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하나된 삶, ‘생태마을’

2003.08.19 | 백두대간

자연과 하나된 삶,  ‘생태마을’

생태마을이라 하면 ‘자연 속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이른 아침 도시의 매캐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회사에서 전쟁 같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할 때쯤이면, 흙 내음 맑은 공기가 있는 자연으로 돌아가리라는 생각이 불쑥 찾아온다. 실제로 도시생활에 지친 많은 사람들은 탈출구로 ‘자연 속의 삶’ 귀농을 꿈꾼다. 생태마을을 다루면서 귀농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생태마을을 가꾸는 터전이 주로 농촌이기 때문이다.
생태마을이란 마을 건물과 시설은 물론 주민들의 생산활동과 생활양식까지도 친환경적으로 자연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마을을 말한다. 따라서 ‘자연 속의 삶’이라기 보다 ‘자연과 하나된 삶’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을 생태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에너지나 식량, 물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급자족해야 한다. 생활오수나 쓰레기에 의한 오염이 발생해서도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의 가치관과 환경에 대한 태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도 200여 개의 생태공동체가 있고, 생태마을 만들기 운동은 덴마크에 본부를 둔 GEN(Global Eco-Village Network)을 통해 세계 160개 공동체와 1만여 개 마을을 연결하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 주도인 브리즈번에서 북서쪽으로 1백km 떨어진 구릉지에 세계 최초의 생태 공동체 마을 크리스탈 워터스가 있다. 1988년 총 6가구로 시작한 크리스탈 워터스는 현재 총 84가구, 2백20여명의 주민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 각 가정의 정원엔 온갖 채소와 과일 나무가 빼곡하고, 집 뒤편엔 커다란 물탱크 2개가 놓여있다. 하나는 지붕에서 내려오는 빗물받이용이고, 다른 하나는 계곡물을 받는 탱크다. 빗물은 식수로, 계곡물은 샤워와 빨래, 세차용으로 쓰이는데 전기는 계곡물을 뽑아 올릴 때만 쓰고 그 외에는 땅의 높낮이 차이인 중력과 수압을 이용해 각 가정으로 물을 이동시킨다. 집은 자연의 에너지를 최대한 받아들이도록 설계했다. 우리가 남향으로 집을 짓듯이 적도 반대편에 있는 이곳은 빛을 최대한 집안으로 끌어들이도록 북향으로 지었고,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열이 흙바닥의 온도를 높여주었다가 해가 지면 서서히 식으며 보온효과를 내도록 했다. 호수 주변에 집을 지어 여름에는 수분이 증발해 공기를 서늘하게 하고 겨울에는 온기를 보존토록 해, 천연의 에어컨디셔너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집에서 나온 하수물는 정원을 거쳐 자연 정화한다. 당연히 합성세제는 쓰지 않는다. 하수가 모이는 저수지 물은 너무 깨끗해 주민들이 수영장으로 쓸 정도이다. 각종 음식물 쓰레기와 화장실 오수는 호주산 지렁이의 일종인 ‘버름’을 통해 1차 분해하고 박테리아를 통해 2차 분해한 뒤 모래층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나온 물은 밭에 뿌리고 찌꺼기는 퇴비로 활용한다.
마을이 자연 그대로를 닮도록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주민들 사이의 교감이다. 크리스탈 워터스의 마을회관이자 공동식당인 ‘키친’에서는 건강치료, 요가, 토론, 마을회의, 생태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가장 완벽한 인간교육은 아이들이 자연의 법칙대로 자라도록 하는 것이라는 믿음 아래 각각의 직업과 재주를 가진 어른들이 아이들을 직접 가르친다. 전체 마을부지의 80%를 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호주의 크리스탈 워터스를 생태마을 예로 소개했지만 세계에는 다양한 성격의 생태마을이 각자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미국의 아미쉬 공동체는 현대문명을 거부한 채 18세기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 전화도, 자동차도, 심지어 전기와 연방정부의 사회보장제도와 의무교육까지도 거부한 채 자신들의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일본에는 돈이 전혀 필요 없는 완벽한 무소유를 실천하는 야마기시 공동체가 인도의 티벳 고원에는 라다크 공동체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생태마을로 경남 산청군 간디 마을, 무주 진도리 마을, 홍성 문당리 마을, 부산의 물말골이 대표적이다. 사실 생태마을을 설명할 때 굳이 멀리 외국의 예를 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리나라 옛 농촌은 모두가 생태마을이었다. 자연의 재료인 흙과 짚, 나무로 만든 초가집과 뒷간, 그리고 상부상조의 정신을 담은 두레까지. 초고속 경제발전을 거치면서 잃어버린 옛 마을의 모습을 복원해 내면 그것이 바로 생태마을인 것이다.
최근에는 백두대간의 중심 지리산 서쪽 남원 땅 산내에 자리잡은 실상사를 거점으로 하나의 생태마을이 잉태되고 있다. 실상사의 생명공동체 운동은 1996년 절이 갖고 있던 논밭 3만 평을 내놓아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장을 만들면서부터이다. 98년 불교귀농학교를 시작하고 2001년엔 중등과정의 대안학교 ‘작은학교’를 만들었다. 지역공동체를 일구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학교가 꼭 필요한데, ‘작은학교’는 일반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과 더불어 농사, 짚․나무․천․음식 다루기, 전통문화 배우기 등을 가르친다. 이렇게 작은학교, 실상사의 농장, 귀농전문학교를 통틀어 생명을 살리고 조화로운 삶을 이루는 지역공동체인 ‘한생명’이 탄생했고, 한생명은 올해 귀농전문학교 부근에 마련한 터에 10여 가구 규모의 생태마을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실상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환경친화적 공동체와 대학이 결합된 녹색대학이 있다. 학부생과 교수가 생태마을을 조성해 농사, 집짓기 등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생태사상을 바탕으로 한 농업, 의학, 철학, 건축을 가르치고 배운다.
개발과 소비, 환경파괴로 상징되는 물질문명이 속도를 더할수록 그에 반하는 자연과 하나된 삶을 살고자 생태마을을 향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민 한사람 한사람의 참여와 치열한 환경의식으로 뭉쳐야 하는 생태마을을 꾸려나가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용기 있게 편하고 빠른 도시문명을 버리고 힘들고 더딘 자연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 함께 사는 법을 서로에게 가르치고 배우며 땀과 희망으로 삶터를 일구는 생태마을 주민들에겐 후회하는 삶이란  없어 보인다.
녹색연합 정책협력실 활동가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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