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 샷”에 피멍드는 강원도

2011.07.26 | 백두대간

삶의 모습은 나고 자란 곳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기본적인 의식주 뿐만 아니라 놀이문화까지도. 초원이 펼쳐진 곳과 산이 많은 곳의 놀이문화가 같을 수 없고, 바닷가와 뭍의 놀이문화가 같을 수 없다. 그래서 풀밭이 넓은 나라의 목동들이 즐기는 놀이에서 출발한 골프가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선 어울리지 않는다.

20여년전만 해도 골프는 좀 사는 사람들의 스포츠인줄 알았는데 요즘엔 사정이 좀 달라졌다. 우리나라 골프선수들이 해외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고 상금을 획득하는 것을 국위선양으로 생각하는 요즘 분위기에서 골프가 문제 있는 스포츠라고 말하면 욕먹기 딱 좋다. 그럼에도 문제는 문제다. 골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땅에서 골프를 즐기기 위해선 희생당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문제다.

한때 경기도나 제주도에만 넘쳐나는 줄 알았던 골프장이 요즘은 강원도에서 붐이다. 교통이 편해지면서 강원도와 수도권의 거리가 가까워진 까닭이다. 조금이라도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골프를 즐기고 싶어서인지, 이미 마흔 두 개가 지어져있는데 여기에 마흔 두 개가 더 만들어질 예정이다.

마흔 두 개에 마흔 두 개 더

강원도의 산을 떠올리면 딱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첩첩산중. 평야가 없어 산을 일궈 감자를 심고 옥수수를 심는 땅이 바로 강원도 땅이다. 그런데 그곳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건? 당연히 산을 모조리 깍아 낸다는 걸 의미한다. 그 산에서 나물을 캐고 벌을 키우고 논밭을 일구던 마을 주민들이 찬성할 리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골프장 사업은 시행자들이 주민들 몰래 진행하고 거의 허가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주민들이 알게 된다.

땅을 판 주민들조차 그 땅이 ‘표고버섯단지’, ‘사슴농장,’ ‘오갈피농장’ 같은 걸로 쓰인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끝까지 땅을 팔지 않는 이들은 ‘토지의 80%를 매입하면 나머지 20%는 강제수용할 수 있다’는 해괴한 법에 의해 강제로 땅을 잃기도 했다. 다행히 최근에 이 법조항에 대한 헌법불일치판결이 내려졌다.

“마을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저 높은 산에 등산을 하러 오는 게 아니라 골프를 하러 온다고? 그게 말이 돼?” 하는 주민들을 비웃듯이 골프장은 온갖 편법, 위법을 동원한 채 허가가 된다. 멸종위기종들이 다수 서식하는 지역에선 아예 멸종위기종들이 없다는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진다. 홍천의 골프장 건설 현장에서 하늘다람쥐도 발견되고 최근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잠자리인 ‘꼬마잠자리’의 집단 서식지도 발견되었지만 환경영향평가상에선 모두 없는 종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뿐 아니라 경치 좋은 바닷가도 골프장으로 각광받고 있어, 삼척 맹방에선 수백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해안림 솔숲을 모조리 베어낸 채 골프장이 건설되기도 한다. 태풍과 해풍으로부터 마을을 안전하게 지켜온 울창한 해송들이 하루아침에 잘려나가는데, 이 숲을 헐값에 넘긴 건 다름 아닌 삼척시였다.

멀쩡한 희귀종 없다고 우기는 환경영향평가

게다가 마을과 산을 모조리 밀어내고 건설 중이던 골프장사업이 업자의 부도로 중단되어 누런 흙빛을 드러낸 폐허로 남는 곳도 생기고 있다. 업자가 회원권을 팔지 못해 주민들에게 약속한 보상을 할 수 없다고 하자, 주민들이 나서서 회원권을 사달라는 현수막을 내건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골프장이 너무 난립하고 있어 경제성도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이다.

요즘 강원도 홍천, 횡성, 원주, 춘천, 강릉, 삼척 등지의 주민들이 강원도청과 연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강원도지사 선거 운동 당시 최문순 후보는 골프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석 달이 흐르도록 약속했던 민관협의체조차 제대로 꾸려지지 않고 있다.

지방의 환경을 담당하는 환경청은 “강원도엔 원래 야생동물이 많아서 그런 거 다 따지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업자가 할 소리를 하고 있다. 농사일에 바빠야 할 주민들이 도청으로 공사현장으로 환경청으로 쫓아다닌 지 수년째다. 골프장 업자의 온갖 고소고발로 범죄 없던 마을에서 골프장 반대운동을 하다 주민 스물 일곱명이 범죄자가 된 일도 생겼다.

누군가의 한나절 “나이스 샷”을 위해 피멍드는 주민들과 산천. 바로 골프장의 추악한 뒷모습이다. 이런데도 골프를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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