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잔재라면 말뚝도 뽑는데, 왜 지명은 그대로 부르세요?

2011.03.09 | 백두대간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왕능리 마을회관 건립비. 두 번째 줄부터 읽어보면 마을 이름의 한자가 일제 강점기 때 변경되었음이 적혀있다
3월이라 하면, 향긋한 꽃 냄새,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 두근거리는 입학식과 새 학기 그리고 3월의 첫 날인 3·1절도 떠오른다.
일제강점기가 65년 이상 지난 지금 정부 및 지자체에서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정부 외에도 시민단체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 중 일제 강점기에 창지개명(創地改名)된 지명을 바로잡는 활동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일제 잔재라고하면 한 걸음에 달려가 산에 박힌 말뚝도 뽑는데 왜 일제 강점기에 변경된 지명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창지개명(創地改名)?
우리의 민족정신과 정체성을 없애기 위해 강제로 성(姓)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것을 창씨개명(創氏改名)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지명(산, 봉우리, 마을 등)을 일본식으로 바꾼 것이 창지개명이다. 창지개명의 대표적인 사례는 왕(王)이 들어가는 지명을 일본의 왕을 뜻하는 ‘왕(旺, 日+王)’으로 바꾸어 표기하거나, 왕 대신 일본 천황을 뜻하는 황(皇)을 넣거나 구(龜, 나라이름 구, 거북 구)와 같이 복잡한 한자를 단순한 한자인 구(九, 아홉 구)로 바꾸는 것이다.

백두대간 인접 지역의 창지개명 된 23개 지역 중 13개만 지명 변경

녹색연합은 백두대간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를 없애기 위해 지난 2005년부터 ‘백두대간 우리 이름 바로 찾기 운동’을 진행하였다. 이 속에서 창지개명 된 백두대간의 본래 이름을 되찾기 위해 ‘바로 잡아야 할 백두대간 우리 이름 조사보고서(2005년)’를 발행하였다. 2005년 녹색연합 자체 조사 이후에 지명이 변경된 곳은 9곳이다. 사회적으로 창지개명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진지 약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일본식으로 개명된 19곳 중 9곳만 지명이 변경되었다.





▲ 바로 잡아야 할 백두대간 우리 이름 조사보고서(2005, 녹색연합), 일본식 지명 정비현황 (2007, 국토지리정보원)

지명변경은 “측량ㆍ수로조사 및 지적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의해 위원들이 임명되고 변경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국가 지명을 변경하려면 먼저 지명변경요청을 한다. 지명변경요청을 하면 각 지자체 별로 꾸려진 지방지명위원회에서 지명변경요청 근거를 바탕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하지만 모든 지자체가 지방지명위원회를 꾸리고 있지 않다. 지방지명위원회에서 승인이 나면 국토해양부 소속의 중앙지명위원회로 넘어간다. 중앙지명위원회에서 논의를 한 후 승인이 나면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고시 하고 이후 이정표, 안내도 등의 지명을 개정한다. 국가의 지명을 변경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자료와 근거, 그리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지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지자체 별로 모두 다르고, 중앙정부마저 지명의 종류에 따라 국토해양부, 행정안전부, 국방부 등 부처가 나뉘어져있어 국가적인 차원의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현재 지도와 지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중앙지명위원회에서 승인한 지명을 고시하는 역할만 하고 있을 뿐 일제강점기 지명 변경과 관련 된 사업계획이 없다.  

지금 행정구역도 일제 강점기에 나뉜 거라고?
일제강점기의 잔재는 지명변경 외에도 행정구역체제에도 남아있다. 우리나라 행정체제는 1914년 일제가 편리한 통치와 자원수탈을 위해 진행한 행정체제 강제 개편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 개편은 백두대간 산줄기와 물줄기를 통해 형성된 자연스런 마을 생활권과 문화권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행정구역 체계를 무시하는 형태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 행정구역 체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지역주민의 생활권을 고려하지 않은 체계이기 때문에 큰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하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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