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정읍은 어디며, 또 순창은 어디인가?

2005.03.05 | 백두대간

4차탐사 첫날, 광산김씨묘역에서 굴재까지

3월 3일 호남정맥 4차 탐사팀이 내장저수지 부근의 내장교회 앞 단풍민박에 여장을 풀었다. 내장산 앞 내장교회라 생각지도 않았던 곱창생각이 났다. ‘단풍과 내장곱창의 만남’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하면서 3월 13일 까지 하루 대략 12km의 강행군을 해야 할 대원들의 피로를 풀 메뉴 하나쯤은 되겠다 싶었다. 이번 4차 탐사는 정읍 산내면 윗보리밭 광산김씨묘역에서 출발하여 순창, 내장산, 장성, 담양을 거쳐 잘하면 무등산자락에서 탐사를 마칠 계획이다. 저녁을 마친 후 역할을 정하고 내장지로 바람을 쏘이러 나갔다. 마른나무가지를 주어 논두렁에 불을 피워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약식 기원식을 하였다. 시간담당 ‘애터져’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이른 취침을 종용한다. 취침 “11시 30분”

이번 구간 중 전반기 구간은 정읍에서 순창을 거쳐 장성을 넘어 가는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을 관통하는 동학과 빨치산의 중심거점이며 호남정맥의 마루금은 그 보급루트다.

3월 4일 오전 8시 30분 탐사팀은 숙소를 출발하여 3차 탐사를 마친 광산 김씨 묘역에 9시 30분에 도착했다. 면면은 이렇다. 진주 하씨(하희라 하씨라고 소개하여 웃음바다가 됨) 애벌레, 나주 정씨 애기똥풀, 광산 김씨 애물단지, 김해 김씨 애터져, 경기도 광주 이씨 에말이오, 평해 황씨 바이킹, 경주 정씨 바리깡…. 조선씨족 사회의 전통을 존중한다면 최소한 우리나라의 명문가 자제분들이 호남정맥 생태 탐사를 위해 마루금에 선 것이다.

안전한 산행을 위해 마음을 모은 탐사팀은 무래실골로 빨려 들어갔다. 50분을 지나 10시 20분에 GPS 측정 404(지도상 424)봉 앞 편백나무 조림지에 도착했다. 마루금을 기준으로 왼쪽 산내면 일대는 조림사업이 한창이나 오른쪽 칠보면 산허리는 숲이 비교적 깊다.

이름 모를 2기의 무덤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열 가구 남짓의 소군실 마을을 바라보다, 지나쳐온 마루금을 되돌아보니 하늘을 향해 5도 쯤 기울은 소나무 구름 솟대가 정겹다.

10분 후의 휴식을 마치고 한 걸음으로 424봉 봉우리에 올랐다. 아지트 하나가 풀섶에 돌담흔적을 남겼는데 빨치산 또는 토벌대의 자취는 아닐까?

첫 내리막길이다. 30분을 걸어 11시 30분에 도착한 곳은 칠보면과 산내면의 경계인 구절재다. 경계표지석의 내용이 가슴에 박힌다. “산 좋고 물맑은 살기 좋은 산내면” 호남정맥 생태탐사를 5개월에 걸쳐서 하는 이유를 누가 묻는다면 꼭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배가 고프다. 행동식을 나누어 챙겨먹고 점심 먹을 장소를 찾아가는 도중, 15만4천볼트 고압송전탑이 길을 막는다. 오른편 능선으로 5개, 왼편 능선으로 2개의 송전탑이 길게 늘어서 있다. 백두대간. 정맥 어디에서나 쉽게 만나는 것이다. 송전선로가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녹색연합은 이미 조사한 적이 있으나, 신고리 1.2호기 원전 건설이 승인된 상황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송전선로의 유해성에 대하여 대응해야 할 것 같다.

12시 15분 점심과 함께 꿀맛 같은 휴식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마루금의 머리재를 넘으니 428봉 앞 송전탑이 다시 길을 가로 막는다. 이 송전선로의 전력이 칠보면 수력발전소에서 공급되는 것일까? 국내 최초의 수력발전소인 칠보유역변경식수력발전소는 가동되고 있는 것일까? 섬진강물을 끌어 올려 새만금으로 흘려보낸다는데 지금도 그러한가?  녹색연합이 사실관계를 규명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걸음을 서둘러 도착한 곳이 사적골이다,

이제는 연화정사에서 석탄사까지의 시멘트 포장도로가 마루금을 잘라 놓는다. 누가 호남정맥의 시멘트 포장을 허락했을까?  산허리를 잘라놓은 시멘트도로는 생태계의 질서를 이렇게 파괴하고 있었다. 석탄사에서 당근전과 딸기를 공양받았다. 미안함과 보살행의 절묘한 지점의 선택은 아닐까?

해가 저만치 기운을 잃어가고 있다. 대설주의보 소식을 들었던 터라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출발하면서 750고지의 고당산 돌파도 논의된 터 분주해졌다. 이른바 광속단(狂速團) 시스템의 작동이다. 벌써 출발한 지 7시간째 모두 속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구간 최고봉인 550고지 앞에 고로쇠나무 수액을 받는 비닐봉지가 우리의 발길을 붙잡는다. 호남정맥 봉우리 골골 모두가 고로쇠 수액 채취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현장이다.

해가 저물어간다. 숨이 가쁘고, 허벅지 근육은 쉼을 요구하고, 배는 고프고, 그러나 다시 기운을 내서 출발전 도착지인 순창 굴재 학선리 오룡마을에 당도했다. 「사람과 산」에 배추밭이라고 소개되었던 곳인데 지금은 무를 갈아 엎어 놓았다. 우리가 11km를 걸어 당도한 곳은 이렇게 절망에 빠진 농심(農心)이고, 남로당 전북도당의 근거지인 순창군 쌍치다.

글 : 광주전남녹색연합 사무국장 정호

<편집자 주> 애벌레=하정옥, 애기똥풀=정은실, 애물단지=김선희, 애터져=김준, 에말이오=이신애, 바이킹=황완규, 바리깡=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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