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천왕봉에 케이블카를 놓고 싶은가

2010.10.01 | 설악산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9월 20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어 자연공원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사회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일간지가 발간하지 않는 틈을 탔다.
이번에 개정된 시행령에는 공원위원회 심의대상 범위를 완화(2000㎡에서 5000㎡, 공원자연보존지구는 2000㎡)하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공원자연보존지구 내 행위기준을 조정한 것이다. 공원자연보존지구에서 허용되는 최소한의 공원시설 중 로프웨이(케이블카) 설치허용 규모를 2㎞ 이하에서 5㎞ 이하로 조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자연공원 내에서 케이블카를 천왕봉, 대청봉 정상 턱밑까지 건설 가능케 한 것이다.

자연보전지구 내에서 규제완화를 시도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처음
국립공원, 도립, 군립공원에 관한 법인 자연공원법은 1967년 제정된 이후 여러번 개정되었다. 그러나 국립공원의 자연보전지구 내에서 규제완화를 시도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처음이다. 자연보전지구는 법상으로 “생물다양성이 특히 풍부한 곳, 자연생태계가 원시성을 지니고 있는 곳, 특별히 보호할 가치가 높은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는 곳, 경관이 특히 아름다운 곳 등을 지정하도록 되어 있다. 국립공원은 국토 면적의 약 5%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생물종의 75%를 담당한다. 그중에서도 자연보전지구는 인위적인 시설물을 최대한 배제하도록 국제기구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도 권고하고 있다.

환경부는 이번 개정안을 지난 2009년 5월에 입법예고 하고서도 사회적 논란 때문에 국무회의에 상정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도 공청회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 2008년에 환경단체가 포함된 ‘친환경 로프웨이 건설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했으니 의견수렴은 끝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협의체는 ‘삭도’(로프웨이) 건설을 위한 지침 개정을 위한 것이었다. 법률에 명시된 규제완화를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당시 참가자들의 증언과 기록을 보더라도 자연공원법 시행령은 아예 거론되지 않았다.

지난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의원실은 환경부와 간담회에서 논란이 되는 사안이므로 국정감사 이후까지 미뤄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요청도 무시하고 진행시킨 데에는 올해 말까지 1~2군데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허용하기 위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를 신설하기 위해서는 사전환경성검토, 환경영향평가를 거쳐서 최종 국립공원위원회에서 공원계획변경에 대한 심의를 해야 한다. 공원위원회가 보통 매달 한번씩 열리기 때문에 앞서 절차를 마치고 올해 말까지 공원위원회 통과시키기 빠듯한 일정이다.

케이블카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환경부는 사전규제가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규제완화 차원에서 시행령 개정을 추진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존 제도로도 국립공원 안에서 케이블카 신설은 가능했다. 다만 산 정상부까지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제도로 규정해 둔 것은 산 정상부가 생태계가 취약해 인공시설물과 과도한 탐방객으로 한번 훼손이 되면 복원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처럼 이명박 정부가 이 규제마저 풀어버린 것이다. 지자체나 개발 주체가 아무리 국립공원을 개발하겠다고 해도 국립공원관리를 책임지는 환경부는 생태계 보존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북한산의 경우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나서서 케이블카를 추진하겠다니 기가 막힌 일이다.

4대강에 이어 국립공원까지 개발지로 전락
생물다양성 공로상을 수상한 이명박 정부가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추진하는 것은 국제 흐름에도 맞지 않다. 국립공원 개념을 만들었던 미국에는 케이블카가 하나도 없고, 일본도 90년도 이후에는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환경부는 작년까지 9개의 국립공원을 세계자연보전연맹의 국립공원 카테고리에 등록시켜 앞으로 국립공원관리 비전을 밝히기도 했다. 지금 케이블카 건설을 추진하는 설악산, 지리산 등이 모두 국제적 기준에 맞춰서 지켜져야 할 곳들이다. 환경부는 4대강에 이어 국립공원마저도 개발대상지로 전락시켜버리고 있다. 생물다양성의 해에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고이지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 10월 2일 한겨레신문 왜냐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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