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운하 예정지를 다녀와서

2008.04.17 | 4대강

4월 9일.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이다.
지난번 경부운하 예정지 녹색순례에 동참했던 인연이 다시 이번 경인운하 예정지 답사에도 동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8년 녹색순례는 나에게 매우 뜻 깊은 시간이었다. 10여년을 회비만 내는 회원에서 직접 행동하는 회원이 되게 해 준 첫 발길이었으니까.

경인운하 계획은 굴포천 방수로의 폭과 깊이를 더 넓혀 운하로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굴포천은 한남정맥의 물길을 받아 부평-송내-계양 지역을 흐르는 하천이다. 이 하천은 한강 하류와 연결되어 여름 홍수 때만 되면 한강물이 역류하면서 고려시대부터 만성적인 침수지역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부터 이곳의 침수피해를 막아보려 했으나 기술의 부족으로 포기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굴포천 방수로 공사는 1989년에 홍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기존에 한강 하류로 흐르던 굴포천의 물줄기를 계양구 하야동에서 서해 쪽으로 변경하여 약 14km에 이르는 새로운 수로를 만든 것이다.

경인운하는 이 수로를 다시 직선거리로 한강과 연결하여(약 4km 연장) 총 18km에 이르는 운하를 만든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에 이미 경인운하 계획에 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약속한 오후 1시쯤 인천 계산역에 도착하니 인천녹색연합의 장정구 사무국장과 안근호 활동가가 나와 있었다. 본부녹색연합 활동가 9명, 인천녹색연합 활동가 4명, 가톨릭환경연대 이상근 실행위원장님, 권창식 사무국장님, 노현기(계양산 골프장 저지 및 시민자연공원 추진 시민위원회 사무처장)님 등과 경인운하 예정지로 이동하였다.

한남정맥이 서해로 뻗어오는 끝자락에 마지막 방점을 찍은 곳이 계양산이다. 계양산은 롯데건설에서 40만평 규모의 골프장을 계획하고 있는 곳이다. 계양산 골프장 건설 반대 운동을 하시고 계시는 노현기님은 계양산에 골프장을 건설하게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셨다. 이곳은 습지가 남아있고 산개구리와 도롱뇽이 서식하고 있으며 계양과 부평 주민들의 사랑받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을 일부 특권층의 놀이터로 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굴포천 방수로 공사로 인하여 한남정맥의 끝자락이 이미 잘려나갔다. 여기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면 골프장의 농약성분이 방수로와 갯벌, 서해로까지 흘러들어간다는 것이다.

굴포천 방수로 공사의 중간 지점쯤에 우리는 도착했다. 물은 말없이 흐르고 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나의 길을 한강에서 서해로 돌렸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방수로 옆으로는 6차선 인천국제공항 전용 고속도로가 지나고 바로 그 옆으로 철로가 놓여있다.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가 마침내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받기도 좀 애매하고 그렇다고 우산을 접기도 또한 애매한 날씨이다. 방수로를 위해 파낸 골재들이 잔뜩 쌓여있다. 우리는 그 위에 올라서서 권창식 가톨릭환경연대 사무국장님으로부터 경인운하의 현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작은 하천이었던 굴포천은 원래 주위가 논밭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논밭이 도시로 개발되면서 논밭이 물을 가두고 있던 기능이 상실되어 조금만 비가 와도 부개동과 송내 부천 일대가 잦은 침수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래서 정부에서 홍수 예방의 목적으로 폭 40m의 방수로를 만들어 이 물을 서해로 바로 방류하기 위해서 이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방수로를 운하로 변경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9년 환경영향평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운하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로의 폭을 40m에서 80m로 늘려야 했고 강의 수심도 3m에서 6m로 확장하여야 했다. 지금은 수로폭이 약 60m정도인데 앞으로 80m까지 확장할 계획으로 추진되고 있다. 여러 감정기관 평가 결과,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공사가 연기되기도 했었고 감사원의 지적을 받아 공사가 중단된 적도 있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경부운하를 강행할 이전사업으로 이 경인운하를 다시 검토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강은 내 삶이었다. 목욕을 하기도 하고 조개를 잡고 어른들은 낚시를 하고 모래밭에서는 가끔 자라 새끼를 볼 수 있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다. 간혹 여름에는 수영을 하다 어느 집 누가 빠져 죽었다는 말도 들었지만 난 강을 두려워 한 적은 없었다. 이곳의 인공적으로 깎아지른 절개지는 먼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절개지 한참 밑에 채워 넣은 물은 너무 왜소해 보이기까지 한다. 강이 아닌 수로라는 것에도 답답함과 두려움이 함께 느껴진다.

홍수 예방 목적의 방수로는 내가 생각해도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하나를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는 듯하다. 그곳에 유람선을 띄우고 싶고, 바지선을 띄우고 싶고, 그리고 그 치적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욕망의 덩어리 위에서 나는 잠시 머리가 복잡해진다. 만일 운하를 만든다면 물을 가두어 놓아야 할 것이고 그리되면 그 물이 오염될 것이고, 비가 많이 올 때 물을 미처 서해로 내보내지 못한다면 기존의 홍수 방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돈을 번다. 그러나 많은 돈을 벌다보면 행복의 목적은 어디로 없어지고 단지 많은 돈을 소유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돈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굴포천 방수로 절개지 위로 난 길을 따라 우리는 하류로 내려왔다. 다리 너머로 청라지구 매립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옆으로 아직은 조금 남아있는 갯벌이 보인다. 이제 저곳 청라지구에도 곧 많은 건물들이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그리되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저 갯벌도 안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멀리는 쓰레기 매립지가 보인다. 저곳의 침출수도 굴포천으로 갯벌로 서해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이제 4km만 더 뚫어 한강과 연결하면 경인운하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미래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 무리의 관광유람선이 인공으로 깎아지른 운하를 지나면서 외친다. “이거 우리 인간들이 대단하지 않아! 저 높은 산을 깎아 운하를 만들다니!”

이 운하의 추진으로 또 어떤 생명들이 죽어갈 것인지, 이 운하의 추진으로 또 어떤 힘없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지, 그 아우성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이 산하의 강물, 그대로 흐르게 하라!

● 글 : 오수경 녹색연합 회원

굴포천 방수로 생기기 이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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