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탐사 두번째]금강과 섬진강의 뿌리

2005.01.03 | 백두대간

[호남정맥 탐사 두번째] 수분재 ~ 오계치

호남정맥으로 향하는 두 번째 아침, 여전히 분주하다. 여기 저기서 칫솔 챙겨요~ 이물건 누구 거예요? 다급한 목소리들을 상자에 쑤셔 넣고 길을 나섰다. 장수읍 수분리에 위치한 수분재에서 출발한다.

수분마을은 금강의 발원지이며 물줄기가 나뉘어져 금강을 이루며 서해로 섬진강을 이루며 남해로 흐른다. 물의 뿌리라는 뜻으로 물뿌랭이 마을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으로 향하는 길. 마을 샘이 맑고 예쁘다. 마을 쪽으로 3.5m의 콘크리트 도로가 나있다. 능선방향에는 송전탑과 참호가 들어서 있다. ‘금강 발원지 뜸봉샘 1.2km’ 이정표를 보고 길을 잡는다. 뜬봉샘에서 섬진강의 발원지가 가지는 경건함으로 조심스럽게 물 한바가지를 뜬다. 티 없이 맑아야 할 샘물에 검은 이끼가 섞여 있어 여러 번 조심스럽게 떠내야 했다. 몇 모금의 물을 마시고 신무산으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

뜬봉샘 위로 철제 울타리를 넘으니 3~4m 정도의 임도가 나타난다. 산사면의 절개가 심하고 도로도 포장이 되지 않아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있는 상태다. 조금 더 내려가니 산사면이 온통 깍여 있고 축사와 목장이 넓은 면적 펼쳐져 있다. 차고개로 가는 13번 국도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니 <장수축협한우사업소> 목장이었다.

차고개를 넘어 봉우리를 하나 오르니 함미성이 나왔다. 후백제 시대에 군대가 주둔했던 성터였다고 한다. 백두대간 남원구간인 수정봉-고남산, 복성이재 등의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성터가 발견된다. 일부 무너진 부분을 포함해서 약 80m가량의 성터는 돌을 쌓은 그대로 아직 남아있다. 단청이 둘러진 함미성 안내판 곁에 돌탑이 서있다. 괜한 ‘관광지 조성이다,  문화재 관리’라며  헛돈 쓰지 말고 이런 곳을 복원하여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훨씬 알찬 관광자원이요 문화재 보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미성을 제대로 조사하여 과거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지혜가 아쉽다.

함미성을 지나 팔공산으로 향하는 가파른 바위를 올랐다. 산의 정상부는 눈바람으로 허옇게 왕관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에는 경찰송신중계소가 군사시설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일부는 사용기한이 지난 것도 있었으나 복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다. 군사시설인 동그란 얼룩무늬 참호를 비롯해 경찰 통신 중계소,  KBS중계탑 등 팔공산 정상이 각종 시설로 가득 차 있다. 나무들의 자리에 들어선 구조물이 위풍당당, 겨울날 매서운 칼바람에도 아랑 곳 없다.

팔공산 자락은 광산부터 도로건설까지 다양한 인간의 손길로 훼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산이 지니는 지리적 위치나 경관적 가치가 높음에도 관리를 하지 않아서 방치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팔공산부터 멀리 북쪽으로 성수산까지의 주능선이 장대한 호남정맥의 기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장수와 진안의 경계를 이루는 산줄기는 해발 1000m가 넘는 줄기로 호남정맥에서 가장 뚜렷한 산세를 이루는 곳이다. 팔공산에서 서구리재까지는 내리막이다. 신갈군락을 이루는 숲은 서구리재 바로 전에  억새군락으로 이어진다. 서구리재는 2차선 포장도로가 뚫려 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차량 통행도 많지 않은 이런 곳에 무엇 하러 포장도로를 냈냐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갯마루에는 야생동물이동통로를 설치했다. 도로를 개설하고 야생동물통로를 설치하는 것은 당연하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제대로 해야지 그야말로 전시행정처럼 실효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터억허니 구조물만 세워놓은 것은 문제다. 서구리재의 이동통로도 야생동물들은 전혀 이동하지 않고, 고갯마루 민가에 사는 개들이 다니는 통로일 뿐이다. 야생동물 이동통로가 아닌 가축이동통로인 것이다. 수 억 원씩의 혈세를 허공에 뿌린 것이다. 호남정맥을 두발로 걷다보면 발품으로 힘겨운 것보다, 어이없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로 인한 힘듦이 훨씬 크다. 마구잡이로 도로를 내고 산을 파헤치고 나무를 베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탐사대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서구리재의 허탈함을 뒤로 하고 전형적인 참나무 숲을 따라 걷는다. 신갈나무와 굴참나무가 어우러진 우리나라 산줄기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만나는 자연림의 모습이다. 오계재 바로 전에 지선각산이라는 봉우리에서 작은 이정표에 눈이 확 틔인다. 능선이 아닌 아래 계곡 쪽에 샘이 있다는 표시다.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이다. 아래로 내려간다. 등산로가 뚜렷하다. 길이 가팔라 등산로 토사유출을 막기 위한 나무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280여 개나 된다. 숲속의 완만한 골짜기의 돌무더기 사이에 샘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크다는 섬진강의 발원지다. 본래 데미는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라 한다. 탐사대가 방향을 틀었던 지선각산이라는 봉우리가 바로 데미의 전설이 담긴 천상데미다. 주민들은 천상데미라는 말을 아직도 쓰고 있다. 하루 발품에 두 큰 강의 발원지를 섭렵했다. 2005년의 벽두에 금강과 섬진강의 뿌리에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호남정맥의 줄기를 따라 전라도를 두발과 가슴에 안고 갈 것이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