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가 설악산에서 만난 야생동물 이야기

2005.01.31 | 백두대간

– 백두대간 야생동물학교를 다녀와서-



 작년 여름에 우리가 제주도에서 꿈꿨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그리워하며 쳇바퀴 같은 일상을 지내던 1월의 어느 날, 제주도 섬 캠프 선생님이셨던 작은 나무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바로 백두대간 야생동물학교를 신청하란 전화였지요. 매일 똑같은 일상에 싫증도 났고, 제주도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저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산도 좋아하고요. 더군다나 올해는 눈을 한 번도 못 봤거든요. 신청을 하자 아직 2주일이나 남았는데도 저는 자꾸만 밤이 기다려졌습니다. 눈 덮인 백담사의 산양들을 상상하며 달력을 하루하루 지워나가는 즐거움 때문에요. 하루에도 몇 번씩 환경캠프 사이트에 들어가 봤습니다. 저처럼 들떠 있을 친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더군요.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 마침내 1월 19일의 해가 밝았습니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 점심 식사 할 때 아침 식사를 하는 터라,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자연 속에 파묻힐 수 있는 기회를 위해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죠? 아빠 회사와 녹색 연합이 가까운 터라 아빠가 출근하시다가 내려주셨습니다. 섬 캠프로 인해 녹색 연합에 관심이 많았지만 직접 와 보는 건 처음 이었지요. 솔직히 녹색 연합의 첫 인상은 기대와 많이 달랐습니다. 적어도 빌딩 한층 정도 되는 단체일줄 알았지만, 겉모습은 보통 공동주택과 다른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크기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옥상에 설치된 태양열 에너지 발전기를 보니 역시 녹색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할 말이 너무나 많은 친구들, 선생님들과 한참 수다를 떨다가 드디어 출발했습니다. 친구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 많고, 처음으로 가는 눈 쌓인 설악산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설레었지만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너무나 졸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창 밖 강원도의 풍경은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옆에 있던 정우가 깨워서 눈을 떠보니 백담사에서 순두부 비법을 전수 받았다는 ‘백담 순두부’라는 식당이었습니다. 아침 식사 한지 한참 돼서 그런지 무진장 배고팠습니다. 그래서 순두부 한 그릇 반, 밥 한 공기를 눈 깜짝 할 사이에 비웠지요.
하지만 맛있는 순두부 뒤에는, 식당에서 매표소까지 1km, 매표소에서 백담사까지 7km, 총 8km의 등산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눈이 허리까지…는 아니어도 무릎까지는 왔거든요. 하지만 설악산 어머니께서는 눈으로 덮인 고요한 품속으로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덕분에 우린 아무 탈 없이 백담사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올무에 걸린 산양 / 사진_박그림 sanyang.net

작은 나무 선생님과 우리나라 자연의 앞날에 대한 심각한 토론(?)을 하며 걸었습니다. 작은 나무 선생님으로부터 올무와 덫의 위협 속에, 굶주림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나라 야생동물들의 현실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저는 같은 동물로서 이렇게 편하게 살고 있어 너무 미안했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희생하면 멧돼지 한 마리가 덫에서 풀려나고 산양 한 마리가 식사 한끼를 할 수 있을 텐데, 전 지난 14년 간 아무 것도 해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속세와 백담사를 연결하는 금, 수, 강, 원교를 지나 한 3시간쯤 걷다 보니 드디어 저 멀리 수심교 뒤로 설악산이 품은 백담사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백담 계곡이 얼어 눈이 쌓인 모습은 꼭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이렇게 백담사에 들어와 여장을 풀고 우선 꼬르륵거리는 배를 채우기 위해 공양을 했습니다. 고기 반찬은 한가지도 없었지만 모두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야채만으로도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특히 콩나물 무침이 기억에 남습니다. 공양을 하고 나서는 섬 캠프 때처럼 자기가 쓴 식기는 직접 설거지했습니다.

