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길, 소통의 길을 열다

2010.08.10 | 백두대간

– 반핵운동부터 울진숲길까지, 울진과의 인연

울진으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멀다. 예전보다 2~3시간은 짧아져 서울에서부터 5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을 삽시간에 오고가도록 닦아놓은 도로며 고속철도라는 문명에 길들여진 탓인지 멀게만 느껴진다. 울진숲길 개통식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렇게 먼 오지까지 사람들이 찾아올까 은근히 걱정도 해본다. 7월 20일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울진숲길을 여는 개통식이 열렸다. 70km에 이르는 4구간 중에 13.5km의 1구간이 사람 맞을 채비를 마치고 첫길을 열었다. 녹색연합이 울진과 인연을 맺어 이날 울진숲길을 열기까지 참 많은 세월이 흘렀고 수많은 사연과 활동이 있었다.

울진과 녹색연합의 처음 인연은 반핵운동으로 시작하였다. 울진에는 핵발전소 100만kw급 6개가 가동, 운영되고 있었다. 그로인해 두 입장간의 갈등이 고조되었는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찬핵’과 주민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반핵’이 그것이다. 물론 울진군수와 주민은 낙후한 울진 경제를 살릴 방안으로 핵을 선택해 왔다. 하지만 86년 체르노빌 핵사고가 전 세계의 반핵운동을 촉발시켰듯이 울진의 반핵운동에도 영향을 주었고 지역의 젊은 청년들이 89년 울진반핵운동청년협의회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반핵운동의 20여년 역사를 만들어 왔다. 울진 반핵운동이 있었기에 정부가 2003년부터 강행한 핵폐기장 건설사업을 막아낼 수 있었다. 또한 2003년 부안 핵폐기장 사태 이후 2004년에 다시 정부가 3천억 원 지원과 한수원 본사 이전이라는 ‘당근’을 들고 핵폐기장 유치신청에 나섰을 때도 울진군수와 군의회로부터 핵폐기장을 유치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울진 반핵운동에서 성장하여 울진 지역현안과 그 문제해결을 위한 주민운동에서 빠지지 않고 활동해 온 이규봉씨는 현재 사단법인 울진숲길 사무국장 역할을 맡았다. 그는 울진숲길 해설사로서, 산양과 왕피천 지킴이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반핵운동으로 시작하여 지역운동가의 길을 걸어온 장시원씨는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가장 많은 표로 당선되어 지역의 풀뿌리일꾼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녹색연합은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백두대간 보전운동을 시작하였다. 활동가, 전문가들이 직접 발로 걸으며 전국을 조사하고 기록하여 백두대간실태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우리나라 국토 생태축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밝히고, 이를 훼손하는 자병산 석회광산과 같은 난개발의 아픈 현장을 고발했다. 그리고 백두대간에서 뿌리가 이어져 국토 구석구석 산줄기를 만들어 잇는 있는 13개 정맥의 생태가치를 조사, 기록하였다. 그 중 낙동정맥은 영남권의 산림생태계와 물생태계를 만들어 품는 산줄기로서 그곳에 바로 울진의 왕피천이 있었다.

그동안 백두대간 보전운동을 이끌어 온 서재철 활동가를 중심으로 2000년부터 울진군청과 함께 왕피천의 자연환경을 조사하였고, 그 빼어난 경관과 생태가치가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어 국내 최고의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밝혀졌다. 서재철 활동가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답고, 원시의 우수한 생태계를 간직한 곳은 왕피천이 유일하다’며 이곳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하였다. 2002년부터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세부조사, 주민과의 대화, 환경부와의 협의, 청년생태학교 등 시민과 함께 하는 탐방 프로그램 등을 거치면서 2005년 왕피천은 국내 최대의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그 아름다움과 원시자연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 최고의 오지였기에 개발의 손을 타지 않아 원시자연을 간직한 울진! 험준한 바위절벽을 타고 오르며 생존해 온 국내 최대의 산양서식지이자 수많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이 깃든 이곳을 지역의 주민이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우리는 ‘길’을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자연에게 배우는 길이자 자연과의 깊은 연대의식을 나누는 길로서, 자연이 감당할 만큼만 그 길에 들며 그 길에서 얻는 것은 주민에게 일정한 풍요와 행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길 말이다. 예부터 주민들이 자연과 소통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삶의 터전을 일구어 온 옛길을 복원하는 일을 ‘울진숲길’이라는 이름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윤기돈, 고이지선 활동가가 그 소통의 길을 다시 열어가기 위해 마을어른들, 산림청과 울진군 공무원을 만나며 울진숲길을 복원하는 뜻을 나누었다. 그리고 올해 초 배제선 활동가가 지역으로 내려와 살며 주민들과 그 길을 한걸음씩 열고 신뢰관계를 쌓으며 ‘울진숲길’에 뜻을 나누는 지인들과 사단법인 ‘울진숲길’을 만들었다. 이번에 개통한 두천리~소광리 길은 옛 보부상들이 울진에서 나는 바다산물을 지고 봉화에서 나는 농산물과 소통시키고, 12고개를 넘으며 삶의 애환을 묻어 온 곳이며, 멸종위기 야생동물 산양이 사는 것이다. 녹색운동 길에서 만난 울진 생명의 길이 자연의 심성을 잃고 물질만능에 빠져있는 이 세상과 소통하며, 자연과 공생하며 사는 지역의 참다운 살 길을 열어가기를 바란다.

녹색연합 창립 20주년을 맞아 4월부터 12월까지 녹색운동의 주요한 바럴음을 돌아봅니다.

글 : 김제남 (녹색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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