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등산로 지정 신중해야

2007.03.22 | 백두대간

                                                         ‘국가 등산로 지정’ 신중해야

                                                                                                            최승국(녹색연합 사무처장)

등산은 한국 사람들의 가장 큰 취미 활동 중의 하나이다. 휴일이면 가족들과 함께, 또 직장동료나  친구들과 함께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또는 건강을 위해 꼬박꼬박 산에 드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올해부터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됨으로써 산행 인구는 당분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의 산행문화는 산을 좋아하는 만큼 발전하지는 못한 것 같다. 산에 오르면 소리를 지르고, 음식을 해먹고, 등산로가 아닌 곳을 다니면서 산의 진짜 주인인 동물을 놀라게 하거나 생태계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에 오르는 것을 고집하고 산을 감상하고 느끼기 보다는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다. 하긴 필자도 10여년전까지만 해도 산에 가면 꼭 최고 높은 봉우리에 올라야 성이 찼으니 남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산의 정상부를 오르는 등산로와 마룻금은 깊은 골이 패이고 회복하기 힘들만큼 훼손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때 국가(산림청)가 나서서 등산로를 지정하고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얼핏 보면 바람직한 것처럼 보이며, 국가가 국민들의 산행을 돕겠다는 취지를 나무랄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한 둘이 아니다. 우선은 국가가 지정하는 등산로가 백두대간 마룻금을 고집하고 있다는데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 백두대간이 무엇인가? 백두산에서부터 지리산까지 이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줄기이며 민족의 상징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백두대간은 다양한 야생동식물의 삶의 터전이며 우리 생태계의 보고이다. 그래서 녹색연합을 포함한 시민단체가 오래전부터 백두대간 보호방안을 촉구해왔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백두대간보호법을 만들고, 백두대간보호구역을 지정해 국가차원에서 보전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백두대간은 다른 어느 곳보다 우선하여 지켜야 할 보전대상이지 이용대상으로써 사람들의 등산을 권장할 곳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국가지정 등산로가 만들어지면 이처럼 중요한 백두대간에 마룻금을 중심으로 종주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할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신음하고 있는 백두대간 마룻금의 훼손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등산로로 지정될 백두대간의 중요한 곳은 국립공원지역이며, 이 중 상당부분은 생태계 보전지역, 또는 자연휴식년제 등으로 등산 자체가 금지된 지역이다. 뿐만아니라 지난해 집중호우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해 설악산 공룡능선 일대는 등산 자체가 불가능할만큼 훼손되어 치유를 기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와 산악인, 나아가 국립공원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까지 미시령에서 단목령 사이 구간의 등산로를 폐쇄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등산로가 지정되면 이러한 곳까지 등산인구의 유입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상이나 마룻금 중심의 등산문화를 바꾸어 자연 그 자체를 느끼고 그곳에 있는 역사와 민족의 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탐방문화로 바꾸어가기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것이다. 산림청에서조차 시민단체의 의견을 받아들여 지리산 일대에 순례길을 조성하는 등 등산문화를 다양화, 변화시키려고 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마당에, 백두대간 마룻금 중심의 등산로 지정은 산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지정 등산로 종주 산행’(백두대간 종주산행)으로 유인하는 결과를 가져와 등산문화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산림청에서 등산로를 지정하고 등산 지원 계획을 세운 애초의 취지야 어떻든 간에 국가등산로 지정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현재와 같은 방식의 등산로 지정 계획은 취소되어야 한다. 등산은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품에 드는 것이다. 산림청은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등산로 지정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올바른 등산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우선 기울여야 하며, 백두대간의 생태, 역사, 문화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순례길 조성 등 다양한 탐방 프로그램 개발과 시민들의 인식전환에 힘쓰길 바란다. 더불어 산을 즐겨 찾는 우리 시민들도 이 기회에 등산에 대한 보다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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