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병산아 미안하다!!” – 사라진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2005.01.05 | 백두대간

새벽 5시, 초록행동단은 겨우 출발준비를 마쳤다. 밖에는 아직도 매서운 칼바람 속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지만, 양손 가득 짐을 든 행동단은 걸음을 재촉했다. 원주에서 자병산 파괴 현장까지 버스로 3시간. 아침을 챙기고 공사 관계자들이 본격적인 작업에 들기 전까지 이동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원주에서 강릉으로 이동하는 고속도로 끝으로 해가 떠오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행동단들은 새해 벽두의 일출보다 새우잠이 더 달콤하다.

초록행동단이 자병산에 도착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지나고, 872.5m의 산봉오리가 있어야 할 자병산은 황량했다. 280헥타르의 거대한 공사판에는 거센 바람에 먼지만 날리고 있었다. 1978년부터 라파즈한라시멘트가 공장을 설립하고 석회석을 채굴한 탓에 자병산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이미 산 정상이 70m나 사라지고 없었다. 더구나 예정된 추가개발 사업이 완료되면 산은 또 다시 130m 넘게 낮아진단다. 이미 자병산은 백두대간의 일부로서 부끄러울 만큼 파괴되고 생태계의 건강성도 잃어버리고 있었다.

오전 9시, 초록행동단은 무너져서 울고 있는 것 같은 자병산에 우리는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하기로 했다. 자병산 공사현장에서 ‘자병산아 미안해’라고 쓴 현수막을 에드벌룬에 묶어 상공위로 날리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세찬 바람과 시멘트 업체 관계자들의 제지로 우리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에드벌룬은 찢어졌고, 우리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우리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었다.  

초록행동단은 회사 관계자에게 항의하였으나, 라파즈 윤모 이사는 “자병산은 시멘트 원료이다. 우리는 기간 산업을 담당하는 역군이다. 환경에 부담을 주는 것은 안타깝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들에게 자병산은 그런 존재였다.

동해시로 자리를 옮겨 진행된 자병산 개발에 대한 토론회에는 소위 백두대간보호에 책임이 있는 산림청 관계자는 참석치 않았다. 전해온 주장은 자병산의 보전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라파즈시멘트의 대표는 여전히 우리는 당신들이 주장하는 것을 모두 알고 있고 다 들어주는데 뭐가 부족하냐며 항변이다.

솔나리, 백리향 등 고유한 식생을 간직하고 있어 가치가 높고, 백두대간보호법을 제정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던 백두대간의 허리인 자병산은 오늘도 이렇게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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