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비전을 제시하는 대통령

2007.01.29 | 백두대간

국민들은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환경)

한국사람 평균 수명이 남성은 75세 여성은 80세라고 한다. 평균수명만큼 산다면 나는 앞으로 50여년을 더 살게 될 것이고, 지금의 대통령선거제도가 유지된다면 앞으로 10명의 지도자를 맞이하게 된다. 10명의 지도자가 거쳐 간 50여년 후 우리국토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 땅위에 사람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한국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국토의 지도를 바꿀만한 대공사 하나쯤은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워야 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제시한 경부운하, 아니 호남까지 합친 한반도 대운하는 벌써 논쟁거리이다. 불안해진 다른 후보들은 ‘뭐라도 만들어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박근혜 대표는 ‘한-중 페리’를, 고건 씨는 ‘한-일 해저터널’을 거론하고 있다. 다른 대통령 후보들도 경쟁적으로 더 크고 화려한 사업을 내세우기 위해 고심할 것이다. 이런 대형개발공약들은 한반도 지도를 놓고 정치적인 계산을 바탕에 깔고 급조된다. 그러다보니 막상 당선 이후가 더 문제이다. 환경성과 경제성을 꼼꼼히 따져보니 답이 안나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업이 198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노태우 후보가 호남민심을 잡기 위해 급조해서 만든 새만금간척사업이다. 지난 20여 년간 수조의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전북사람들이 크게 잘살게 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갯벌만 망쳐놓았다. 새만금을 두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큰 혼란과 분열을 겪었는지 모른다. 그러고도 아직도 농지니 산업단지니 초고층건물이니 답을 못 얻었다. 무책임한 대통령의 공약이 두고두고 국민들과 다음 지도자들에게 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공약을 앞으로 당선될 지도자들이 하나씩만 내놓아도 수년내에 우리국토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황폐화될 것이다.

2005년 1월, 30여명의 환경운동가들이 ‘초록행동단’을 결성하고 전국토를 순례하였다. 정부의 무차별적인 개발정책을 반대하기 위해 나선 그 길에서 우리는 전국토가 이미 거대한 토목 공사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직선 콘크리트 제방으로 물길을 막고, 멀쩡한 산 중간을 잘라내고 시골 마을 한가운데에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교각을 세워 고속도로를 만들고 있었다. 어떤 마을은 이중 삼중의 하늘 도로로 온 마을이 교각 아래에 잠겨버렸다. 도로를 이고 사는 마을들. 대형댐 보유는 세계 7위 수준이고, 그린벨트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산림면적은 전 국토의 65%에 이르나 보호지역 면적은 전 국토의 6.9%로 OECD 평균인 12.4%의 절반 수준이다. 국립공원까지 도로와 개발욕구가 치고 올라온다. 백두대간이 파괴되고, 포유류는 멸종상태를 치닫는 등 한반도는 점점 생태사막이 되어가고 있다. 이 땅을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얼마나 엉망인 그림이 나올까? 미적 감각이라곤 자연에 대한 배려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국토개발에 미적 감각이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직선이 아니라 곡선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 말이다. 콘크리트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가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투표를 할 때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대통령선거에서 ‘환경정책’은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다. 경제공약, 복지공약의 장식품 정도이다. 임기 5년 안에 환경정책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개발공약과 경제공약에 지속가능성을 바탕의 둔 환경 철학을 담아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공약으로 내세워야 하는 사업이 있다. 바로 에너지 문제이다. 한국은 석유 수입 세계 5위, 천연가스 수입 3위, 석유 소비량 7위, 에너지 소비량 10위를 자랑하는 에너지 다소비국가이다. 에너지 자원의 97%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석유생산 정점은 2012년을 예고하고 있고, 유가급등은 이미 우리 경제에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결국 이 땅에서 생산하는 에너지량을 늘여야 한다. 따라서 화석연료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 태양, 바람, 소수력, 지열, 조력, 바이오매스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전국 각지역 곳곳에서 적합한 재생가능에너지를 개발하고,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은 미래 성장산업이고, 일자리를 창출한다. 대규모 토목공사 말고도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사업이다.  

최근 100년 동안 한반도의 평균기온 상승폭은 1.5℃로 전세계 평균기온 상승폭(0.6℃)보다 두 배나 높다. 비와 눈은 한번 내린다하면 너무도 쉽게‘관측역사상’최대 기록을 갱신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폭우로 강원도와 해안가 주민들은 안심하고 살수가 없다. 다음 지도자는 한반도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온실가스 의무감축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온실가스감축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장기적인 감축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원자력발전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고준위핵폐기물 처리문제에 대해 누구도 답을 내놓고 있지 못하거니와 안전하지 않은 원자력발전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남북 생태축으로서 백두대간, 동서로 생태축을 이루고 있는 DMZ, 3면의 바다를 잇는 연안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남북교류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경의선, 동해선 사업의 현장인 DMZ 일대는 동서로 연결된 생태축으로서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다. 따라서 DMZ을 세계의 자연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도록 각별한 생태적 배려를 염두에 두고 있는 지도자라야 한다.

환경은 우리를 둘러싼 삶의 공간이다. 농민들이 안전한 식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이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지 않고 생산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또 어른들보다 오염에 더 취약한 어린 아이들을 우선으로 둔 환경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유권자들만이 아니라 이 땅의 야생동물도 껴안아야 한다. 농사짓는 사람들의 한숨소리는 도시사람들에게 병이 된다. 우리 농민들이 건강한 먹거리 생산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02년 녹색연합이 16대 대통령 후보에게 제시한 녹색공약 중에는 “전국의 모든 강에서 우리 아이들이 멱 감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누구나 안심하고 수돗물을 마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이들이 안전하게 걷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요구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삶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정책이 ‘환경정책’이다.

대통령의 삶 자체가 환경친화적이었으면 좋겠다. 청와대 건물 전체를 태양광에너지로 자립하고, 텃밭을 가꾸면서 휴식을 취하는 여유가 있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귀농하겠다고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도시와 농촌을 이을 수 있는 도시농업과 지역 먹거리에 대해 토론하고, ‘자동차없는 날’행사 때 서울 도심을 함께 걸을 수 있는 대통령. 빡빡한 도시에는 군데군데 녹색정원을, 의료와 교육에서 소외된 농어촌에는 병원과 학교를 지어 ‘골고루’를 실천하는 사람. 대형토목공사 하나에 올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않듯 니편 내편 가르지 않고, 우리 땅과 그 땅위의 사람들을 골고루 배려하는 대통령이길 바란다. 아차! 너무 많이 나갔다. 대통령 한사람이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지도자는 적어도 비전을 제시할 수는 있다. 그 역할이 너무도 중요하기에 이 땅의 ‘생태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소박한 꿈을 꾸자면 적어도 이런 사람은 아니었으면 한다. 대통령선거를 마치 영화 흥행이나 드라마 시청율 올리듯이 여기저기 공약을 남발하고, 큰 건 터트리기 식의 대형개발사업 경쟁구도로 몰고 가는 사람, 시장과 경제가 만능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니길 바란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은 지나친 경쟁과 개발 때문에 많이 힘이 든다. 누군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것이 우리 국토의 생태적 용량 안에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에서 그런 희망을 찾길 간절히 바란다.  

이유진(녹색연합 정책위원)

* 뉴스 라이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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