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의 학살

2010.04.22 | 가리왕산

며칠 전 동료들과 4대강 공사 중단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더 이상 ‘4대강 삽질’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제안이 나왔다. 삽질이 의미하는 바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어떤 의미에도 4대강 공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버지들의 피땀이 담긴 노동을 의미하는 삽질도 아니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무의미하게 반복한다는 그 삽질도 아니다.

4대강 공사는 사람의 노동력을 사용해서 일자리라도 창출할 수 있는 무슨 주택 건설현장도 아닌, 중장비만 동원되는 현장이다. 사람의 노동력이란 그저 다이너마이터를 터뜨리고 중장비를 움직이는 데 쓰이는 정도다. 우스꽝스런 의미로 사용되곤 하는 삽질이라는 말을 쓰기에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공사는 너무 엄청난 일이다.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제 뜻대로 흘렀던 자연을 뒤엎는 일, 강물에 기대어 살아온 모든 목숨을 모조리 끝장내는 일을 두고 우리는 말랑말랑한 말인 삽질을 더 이상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삽질 대신 ‘4대강 학살, 4대강 살육’이라는 말을 해야 한다고 누군가 내뱉었다. 학살, 살육 같은 섬뜩한 말, 입에서 내뱉는 것만으로 몸이 곤두서는 듯한 그런 단어. 지금 4대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바로 이런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즘 들어 자주 찾게 되는 남한강 공사현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낙동강 공사전후의 모습이 담긴 지율스님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절로 그런 단어가 떠오른다. 봄을 맞기도 전에 무참히 베어진 버드나무 숲. 누런 바닥을 드러내고 철근과 콘크리트가 박혀 예전엔 물이 흘렀다고 믿기 어려운 강, 물을 마시러 내려왔다 오도가도 못하는 고라니. 금모래 은모래라고 불렸던 강변이 몽땅 파헤쳐진 모습. 이런 모습을 보고도 죽음이 떠오르지 않고 ‘살리기’가 떠오르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도대체 어떤 심장이 들어있을까?

그리고 이 봄, 또 학살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 있다.
최근 여러 사회 현안에 묻혀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은 일 중 강화도 일대의 구제역 발생과 이 지역 일대의 소, 돼지 살처분이 있다. 살처분이라는 이름은 마치 나치 시절 독일군이 유대인 학살을 ‘최종해결’이라고 하는 사무적인 단어로 바꿔 불렀던 것처럼 그 단어 만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살처분은 살아있는 채로 처분한다는 말이다. 바로 살아있는 소를 매장해버리는 것이 바로 살처분의 정체다. 그러니까 살처분이 아니라 생매장이라고 해야 정확한 말이다. 산 채로 구덩이에 소를 묻는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일에 동원된 사람들은 멀쩡한 정신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수년동안 조류독감과 구제역 등으로 살처분이 자행되고 있다. 닭과 오리를 산채로 포대자루에 담아 땅에 매장하고 소와 돼지를 흙구덩이에 넣어 버리고 이 일에 군인, 공무원들이 동원되어 왔다. 축산농가들에게는 보상이 이뤄지고 있다지만 현실적인 보상은 아닐 테니 농가들에게도 그 일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나 군인에게도, 무엇보다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에게도 도저히 할 짓이 아니다.

고기도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물건처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는 현재의 축산업 현실에선 이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가축들은 인공수정으로 태어나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사소한 질병에만 노출되어도 급속도로 전염되고 이를 막기 위해선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량의 약물이 주사로, 먹이로 투여된다. 백신으로 예방되기 힘든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같은 일이 발생하면 해결책이라는 것은 그저 전염될 수 있는 지역의 가축들은 모조리, 그것도 산채로 죽이는 일이다.

영국에선 90년대 중반까지 구제역, 광우병 파동으로 축산 농가가 몰락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때 그들이 선택한 것은 유기농이었다. 공장형 축산 시스템이 아닌 풀을 먹고 건강하게 자라는 소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구제역과 광우병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고 농가들은 다시 소득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유기농 만으로는 지금같이 늘어난 육류소비량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 육류 소비를 줄이는 일, 대규모 공장식 가축산업을 중단하는 것만이 소, 돼지, 닭의 생매장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다.

벛꽃이 피고 산수유가 흐드러지는데 날마다 죽음에 관한 소식만 들려오니, 2010년 4월의 봄은 잔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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