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암부락재 – 가는정이 – 왕자산

2005.02.28 | 백두대간

호남정맥 탐사대는 ‘염암부락재’에 발걸음을 다시 올려놓는다. ‘소금바위마을’이라는 예쁜 이름을 두고 굳이 뜻조차 헤아리기 어려운 한자말을 무심히 쓰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더구나 ‘부락’ 이라는 말은 일제시대에 일본 사람들에 의해 들어왔으며 그들은 지배자로서 우리들을 종(從)으로 보고 ‘노예들이 사는 마을’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가지도뿐 아니라 우리마저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으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현재 녹색연합에서 진행 중인 ‘백두대간 우리땅이름 찾기’가 백두대간 뿐 아니라 하루 빨리 13개 정맥으로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절개지를 오르기 시작했다. 멀쩡한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들기 때문에 곳곳에 절개지가 생겨난다. 때문에 야생동물들의 이동통로가 끊기고, 매연을 뿜어대는 자동차의 질주로 식물들의 성장을 더디게 하는 등 호남정맥 곳곳의 생채기를 바라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정읍주민들이 즐겨 찾는 오봉산에 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등산로 훼손이 점점 심해진다. 곳곳에 소나무가 뿌리채 들어나기도 하고 ‘등산고속도로’라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폭 2m가 넘는 훼손지도 눈에 띈다.



오봉산 정상에 서니 옥정호가 한눈에 보인다. 1926년에 동진 농지개량 조합에 의해서 섬진강 다목적 댐이 1차 준공되었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사업으로 1965년에 준공되었다. 총저수량 4억 3천만 톤에 달하는 옥정호는 호남정맥 줄기 사이 임실군 운암면 일대를 흘러가는 섬진강 상류 물을 옥정리에서 댐을 막아 반대쪽인 서쪽 정읍군 칠보로 넘겨 계화도와 호남평야를 적셔주는 한편 물을 배수하면서 그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하는 다목적 댐으로 이용하고 있다. 오봉산에서 바라본 옥정호는 호남정맥 마루금을 걸으면서 만나는 최고의 절경이라지만 물에 잠긴 고향을 떠난 수천명의 삶과 물길을 거스르는 섬진강댐이 절경 뒤에 숨겨져 있어 탐사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험준했던 묵방산을 오르내리고 가는정이 마을에서 30여분쯤 걸으니 구불구불한 임도 사이로 평균 수령 30년쯤 되는 나무들이 무참히 베어져있다. Dsc_0061.jpg 길이 있으되 새로운 길을 만들려는 인간의 욕심 앞에 또 한번 아린 가슴을 쓸어내린다.



소리개재를 지나 왕자산을 향한다. 왕자산을 향하는 길은 가시덩굴로 둘러싸여 자꾸 탐사대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허나 왕자를 만나러 간다는 설렘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왕자산은 정읍시 산내면과 산외면을 가른다.



판소리의 동편제와 서편재를 구분하는 것이 바로 호남정맥의 산줄기이듯이 백두대간은 물론이고 호남정맥은 지역문화의 분계였다. 말씨가 다르고, 풍속이 서로 달랐다. 노랫가락조차 이 산줄기를 경계로 서로 다르니 정맥은 바로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산내면 사람들과 산외면 사람들의 다름 또한 왕자산이 품었으리라!



왕자산에서 내려와 윗보리마을과 아랫보리마을을 지나며 호남정맥 3차 탐사활동을 모두 마쳤다. 아무 탈 없이 탐사활동을 마칠 수 있도록 함께 마음 모았던 탐사대원(김선희, 하정옥, 서재철, 이신애, 김준, 황완규, 우동걸, 주연희, 정은실)들과 따뜻한 숙소와 먹을거리를 제공해주었던 칠보면 축현마을주민, 어느 작은 지방도로에서 손을 흔들면 기꺼이 차를 세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던 이름 모를 전라도 땅 지역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글 : 정은실 (광주전남녹색연합 자연생태부장)

호남정맥환경탐사 카페 : http://cafe.daum.net/greengwa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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