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행정권력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

2011.11.04 | 백두대간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이 권력을 이겼다’는 말로 당선의 첫 소감을 밝혔다. 다행히 선출직 권력에 대해 시민은 투표로써 심판할 수 있으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런데 잘못된 행정을 집행하는 공무원이 있다면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어떻게 심판할 수 있을까? 최근 어처구니없는 국토해양부의 행정집행을 보며 든 생각이다.
지난 6월30일 헌법재판소는 골프장을 공익시설로 볼 수 없기에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지역 주민의 토지를 강제수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미있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을 낸 경기 안성시 ‘동편CC골프장 반대대책위’ 주민들과 골프장 건설로 토지를 강제수용당할 위험에 처한 지역 주민들에겐 가뭄 끝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헌법재판소 결정 이전에 골프장 건설을 위해 밟아야 할 과정 중 첫 단계인 주민제안서를 낸 경우까지도 토지 강제수용을 용인하도록 관련 규칙을 개정해 공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의 핵심은 골프장 건설로 자기가 살아오던 삶터를 빼앗기는 것은 부당하니, 이런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련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는 이미 토지를 강제수용당한 주민들은 어쩔 수 없으나, 토지 강제수용 위험에 놓인 주민들을 어떻게 구제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관련 법규나 규칙을 재정비하는 것이 옳다. 이것이 양식 있는 사람들의 일처리 방법이다. 골프장 건설로 토지를 강제수용당하게 될 위험에 놓인 사람들의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정부가 더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하며 해법을 찾는 것이 보통의 시민들이 그리는 공무원의 모습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국토해양부의 공무원은 골프장 사업자의 입장에 서서, 우리는 국가를 믿고 사업을 추진한 골프장 사업자들을 외면할 수 없으니 가장 첫 단계인 주민제안서를 낸 상황이라도 지역 주민의 토지 강제수용을 보장할 수밖에 없다고 관련 규칙을 개정하려는 것이다. 국민의 재산권 보호는 국가의 책무 중 하나인데, 그렇다면 지역 주민의 재산권은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그것은 양쪽이 법으로 다투라는 것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골프장 사업자 쪽이 주민제안서를 만들 때, 지역 주민들에게 골프장을 건설하겠다는 설명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농장을 만든다든지 하는 다른 이유를 대며 주민들로부터 토지수용 허가 동의를 받은 뒤, 나중에 골프장 건설로 변경하는 것이 지금까지 관례였고 그에 따라 지역에서 분쟁이 속출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주민제안서를 제출했다는 이유만으로 토지 강제수용을 보장하는 것은 사업자 쪽의 불법 관행에 손을 들어주는 처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골프장이 들어서는 많은 지역에서 골프장 사업자 쪽과 지역 주민들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엉터리 토지적성평가, 입목축적평가,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정당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행정기관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부당한 골프장 건설을 막기 위한 지역 주민들의 작은 몸짓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여, 법 없이도 살던 많은 주민들이 범법자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여기에 골프장 건설업자 쪽은 사업 초기 돈으로 주민을 매수하며, 오랫동안 희로애락을 같이해오던 주민들 사이의 반목을 부추겨왔다. 만약 헌법재판소의 결정처럼 한 필지라도 토지를 강제수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골프장 사업자 쪽에서 돈으로 지역 주민을 매수하여 주민간 갈등을 부채질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국토해양부 도시정책과에서는 주민제안서가 제출된 지역을 포함하여 골프장 건설이 추진중인 190개 지역에 대한 토지 강제수용을 정당화하는 규칙을 공포하려 한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자신이 살아온 삶터를 빼앗기고 다른 곳으로 쫓겨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서민의 편에서, 빼앗기는 자의 편에서 그들의 고충을 듣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공무원을 보고 싶다. 아직 늦지 않았다. 국토해양부 도시정책과 공무원들이 지역 주민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도록 규칙 공포를 중단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 것을 기대한다.

* 11월 1일 한겨레신문 시론에 실린 원고입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