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해주]□ 연해주 생태탐방 활동 보고서 (3) – “자연 원형 그대로의 땅”

2003.08.19 | 백두대간

□ 연해주 생태탐방 활동 보고서 (3)

“자연 원형 그대로의 땅”

김은정 / 부산녹색연합 활동가

두만강 접경지역이자 3개의 자연보호구가 위치하고 있는 연해주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소련붕괴와 재정악화, 공동화 현상으로 인한 지역 주민의 무력감은 밀렵과 남획을 부채질하여 자연보호구의 생태계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WWF-러시아는 지방정부, 지역주민, 관련 이익집단과 함께 생태관광을 시도하고 있다. 「2002 생태교육자 러시아 탐방 프로그램」은 이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모니터링이었으며, 이와 함께 광활한 지역에 걸쳐 원시 자연이 살아 숨쉬는 생태계의 보고를 견학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전국에서 선발된 12명의 활동가들은 5월 21일부터 25일까지 야생의 땅, 러시아 연해주 자연보전지구를 탐사했다.

<한국의 귀한 야생화가 아무리 흔해도 남루한 지역주민과 폐허를 감출 수는 없다>
차가운 아침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 회색항, 러시아 자루비노항으로 들어오면서 우리의 탐사는 시작되었다. 바다로 길게 나와 있는 가모브(Gamov)반도의 작은 만 비차스의 울창한 숲속에 우리의 숙소가 있다. 군용트럭을 개조한 WWF의 산악용 버스를 타고 항구를 벗어나면서부터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절경과 투명한 해안, 야생화들은 이곳이 야생의 땅, 연해주, 자연보전지구임을 실감하게 했다. 가모브반도는 아열대식물의 북방한계선이다. 너무나 색이 고운 철쭉을 만날 수 있는 최북단이며, 멸종위기에 처한 아무르표범의 서식지도 이곳이 경계라고 한다. 가모브 등대 주변의 해안은 강한 태풍으로 인해 토양의 침식이 심해 키 큰 나무보다는 관목과 다년생풀들로 바람에 넘실거린다. 이곳을 지나던 수많은 배들은 태풍으로 인해 난파되어 바다속에 수장되었는데 최근에 일부가 발견되고 있다. 해안 절벽과 바위틈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야생화들이 이곳에서는 넓은 군락을 이루어 피어 있는 흔한 들꽃에 불과하다.
더덕향을 따라 걸어가는 오솔길엔 은방울꽃, 꿩의다리, 바이칼바람꽃이 길을 일러주고,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 해안엔 두루미풀, 노랑원추리, 각시붓꽃 군락이 색을 더해준다. 그리고 습지에서 만난 화려한 조름나물 군락.
그러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 이곳 프리모스키 지역주민의 공황을 채워주는 것은 아니다. 50%가 넘는다는 지역 주민의 실직율은 민가 어디서나 드러난다. 정돈되지 않은 마을 주변, 쉽게 볼 수 있는 폐가, 남루한 옷차림들, 넘치는 고철더미와 쓰레기들. 붕괴되어 가는 농어촌의 모습은 한국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를 더하는 냉전의 잔해들. 이곳은 과거 극동 군사지역의 거점이었다. 2차대전시 침몰한 포경선은 지금까지 방치되어 있고, 곳곳에 남아있는 벙커와 대형포, 군사시설은 소련붕괴 전․후의 변화를 소리 없이 알려주고 있다. 특히 숙소가 있는 비차즈만의 대형 돔은 돌고래, 물범과 같은 해양동물의 군사작전 훈련소로 유명하였으며, 인명살상과 지형파악 등의 실전에 활용했다고 한다.