저녁 공양 뒤,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쉬다가 모두 모여 벽에 붙인 전지 4장을 스크린 삼아 난곰 선생님의 백두대간 야생동물 설명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야생동물의 현주소와 우리가 해야 할 일 등의 흥미로운 내용이었지만 8km의 여정이 너무 피곤했는지 저는 끝나고 박수 칠 때까지 계속 졸았습니다. 난곰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 다음엔 박그림 선생님께서 지난 수십 년 간 야생동물 보호 운동을 해오시면서 수집해오신 산양 머리뼈, 멧돼지 머리뼈, 산양 발 가죽 등을 직접 만져보았습니다. 박물관 같은 곳에서 많이 봐온 동물 뼈였지만, 직접 만져보니 생전에 자연 속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다 덫에 걸려 비참하게 굶어 죽었을 산양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배부른 채로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신기한 듯이 동물들의 뼈를 만지고 있는 저를 보니 동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태어남으로 인해 더 많은 야생동물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면 이렇게 자책할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8km의 산행이 너무나 고단했는지 저는 숙소로 돌아와 바로 쓰러졌습니다. 옆에서 시끄럽게 놀고 있는 친구들 때문에 잠이 잘 안 왔지만, 내일 새벽 예불을 위해 억지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첫날이 저물었습니다.
제 옆에서 자던 동훈이의 코 고는 소리와 예불을 위해 맞춰 놓은 알람 소리에 계속 잘 수가 없었습니다. 원래는 마지막 날 새벽에 예불을 드리기로 되어 있었지만 백담사의 야경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새벽 예불을 드리러 나왔습니다.



대웅전으로 가던 중 우연히 별이 총총한 백담사의 밤하늘을 보았습니다. “와”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도시에서는 눈을 씻고 쳐다봐도 별자리는커녕 별도 몇 개 볼 수 없었는데, 계곡 위를 흐르는 백담사 수심교 위에서는 오히려 별이 너무나 많이 쏟아져 별자리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내일 밤 친구들에게 알려주려고 오리온 자리와 북두칠성은 찾아 봤습니다. 정말 오리온이 뛰어 내려올 것만 같았습니다.
혼자서 한참 별 구경하다가 대웅전에 들어갔습니다. 마지막 날 새벽에 예불 드리자고 하기는 했어도 몇 명쯤은 올 줄 알았는데, 대웅전에는 스님 두 분과 저뿐이었습니다. 저 밖에 없어서 좀 어색하기는 했지만 지긋이 웃고 계시는 아미타 부처님께 야생동물들을 돌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예불 끝나고 나올 때는 스님께 어깨 너머로 배운 “성불  하십시오.”라는 말도 하고 나왔습니다. 스님께서도 합장해 주셨습니다.
다음 날, 일어나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평소에 잠도 많은데 3시에 예불도 드렸으니……
그래도 설악산 어머니와 산양, 수달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즐겁게 일어났습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야생동물을 찾아 떠나게 되었습니다. 영하 24℃였습니다. 처음으로 스패치도 착용해 봤습니다.  
산양, 수달, 노루 세 모둠으로 나뉘어 각자 다른 길로 야생동물을 찾아 떠났습니다. 우리 산양 모둠은 곰이 잘못을 저질러 뺨을 맞았다는 큰귀때기골로 떠났습니다. 다른 모둠은 출입 통제된 등산로로 갔지만, 우리 모둠은 아예 등산로가 없는 곳으로 가서 약간 떨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큰귀때기골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무릎까지 눈에 푹푹 파였지만 꽁꽁 언 계곡 위에서는 스케이트도 탈 수 있었고, 없는 길을 만들어 가면서 서로 더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모두 둥글게 모여 앉아 먹은 주먹밥은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겁니다. 눈에 앉아서 엉덩이가 시리기는 했지만, 적절한 간과 고소한 참기름이 적절히 배합된 그 주먹밥은 약간 얼었을 지라도 저에게는 산해진미보다 귀했습니다. 행동식으로 가져온 곶감을 함박꽃, 새냄, 난곰, 해바라기 선생님이 다 뺏어 드셨지만, 전 마냥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아 놓은 나무 구멍 속 창고도 발견했고요.



