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 청와대 앞 단식 농성 재개 (58+43일째)

2004.12.08 | 백두대간

다시 거리의 단식장에 서며……………..      

많은 사람들이 이젠 단식을 중지하여 줄 것을 제게 청합니다. 또한 단식이라는 저항 방법에 대하여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천성산 문제에 대하여 애정어린 기사를 실어주셨던 한겨레 신문에 실린 단식중지 권고에 대한 사설을 보면서….. 저 역시도 두리번거리며 저를 내려 놓을 한조각 땅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그 사설에서처럼 생명을 아끼고 저를 염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사회의 부조리한 관성과 아픔을 인정하고 굴복하는 한없이 착한 인성들만이 보일 뿐입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소박한 꿈과 믿음의 응시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 가면서도 그 하늘을 덮고 있는 독재와 폭정의 유전을 인정하는 분노를 슬픔으로 바꾸는 착한 마음들을 생각하면 문득 아득하기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천성산보다는 제 목숨이 중요하다고 하는 연민의 착한 눈동자 속에 담긴 한없이 순한 마음들을 기억합니다.  

때때로 저는 피의 혈서인 계시록을 쓴 요한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우리 모두는 국토가 무너지고 황폐화 되는 역사 속에 태어났으며 어쩌면 그것이 제 원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고 느끼는 것은 절망을 미래에 옮겨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10월 4일 국립혈액원의 발표에 의하면 수혈받은 청소년의 23% 혈액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는 혈액이라는 놀라운 발표가 있었으며 경희대 의료원의 보고에 따르면 태어나는 신생아의 2%가 기형이라고 합니다.

연일 계속되는 재해에 대한 보고에 의하면, 지구 환경지수는 3시간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하며 자연의 분노는 이미 시작되어있고 이제 이 징조들은 우리 곁으로 선뜩 내려와 있으며 산술적인 놀라운 수치는 계속 될 것입니다. 공기가 오염되고 물이 병들고 이 땅에 뿌리 내렸던 무수한 생명들이 이 땅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법과 행정은 지금 경제라는 유령의 지배를 받으면서 스스로 권력이 되어 이 사회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또한 그 권력은 자신의 실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악의 세력들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저는 천성산 문제를 통하여 자연이 병들기 전에 병들어 버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이 사회의 중요 환경현안으로 정부와 환경부 장관, 그리고 공단과 법원에서 재평가에 대한 협의서를 작성했던 일이 2박 3일의 환경영향평가 결과로 마무리 되고,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재검토 없이는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고 했던 법정은 진행 과정과 절차를 돌연 중지하고 피고측의 자료에 의지하여 10개의 보호지역을 관통하여 가는 소송에 단 한번의 현장검증과 사실조회도 없이 재판을 속개하여 법적 절차의 하자와 환경영향평가 미비의 사인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40만 도롱뇽의 친구들이 그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라는 “소유권 수인한도”를 운운하며 공사 강행 판결을 내립니다.

많은 사람들은 저처럼 법률에 문외한입니다. 상세한 법적 조항과 판례에 개인적으로 사견을 보탤 수 없는 일임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진행되었던 과정, 절차, 합의의 이행 요구는 원고의 법적 권리입니다.

선거전 대통령의 공약이 정치적이었다면, 이후 두 번에 걸친 문재인수석과의 협의, 환경부 장관과 협의는 지켜졌어야했습니다. 그들의 소임은 나라의 안위를 위해 군을 보호하고 외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회의 갈등과  올바른 지향을 위해 헌신해야하는 관료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훼하고 신의를 저버리는 것을 세상의 악이라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일으켜 세우려는 경제문제 이상의 가치이며, 한 개인이 범죄에 빠지며 한 가정이 불화하고 한 국가가 붕괴되는 이유입니다. 도덕적으로 병들어가는 이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통제가 되지 않는 권력과 자본만능주의 사상이 이 사회의 악으로 뿌리 내리고 있는 한 이 사회가 올바로 가고 있다는 희망은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매순간의 삶은 원칙과 약속, 신뢰와 평등이라는 이 사회의 준칙 속에 올바른 지향을 위해 진실되게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감히 애정어린 눈으로 높은 청와대 담장너머를 바라보며,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이 땅의 안위를 위해 백두대간의 골수를 파고 혈과 맥을 끊는 재앙을 막기 위해 기도하지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국운은 창성하고 모든 생명은 이 땅에 영원하소서!

2004년 12월 8일  지율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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