<바다새와 물범의 서식처, 철저한 보전과 밀렵의 갈등>
해양보호구는 섬에 대한 상륙 자체를 금지하고 있으며, 선상에서만 관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레인저들이 밀렵감시를 위해 2명씩 교대로 보름에서 20일씩 주요 섬의 기지에서 숙식하면서 감시활동을 전개한다. 그럼에도 밀렵에 따른 생태계파괴가 심각한데, 특히 주요 소비국인 중국을 대상으로 대게와 해삼을 남획하고 있다고 한다. 첨단화되는 밀렵꾼에 대항하는 러시아 레인져의 활동은 부족한 재정과 인력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가 오는 불안한 일기에도 불구하고 가무브반도 동쪽에 위치한 해양보호구를 떠났다.
세 시간여를 무료하게 항해해서 만난 물범의 눈동자는 무료함, 불안감, 추위 등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맑고 푸른 바다를 닮은 눈과 마주친 우리는 호기심으로 서로 목을 빼고 쳐다보았다. 그들에게 우리는 자연의 이방인으로 보였을까, 또 다른 한 종의 동물로 보였을까? 해양보호구의 상징은 아무래도 물범인 것 같다. 물범이 노는 바위 곁 절벽에는 수많은 바다새들이 함께 둥지를 틀고 있었다. 흰눈썹바다오리의 붉은 발에 탐방객들은 이구동성으로 감탄을 했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나는 칼새의 날개짓 너머 햇살이 어찌나 정겹던지. 바위절벽을 하얗게 만들어 놓은 검은 날개의 가마우지는 둥지마다 알을 품고 있다.
선착장을 비롯한 해안가 맑은 물 속에는 성게가 지천이다. 바위틈엔 해삼도 많다. 어른 손바닥보다 큰 가리비 껍질이 많은 것도 놀랍고, 멀리서 봐도 투명한 물은 부러울 따름이다. 이곳이 한국의 해안과 다른 점은 아주 극한 상황의 해안절벽이 아니면 해송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있는 숙소가 해안에 있고, 하루를 계속 해양에서 보낸 것에 비해 해양생물을 좀 더 관찰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해양연구소는 지금도 연구를 진행 중인데 한국의 용역연구도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곳 역시 불가사리에 의한 피해가 극심해서 대처방안 마련이 큰 과제라고 한다.

<표범과 같은 자리에 서 보다>
1916년에 지정된 케드로바야파트 자연보호구는 연해주 식물상의 절반을 볼 수 있는 생태계의 보고로서 극동표범의 유일한 자연서식지이다. 신갈나무가 주종인 한국과 비슷해 보이는 숲은 그러나 훨씬 역동적이다. 사슴길을 따라 걸으면 물 마시는 휴식처가 나타나고 곳곳에 야생동물의 흔적이 있다. 목청을 먹기 위해 백년이상 된 느릅나무 밑둥을 구멍낸 곰, 나무 높이 120-140㎝에 오줌을 눈 흔적에서 호랑이의 냄새도 맡아보고, 자연보호구에서 만난 맹독의 까치살모사는 반가움을 더해 준다. 극동표범은 겹겹이 쌓인 산들 너머로 습지가 이어지는 광경을 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표범이 쉬었다는 앞이 툭 트인 산 중턱 평지에 섰을 때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는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엄격한 밀렵금지는 물론 허용된 사냥에서조차 사냥개에 의한 사냥은 금지하는 세심한 배려와 철저한 원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과 함께 WWF-러시아는 중국과의 협력으로 극동표범 보호지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중국과의 협정서는 이미 체결되었으나 향후 시스템 구축에 10년 정도 소요 될 것으로 예상되는, 끈기가 필요한 사업이다. 장기적인 보전계획이나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일회성, 길어야 3년을 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해안사구와 습지,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원형을 찾다>
케드로바야파트 자연보호구에서 시작하여 두만강하구지역에 위치한 핫산자연공원에 이르는 드넓은 땅은 끝없이 펼쳐진 초원지대와 해안사구, 석호, 하천, 염호, 기수호 등 해안지역에 형성된 자연 그대로의 습지이다. 해양생태계와 육지생태계를 단절시키는 연안생태계의 개발 – 우리나라의 해안도로와 도로주변의 모텔, 음식점과 같은 난개발 -이나 매립이 없어 해안사구와 사행천, 석호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잘 볼 수 있다. 해안선마다 한국에서는 사라져 가는 해당화 군락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핫산자연공원의 시작은 두루미 인공사육장이다.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녹색물결을 따라 노루가 뛰어 놀고 거대한 늪과 호수, 강이 이어져 바다에 다다른다. 과거 명지주거단지가 들어서기 전, 사진으로만 보던 명지갯벌의 푸른 물결을 나는 여기서 확인하였다. 겨울이면 남쪽으로 이동하는 두루미가 지친 날개를 쉬기 위해 몇 번을 내려앉다 결국은 다시 떠나고 마는 아픔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스스로 파괴해 버린 낙동강하구의 원형을 답사하며, 그나마 남아있는 을숙도 남단 갯벌마저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부산의 현실에 참담했다.
그 지평선 너머로 산들이 중국과 북한으로 어깨를 걸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고려인의 아픔이 서려 있기도 하다. 구한말 땅을 찾아 정착한 고려인들은 러시아의 전략적 지원에 의해 개명하고 농사를 짓고 삶을 꾸렸으나 1938년 이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하고 만다. 그 후 촌락의 흔적과 거대한 2개의 호수만이 말없이 이 땅과 함께 하고 있다.