우리가 갔다 온 경로는 왕복 4km가 채 되지 않았지만, 길을 만들면서 행진하느라 몇 번씩 똑같은 곳을 도는 바람에 6km는 걸었을 겁니다. 백담사까지 올라 온 길보다 짧았지만 발이 눈 속에 푹푹 파였고, 삼보일배를 하듯이 세 걸음에 한 번씩 넘어져 제 다리는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그때 생긴 멍이 아직도 있습니다. 이런 걸 영광의 상처라 하나요?^^

하지만 넘어지고, 다친 것보다도 제 마음을 더 아프게 한 건 반나절을 산 속에서 헤매도 야생동물을 한 마리도 볼 수 없다는 현실이었습니다. 멧돼지, 노루, 고라니 발자국 발견을 비롯해 운 좋게 채집한 수달과 고라니의 똥이 저를 위로했습니다만, 60년대만 해도 1년에 수백 마리씩 잡았다는 산양 한 마리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가 40년 간 설악산에게 저지른 만행을 증명했습니다.



밀렵꾼들이 먹고살려고 이 일을 한다고 하면 저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밀렵꾼들의 가족을 덫과 올무로 잔인하게 죽인다면, 죽이고도 시체를 방치해 뼈만 남을 때까지 썩도록 한다면, 그래도 계속 밀렵을 할까요? 물론 양계장에서도 많은 닭들이 좁은 우리에서 평생 알만 낳다가 잔인하게 죽여지는 비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닭과 산양 모두 소중한 생명체지만, 산양은 멸종위기종인 만큼 보호가 시급합니다. 법적 규제로만 밀렵을 단속한다면 밀렵꾼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밀렵꾼들이 한 번만이라도 자신이 한 행동을 돌아 볼 수 있다면 다시 밀렵을 하기는 힘들 겁니다. 아저씨들, 아저씨가 놓은 덫과 올무에 걸려 고통을 울부짖다가 굶어 죽어 뼈만 남게되는 수달, 산양, 멧돼지들도 아저씨나 아저씨의 자녀처럼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자식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하산하면서 60년 후에, 2060년에는 1960년처럼 설악산이 야생동물로 넘쳐나기를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저도 제 힘이 닿는 데까지 노력할거고요.

출발은 항상 신이 나지만 돌아 올 때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슴이 우울합니다. 8시간만에 이제는 집 같은 백담사로 돌아왔습니다. 모두들 지쳐 쓰러져 있었지만 각 모둠이 겪었던 일들을 발표하는 시간을 위해 각자의 모둠으로 돌아가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우리 모둠은 사무엘 형의 어벙한 발표 덕분에 무뚝뚝하실 것만 같던 불가사리 선생님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지게 했습니다. 같은 조였던 저도 배꼽이 빠졌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들은 것들을 모두 전해주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또 다시 우울해진 가슴을 가라앉히고, 모두들 밖으로 나가 별을 구경했습니다. 전날 밤에 봐 놓았던 터라 별자리 찾기가 더 쉬웠습니다. 달의 모양이 약간 변한 것 같기는 했지만, 백담사의 밤하늘은 여전히 고요한 순수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번에는 예불 드리기 위해 서로 깨우자고 약속하고 잠이 들었습니다……기 보다는 모두들 쓰러졌습니다.

