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복원능력을 믿는다

2005.04.13 | 백두대간

1994년 삼척 505ha, 1996년 고성 3,762ha, 1998년 강릉.동해 557㏊, 2000년 강릉.동해.고성.삼척 23,138㏊, 2004년 속초.강릉 610㏊ 등 최근 10여 년 동안 발생한 6건의 큰 산불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95배에 이르는 숲이 불에 탔다.

검은 식목일, 검은 숲

식목일이었던 지난 4월 5일, 또다시 큰 산불이 발생하여 강원도 양양과 고성에서만 400㏊의 숲이 불타고 전국에서 23건의 산불이 일어났다. 푸른 생명의 싹을 심는 식목일이 죽음의 검은 식목일이 되어 숲과 나무, 마을과 문화재까지 다 태운 것이다.
녹색연합은 7일, 뜨거운 불길이 지나가고 시커먼 숯덩이만 남은 양양 산불 현장과 함께 산불이 나고 10여 년이 지난 곳이 지금 어떻게 복원되고 있는지 조사하였다.
산불이 났던 양양은 7번 국도를 타고 산불의 흔적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그 중 양양읍 물갑리는 불길이 다시 번지며 밤에 불이 난 곳으로 숲과 함께 민가 피해가 심각했다. 이곳은 송이채취를 하는 곳으로 소나무와 일본잎갈나무가 많아 산불피해가 더욱 심했다. 낙산사의 경우, 낙산사 입구의 종무소와 화장실 등 몇 채의 건물을 제외하고는 황토와 기와만이 남아 있었다. 낙산사에서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숲길은 새까맣게 타고 남은 소나무가 마치 서있는 시체 같았다. 이번 산불은 양양과 설악산이 만나는 경계지점인 둔전저수지 앞에서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산불의 피해면적은 크지 않지만 불타버린 낙산사와 동종과 같은 문화재의 손실은 많은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상실감으로 남게 되었다.



산불이 지나가고 10년이 지난 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고성군 죽왕면의 경우 1996년도에 산불이 일어난 후에 자연복원을 한 곳은 참나무 맹아림이 거의 살아남아 2000년 2차 산불 후에도 지속적으로 숲이 발달할 수 있었으나, 1996년 산불 후 조림복원을 한 지역은 잣나무와 소나무가 모두 불에 타 죽었기 때문에 1996년도의 복구 전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강원도 고성에서 보이는 산 대부분은 산불로 황량해진 민둥산이었고, 그곳에는 일렬로 세워 조림한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1996년 산불이 난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에는 소나무와 자작나무를 조림한 곳과 조림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둔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산불감시초소의 김동환(69세) 할아버지는 이곳에 1996년부터 조림을 시작했지만 조림한 많은 나무들이 죽었고, 수해가 나면서 산이 많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조림을 하지 않고 둔 곳은 참나무 같은 활엽수에서 다시 줄기와 잎이 돋고, 소나무 씨앗이 날아와 자라고, 진달래꽃이 피어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고라니 똥과 야생동물에 잡아먹힌 꿩의 시체를 발견, 다시 돌아온 야생동물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인위적으로 조림을 한 곳은 많은 나무들이 죽고 척박한 토양인 마사토가 흘러 내려 산의 많은 부분이 하얗게 드러나 있었지만, 자연적으로 둔 곳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자연의 힘으로 산은 초록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또 다른 곳 고성군 토성면 운봉산 일대는 1996년 산불이 일어나고, 2000년 다시 산불이 일어난 곳이다. 1996년 조림한 나무는 2000년 산불로 불타 다시 벌거숭이가 되었고, 지금은 3년 전에 심은 키 작은 소나무 묘목이 여린 뿌리로 흙을 움켜쥐고 있을 따름이었다. 두 차례 산불로 땅은 더욱 척박했고 나무가 없어 토사유출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역주민의 이야기에 따르면 3년 전에 심은 소나무도 자원봉사자를 통한 조림으로 제대로 심지 않은 나무가 많이 죽었다고 했다. 조림을 진행하더라도 제대로 된 조림이 아니면 어린 묘목을 두 번 죽이는 일이 된다.

