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야생동물학교 – 산양이 뛰어 노는 설악산

2006.01.24 | 백두대간

2006년 1월 18일부터 20일까지, 산양이 뛰어 노는 설악산에서 HSBC은행의 후원으로 녹색연합 겨울야생동물학교가 열렸다. 설악산 산양의 친구, 작은 뿔 박그림 선생님을 아우름으로 산양모둠, 수달모둠, 노루모둠 참가자들은 백담계곡 곳곳에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각 모둠 참가자들의 후기를 통해 야생동물들의 흔적을 찾아 봅니다.

수달모둠 – 장정엽

어느 때 보다도 들뜬 마음을 품고 일찍 일어나, 출근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선 것이 꼭 몇 시간 전인 것만 같다. 하지만 지금 책상 앞에서 2박3일간의 즐거운 추억을 더듬어보며 글을 써내려가는 내 모습을 보니 더욱 더 크나큰 아쉬움만이 밀려온다. 그 아쉬움을 뒤로하고 야생동물학교 때의 즐거운 추억들을 이야기 하려 한다.  

박그림 선생님과 설악산 그리고 백담사와의 만남.



내 평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만남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누구보다도, 어떤 것보다도 맑고 투명하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 박그림 선생님. 나도 커서 그 분처럼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보단 야생동물들을 위해 20년간 몸 바쳐 설악산을 지키신 그 분처럼 말이다. 또 나는 수달조의 한 조원으로서 큰 귀데기골을 다녀왔다. 일반 탐방로가 아닌 산양의 발걸음을 찾아나서는 길이라 그런지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 조는 나 만 빼고 다 산양을 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라 여겨진다. 설악산에서는 신령보다 산양이 더 귀하고 보기 힘들다고 한다. 불가 몇 십년 전만 해도 산양 수를 조절하기 위해 연간 2~3마리를 죽여야 하던 때도 있었다. 그 몇 십년 전의 산양수를 다시 보기 위해선 우리 세대가 앞장서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나는 이번 퐁당선생님과의 만남에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디서나 관계는 존재한다. 나와 친구, 나와 선생님, 나와 부모님 등등 말이다. 이런 관계를 더 넓혀 나와 자연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어떠한가? 사람과 사람만이 아닌 관계말이다. 그리고 그 관계를 좀 더 깊이 좀 더 폭 넓게 가져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질 것 같다. 산과 산속의 주차장이 아닌 산과 사람만이 어우러진 삶.

자연은 언제까지고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산양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외의 모든 야생동물들도 말이다. 우리를 기다려 주고 있는 이들을 위해 우리는 앞서 말했듯이
많은 사랑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야생동물학교과정을 통해 한층 더 마음의 눈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고 끝으로 함께한 모든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산양모둠 – 김빛고을



모처럼 가득 찬 배낭을 매는 설레임을 안고, 설악산과 함께한 2박 3일의 일정은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 어둠을 뚫고 버스, 전철을 갈아타고 도착한 녹색연합 사무실에서는 여름캠프 때 만났던 반가운 얼굴들이 반겨 주었다. 3모둠으로 나뉘고 나는 산양모둠에 속했다. 여름캠프 때 선생님과 새로운 선생님이 우리 모둠과 함께 버스에 올라 설악산으로 행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잠든 사이에 설악산에 다다랐고, 백담사까지 두 시간 가량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수록 자연의 아름다움에 쉽게 입을 열지 못했고, 또한 내가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기분도 더해만 갔다. ‘산양’이라는 동물을 모르던 나에게 ‘산양 슬라이드 쇼’는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산양 사진을 보기 전까지 흰털이 복실복실한 동화 속 울타리 안에 갇혀있는 그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산양의 모습에 흥미를 가졌을 때 쯤 박그림 선생님에 대해서도 역시 많은 궁금증이 생겨났다. 설명이 끝난 후에는 그 일을 수 년간 해오시면서도 아직도 산양에 대한 설레임을 간직하신 듯 했고, 또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서 행복하신 박그림 선생님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둘째 날은 산에 올랐다. 가파른 곳에서는 땀에 젖고 다리가 풀려 몇 번 넘어질 뻔 했지만 발자국이나 야생동물의 배설물을 발견하고 나면 한동안 상상에 빠져 힘든 걸 잊어버리곤 했다. 직접 야생동물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발자국만으로도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발자국을 보게 될 그들과 다시 한번 교감이 느껴지길 기원하면서…

둘째 날 저녁에 구름이 끼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지만, 인천에 사는 나에겐 너무나 많은 별의 반짝임에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선생님께서 숙소로 들어가라고 하실 때 아쉬움을 느꼈다. 별의 은은한 빛이 내 얼굴로 다가오던 그날 밤은 무척이나 행복했다.