알람 소리가 귓전을 울렸습니다. 눈 비비며 힘겹게 일어난 뒤, 깨워 달라고 하신 작은 나무 선생님과 정우를 깨우고 대웅전으로 갔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여전히 지긋이 웃고 계셨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는 게 힘들어 발버둥치는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옆에 계시던 스님께서 편하게 앉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예불 드리면서도 졸 뻔했습니다. 하지만 청명한 목탁 소리에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마지막 밤하늘을 감상하고는 다시 꿈나라로 돌아갔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날 아침! 피곤함과 배고픔과 이제는 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갑자기 마음속에 밀려 들어왔습니다. 착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특별히 맛탕과 과일 샐러드가 나온 공양을 했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입맛은 없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습니다. 그 다음은 정말로 헤어질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집 같이 되어버린 백담사를 뒤로하고 수심교를 건너며 하루만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이 있는 우리 집도 백담사만큼 좋은 곳입니다. 이젠 집이 그립습니다.

또다시 8km의 등산로를 내려왔습니다. 이번에는 정우와 책 이야기를 하며, 작은 나무 선생님과 천성산 꼬리치레도롱뇽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여덟 발자국쯤 걸었나 싶더니 벌써 백담 순두부 식당입니다. 거기서 다시 한번 배를 채우고, 눈이 오면 빠질 수 없는 눈싸움을 약간 하다가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에서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에 관한 영상을 한 편 봤지만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도 모두 곯아 떨어졌습니다. 눈 떠보니 녹색연합이었습니다.

드디어 집에 가는 구나~……싶었더니 광화문에서 천성산 꼬리치레도롱뇽 보호 촛불 집회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버스에서는 거의 다 간다고 하더니 실제로 남은 사람은 저, 채리 누나, 예인 누나, 소리 누나 4명뿐이었습니다.
점심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다시 꼬르륵거리는 배를 위해 함박꽃, 새냄, 작은 나무, 아끈, 난곰, 해바라기 선생님과 보리밥, 국밥을 먹은 뒤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미선 누나와 효순 누나가 떠났을 때도, 대통령 탄핵 반대 할 때도 촛불 집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저는 처음이어서 많이 기대 되었습니다. 생각보다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산의 울림도 바다의 속삭임도 아닌 도시의 침묵만이 들리는 서울에 자연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 이 만큼이라도 있다는 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신부님, 초등학교 선생님, 국회의원, 아콘다 밴드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밝히고 각자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옛날에는 산에서 넘쳐나던 동물들이 이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게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이 그들의 집을 빼앗은 거예요.
   남의 집 빼앗으면 뭡니까? 그거 범죄입니다. 우리는 모두 범죄자예요!
   지금이라도 뉘우치고 동물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범죄자일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조상님들로부터 국토와 근면성, 지혜 같은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정작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은 왜 물려받지 못했는지 궁금합니다.

2박 3일간 우리는 야생 동물들이 놀라지 않도록 박수를 치지도, 많은 눈을 두고 눈싸움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기념사진 찍을 때 번쩍이는 플래쉬에 노루가 잠에서 깨었을 지도 모르고, 주먹밥을 먹으며 왁자지껄하는 소리에 산양이 도망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타면 그 매연으로 오염된 자연의 기상변화로 멧돼지가 굶어 죽을지도 모르고, 냉장고를 쓰면 배출되는 프레온 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로 고라니의 집이 물에 잠길지도 모릅니다. 결국 인간의 존재가 동물들에게 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가 2박 3일 간 느낀 것입니다.

하지만 이왕 태어났으니 조금이라도 덜 해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냥도구를 제거하고, 야생동물의 피가 보신으로 쓰이는 걸 막고, 천성산 도롱뇽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모든 야생동물들의 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보잘 것 없는 중학생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역시 2박 3일간 백담사에서 느낀 것입니다.

산양아, 노루야, 고라니야, 멧돼지야, 꼬리치레 도롱뇽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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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모둠 누룽지 / 장재선  (고양 백양중1)

예술혼을 불태우는 재선이는 일산에 있는 백양 중학교 2학년 올라가는 친구입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야생동물과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어른 못지않지요. 앞으로 재선이와 그의 친구들, 우리의 미래세대들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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