복원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의 산림정책은 소나무 우선 정책으로 조림이 진행되고 있다. 강원도 지역에 산불이 자주 나는 것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지형의 영향으로 건조한 바람이 부는 푄현상과 함께 산불이 나기 쉬운 소나무 같은 침엽수림 중심의 조림이 영향이 크다. 침엽수는 불에 타기 쉬워 산불에 취약할 뿐 아니라 소나무의 송진은 기름과 같은 역할을 하여 산불 확산이 쉽다. 대형산불이 발생한 양양군을 비롯해 강원도 지역 산림의 70% 정도는 소나무 침엽수림이 차지하고 있다. 이번 조사 때 강원도 지역을 이동하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참나무는 간벌을 하고 소나무만을 남겨놓는 숲가꾸기 사업을 진행한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산불이 난 양양과 고성 등 강원도는 송이채취가 지역주민의 수입원이 되기에 자연적인 숲의 천이현상으로 참나무가 들어오고 소나무가 사라져 가고 있는 숲에도 인위적 손길이 더해 소나무만 남겨 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불지역 복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는 산불이 나 숲이 황폐해지면 조림을 통해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매우 단순한 발상이다. 1960-1970년대는 자연복원력이 적어 조림을 해야 했지만, 요즘은 산불에 대한 저항력이 큰 참나무들이 살아남아 자연복원력을 가지고 있어 조림에 의한 복원은 오히려 산불 직후의 초기 환경을 교란하여 자연복원력을 저해하고 있다. 또한 경사면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림을 하면 산사태의 위험이 높아진다.
하지만 자연복원을 했을 경우 조림 복원지역보다 숲 구조의 회복속도가 빠르며, 야생동물 또한 빨리 돌아온다. 조림지는 먹이자원과 생활환경이 바뀌어 돌아오기 어렵지만 자연복원지는 회복속도가 조림 복원지보다 빠르고, 예전 숲과 비슷한 형태로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를 제공하여 야생동물이 쉽게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자연복원 된 활엽수림은 조림복원 된 잣나무, 소나무림보다 2차 산불피해에 대한 저항력이 커 산불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실제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호주처럼 국립공원 정책이 잘 발달된 있는 나라의 경우에도 잦은 산불이 발생한다. 하지만 현장에 가면 무리하게 조림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복원되도록 내버려 두어 숲의 천이과정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자연스럽게 복원되는 것이 안정적인 숲을 만드는 가장 좋은 길이다.

하지만 해마다 산불이 나는 강원도 지역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송이채취가 주요 수입원이 되는 곳이며 산불이 난 곳이 대부분 마을 주변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자연복원을 기다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런 곳은 자연복원을 해야 할 곳과 인공조림을 통한 복원을 해야 할 곳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송이채취를 위해 소나무를 다시 심더라도 수종을 한가지로 단순화 하는 것이 아니라 활엽수와 침엽수를 적절히 섞어 인공복원을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그 지역의 생태에 맞는 수종을 선택하여 생태계교란을 줄여야 한다.



빨리 자라는 나무로 조림하던 시대는 지났고, 소나무 우선 조림 정책은 수종의 단순성으로 인해 섣부른 조림은 예전 숲의 모습을 되돌리지 못할 뿐 아니라 생명이 있는 묘목을 죽이고 다시 난 산불에 취약하게 만든다. 건강함을 유지한 숲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체계성을 가지고, 그리고 긴 시간 바라볼 줄 아는 자세로 숲의 복원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글 : 백두대간보전팀 활동가 조회은
자료참조 : 환경부 보고서 ‘동해안 산불발생지역 생태계 피해조사 보고서(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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