<어딜 가나 검은 흙과 습지, 그리고 숲….아름다우나 무언가 허전하다>
이동 때마다, 그리고 탐방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적이 산불이다. 매년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의 영향은 연해주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라고 한다. 또한 산불이 발생해도 속수무책으로 놔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언덕에도 초지가 많고 그 흙은 검다. 우리가 처음 만난 가모브반도의 벌거벗은 언덕도 불탄 이후라고 하는데 자연천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WWF-러시아는 개발을 하지 않도록 지방정부와 협의해 보전하기로 했다고 한다.
끝없이 초지와 하구가 이어지는 이면부임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에 비해 들리는 새소리나 관찰되는 조류는 단조롭고 일차적으로 보이는 개체수도 적다. 숲에서 관찰하는 포유동물의 흔적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생태계의 하부구조가 빈약해 보였다. 너무 넓어서 한국에 비해 밀도가 낮아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지속적인 산불이 토양과 하천에 미친 영향으로 단순해진 것일까? 그러나 빡빡한 일정에 쫓겨 늘 이동해야 하는 탐사팀은 훑어만 볼 뿐 그것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환경의식이다. WWF의 담당자가 산불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도 보호구 어디서나 불을 끄지 않은 꽁초를 버린다. 안내자도 마찬가지다. 어디에나 널려있는 쓰레기의 원인도 정부부터 개념이 없기 때문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생태관광에 앞서 지역주민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부터 진행되어야 할 것 같다.

<삼국의 국경선 너머로 생태계는 이어진다>
연해주는 생태계로 볼 때 한반도와 같은 권역에 속한다. 그래서 흰눈썹황금새, 큰유리새, 꾀꼬리와 같은 친숙한 새가 많다. 또한 한국에서는 희귀하나 북방에서 볼 수 있는 꼬리치레, 붉은왜가리, 한국동박새와 같은 조류도 만날 수 있다. 이들 새를 따라 습지를 이동하다 보면 러시아연방의 최남단(두만강하구), 러시아․중국․북한의 접경지에 다다른다. 러시아와 중국 초소 너머로 두만강이 흐르고 나룻배가 북한으로 사람을 옮기고 있다. 현재 이곳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두만강의 수질오염이다. 기준치의 2,500배가 넘으며, 심각한 중금속오염은 기형물고기의 빈번한 출현과 두만강 산물의 섭취를 금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어느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닌 삼국의 공동 과제일 수밖에 없는 자연생태계의 파괴는 국경이라는 인위적인 선긋기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연해주 생태관광은 자체의 협력과 노력뿐 아니라 유엔개발계획(UNDP) 두만강 네크워크(Tumen-NET)에 의한 국가간 환경협력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생태계를 국가나 행정구역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반도 백두대간을 따라 호랑이가 넘다들던 곳이 바로 이곳 두만강이다. 두만강은 생태계의 연결고리이다. 백령도를 찾는 물범과 이곳의 물범은 가족이다. 한반도와 연해주도 한 가족이다. 강, 숲의 원래의 모습을 지키고 보전하려는 생태계에 대한 지속적 연대와 잃어버린 생태계 축을 회복하는 것이 향후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바다와 만나는 두만강의 끝, 바다의 시작을 보면서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연해주는 자연의 혜택을 그대로 누리는 야생의 땅이었다. 격동의 19세기를 넉넉히 품고 그 생채기를 드러낸 채 야생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하늘높이 솟아 있는 산맥의 끝자락에서 굽이굽이 하천이 흘러흘러 하구를 형성하고, 간헐적인 범람은 다양한 습지를 펼쳐놓는다. 강이 바다와 만날 즈음엔 석호가 생성되고 해안사구와 습지는 함께 시나브로 이어진다. 넓디넓은 초록의 땅은 한국에서는 단절되어 보이던 자연의 본모습을 한눈에 설명해줬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초원과 생태계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겐 큰 축복이었다.
그 아름다움이 너무 깊어 철저하게 파괴된 낙동강하구와 부산의 연안을 재인식하는 것은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내가 본 원형으로 복원하기에는 이미 늦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지금 우리의 할 일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현재의 보전과 가치를 되찾는 작업인 것이다. 나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로 낙동강하구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의 심각성을 보지 못하고 개발을 정당화하거나, 미리 포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갈가리 찢기고 상처입었음에도 여전히 우리의 아이들을 품어주고 숨겨진 보석을 키우고 있는 낙동강하구와 이곳을 사랑하는 부산시민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 연해주와 같이 마땅히 보전되어야 하는 원칙이 지켜지는 낙동강하구를 되찾기 위해, 그래서 미래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우리가 되도록 사람들과 엮어가야 하는 정당성과 중요성을 가슴에 각인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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