길 운영에 대한 정책 방향을 수립하기 위해 전문가와 실무자, 마을 주민이 함께하는 정기적인 위원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각 부처 중 유일하게 사후 조성단계부터 관리·운영에 대한 계획과 예산이 반영된다.

● 중복 투자(예산 낭비) + 국가 트레일 위계 문란 + 이용자 혼란 가중


▶ 관동팔경녹색경관길(국토부)/강원도 고성 ~ 울진군월송정(330km)    ▶ 낭만가도(지자체)/강원도 고성~삼척(210km)


▶ 해파랑길(문광부) 강원도 고성 ~ 부산 오륙도(688km)        ▶ 해안누리길(문광부)/전국해안52개소/505.1km

● 걷는 길(트레일) 조성 가이드라인의 부재 : 과도한 시설물 설치 사례


▶ 전남 영암군 녹암마을 : ‘왕인문화체험길’(행안부) 대동제 구간  – 노폭 2m 이상 둑방에 데크로드 설치


▶ 경기 여주시 : 강천섬 탐방 녹색길 (농로 위 데크 로드 1km / 이중 설치 구간)

● 걷는 길 부적절 + 이용자 안전 위험 사례


▶ 경북 울진군 일대 : 불영계곡로 – 36번 국도 가드레일 바깥쪽 시멘트길 + 데크로드 이정표, 좁은 노폭 안전 주의 등 전무

● 관리운영 부실 사례


▶ 경북 문경시 : 선유동천 나들길 (잡초로 발 딛을 틈이 없는 데크)


▶ 광주 서구 : 영산강 서창포구 탐방로(길 진입로에 베어진 나무들이 쌓여 있음)

● 이정표 중복 : 이용자 혼란 가중


▶ 왼쪽 -> 영주시 : 풍기인삼개삼터길(행안부) 이정표 + 소백산자락길(문광부)
▶ 오른쪽 -> 강원 정선군 : 강원 산소길 동강길 이정표(지자체) + 문화생태탐방로 동강길(문광부) 이정표


▶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 유교문화길(문광부) + 선비길(행안부) 안내도

● 광역 트레일 + 지자체 트레일 : 트레일 위계 문란 + 이용자 혼란 가중

– ‘해파랑길’(문광부) + ‘부산 갈맷길’(지자체)


▶ 약 10m 간격에 마주보고 설치되어 있는 ‘해파랑길(문광부 / 왼쪽)’ 이정표와 ‘부산 갈맷길’(지자체 / 오른쪽) 이정표
▶ ‘해파랑길’ 별도의 이정표가 있음에도 ‘갈맷길’ 이정표에 ‘해파랑길’ 중복 표시


▶ 갈맷길에 설치되어 있는 갖가지 모양의 해파랑길 이정표

– 국가생태문화탐방로 ‘퇴계오솔길’(환경부) + 예던길(녀던길)


▶ 경북 안동시 : 국가생태문화탐방로 ‘퇴계오솔길’의 이정표(단천교 앞)

걷는 길 조성 가이드라인 수립과 통합 관리⦁운영방안 마련 시급

현재 부처별 걷는 길의 ‘가이드라인’은 있으나 관리감독이 부실해 무용지물이다. 사업 대상지의 중복으로 인한 예산낭비를 막고, 효율적인 관리·운영을 할 수 있도록 ‘통합조성가이드라인과 관리운영원칙’이 수립되어야 한다. 불필요한 시설물로 인한 환경훼손과 경관훼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기존에 있던 옛길 등을 발굴 복원하도록 세부적인 사항까지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길 사업 선정의 심사 기준에서 조성 이후 관리·운영 계획에 대한 점수를 높이고, 지리산과 금강소나무숲길의 사례처럼 지역주민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 이와 같은 ‘통합조성관리운영원칙’에 따라 민관의 역할을 나누어, 길의 운영관리는 지역의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전담인력이 맡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관 협력의 관리 시스템 운영은 길의 물리적 공간 관리뿐만 아니라 이용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질 높은 서비스를 담보할 수 있다.

‘둘레길’은 자연생태계에 압력을 주는 종주형 탐방문화를 극복하고, 자연 환경훼손을 최소화하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 지역사회와 이용자의 자발적 참여를 추구하는 ‘소통’의 개념에서 생겨났다. 이와 같은 길의 가치와 의미를 정립하고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길의 조성 주체, 지역사회, 이용자까지 모두에게 책임이 따른다.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져야 걷는 길이 아닌 ‘걷고 싶은 길’이 될 수 있다. 길에 대한 아무런 준비와 개념 없이 길을 조성하는 것은, 잠시 유행에 반짝하는 또 다른 개발 사업이며 예산낭비일 뿐이다. ▶ 국토 전체에 대한 공간적인 이해와 길에 대한 가치를 바탕으로 ‘통합적인 가이드라인 수립’, ▶ 길에 대한 ‘정확한 위계 정립’과 그 용도에 맞는 ‘관리·운영 방안’ 수립 전까지 각 부처에서 실시하고 있는 현재의 길 사업은 보류되어야 한다. 신규 사업보다 기존에 조성된 길을 어떻게 제대로 관리하고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 전국 트레일 실태보고 : 녹색연합 웹하드 > 게스트 폴더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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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2일

녹   색   연   합

※ 문의 :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010-8478-3607, kioygh@greenkorea.org)
             배제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팀장 (010-7111-2552, thunder@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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