다음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잠시 안겼던 자연의 품을 떠나, 산사의 고요함을 간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얻은 깨달음 하나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원래는 야생동물과 우리는 한 가족이였는데 우리는 그 품을 떠나 한 가족이였던 야생동물의 생명을 뺏고 위협하였음에도, 다행히 야생동물은 설악산에 그리고 우리 땅 백두대간에 숨쉬고 있다. 야생동물학교를 통해 한 가족으로 살아야하는 이유를 알았다. 그들이 우리의 형제, 자매 일수도 있다는 것을……



노루모둠 – 선우예인



점심식사 장소를 찾고 있던 도중 30미터 전방에 어린 산양이 뛰어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산양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너무나 가파른 언덕을 껑충껑충 뛰어 급하게 도망친 걸 보면 산양임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기도한 바람이 이루어 진 셈이었다. 우리가 걸었던 산길이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 위태롭고 조금만 미끄러져도 금새 저 밑으로 떨어질 듯 매우 가파른 곳으로 산양이 많이 찾는 곳이었지만, 실제로 산양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우리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오래도록 풀어낼 수 없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것이었다.
밥에서 꿀맛이 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산에서 먹는 주먹밥에선 정말로 꿀맛이 났다. 게다가 우리가 점심을 먹은 곳 주변에는 산양의 흔적까지 있어서 마치 산양과 함께 밥을 먹는 듯한 환상에 들게 했다.

질서의 진리
다시 백담사로 돌아가는 길,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짐승의 흔적을 발견했다. 널 부러져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새의 깃털과 핏자국이었다. 주변에 발자국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새의 소행이었다. 서로가 자신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쳤을 그 흔적을 보며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인간에 의해 죽는 것이 아닌 생태적 먹이가 되어가는 것이 진실로 우리가 아름답게 여겨야 할 자연의 질서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정리


백담사로 돌아와 우리 모둠은 퐁당이 준비해온 주제인 ‘관계’에 대해 자신이 고민해 온 것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에게 실타래를 던져가며 실로써 얽힌 우리 모두는 관계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달랐지만, 관계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또 하나의 관계가 아닐까.
그렇게 관계 맺은 우리 수달 모둠은 저녁공양을 마치고 하루 동안 보고 배우고 느낀 것을 발표할 준비를 했다. 우리 모둠뿐 아니라 모두들 느낀 것이 많았는지, 준비를 하는 내내 분주했다. 조별로 발표를 끝낸 후에는 작은 뿔 선생님께서 도감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주셨다. 각 나라별 도감의 특징과 현재 우리나라의 도감 출판의 실정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세밀화 도감이 만들어 지기도 전에 산양이 멸종되어 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세밀화로 남겨질 수조차 없는 산양의 운명은 너무도 끔찍했다.

마지막으로 조별 정리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캠프가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듯 했다. 산은 어둠이 빨리 찾아 왔고, 하늘에는 성긴 별이 밝혀 있었다. 야생동물들도 잠든 밤의 산은 너무도 고요했고, 바위를 타고 흘러가는 물만이 소리를 내는 전부였다. 그렇게 야생동물학교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고, 새벽녘에는 예불을 드렸다.

헤어짐
아침 밝아오고, 내 두 눈꺼풀은 어느 때 보다도 무거워져 있었다. 시린 눈을 간신히 뜨고 쳐진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 세워 백담사에서의 마지막 공양을 했다. 짐을 꾸리는 모습이 산행을 준비하는 모습과는 달랐다. 헤어짐이 다가오고 있는 탓이었다. 강당에 모여 야생동물학교 학생 모두가 함께 이야기하고 어우러져 노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키워온 우정을 다지고 미래를 약속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쉬움이 남는 짧고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만해 선생님께서 스님이 되신 백담사 주변을 둘러보고는, 곧바로 백담계곡을 따라 하산 길에 올랐다. 잠시라도 조금이라도 더 설악에 남아있고 싶은 마음에 모두의 발걸음은 더뎌졌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 옆에 있는 친구 민정과 스무고개 놀이를 했다. 그가 준 힌트는 동물이라는 것이었다. 순간 내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보았던 그것, “산양”이었다. 혹시 산양이 아니냐는 나의 말에 그는 그렇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 모두가 산양에 푹 빠져 있었다는 증거였다.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스무고개를 하게 된다면 그때 역시 산양이 답이 될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산양은 이미 너무도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탓일까, 항상 멀게만 여겼던 설악이 너무도 가깝게 느껴져 출발한지 서너 시간 만에 녹색연합 사무실에 도착했다. 모두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헤어짐을 맞이했다.

저장
집으로 돌아와서 배낭을 풀다가 보온병에 물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백담사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물이었다. 나는 그 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두 음미했다. 설악의 향기가 전해져 왔다. 눈을 감자 3일 동안 설악에서 있었던 일들이 영화필름처럼 스쳐갔다. 산양이 내게 던지고 간 수수께끼를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을 다짐하며 그 영화필름을 내 마음속에 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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