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절로 나오는 병산서원… 이젠 한숨이 절로

2010.11.04 | 4대강


▲ 30일 녹색연합 회원 및 시민 30여명은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서원과 하회마을 일대 강변을 찾았다. 이 지역들은 곧 4대강 사업으로 본래 모습을 잃게 될 것이다

경북 안동 병산서원에 가을이 왔다. 만대루에 올라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울긋불긋한 단풍나무 숲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꼭 펼쳐 놓은 병풍이다. 누군가는 “여기 앉아 있으면 시가 절로 나오는데, 과거 시험 공부는 뭐하러 했을까”라며 농담을 던진다.

지난달 30일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서원을 찾은 녹색연합 회원 및 시민 30여 명은 다시 볼 수 없을 주변 풍경을 사진으로라도 남기려는 듯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낙동강 대부분의 구간이 4대강 사업으로 훼손되고 있는 가운데, 안동 병산서원 앞 강변은 아직 공사에 들어가지 않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지금 여러분들이 앉아 있는 이 곳도 머지 않아 이렇게 될 겁니다.”


▲ “새가 살지 못하는 땅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다” 김경철 ‘습지와새들의친구’ 사무국장이 구담습지 앞에서 일행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경철 습지와새들의친구 사무국장은 4대강 사업으로 흉물스럽게 파헤쳐진 구미 해평습지 사진을 일행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병산서원의 절경은 비경(悲景)으로 바뀐다. 나들이 온 듯 들떠 있던 참가자들은 “믿을 수 없다”며 한마디씩 하더니 곧 숙연해진다.

김 국장은 “이번에 3천여 마리의 철새들이 해평습지를 찾았지만 많이 파헤쳐져 있는 데다 주변의 포클레인들 때문에 새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4대강 사업으로 더 많은 새들이 습지에 올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왜곡”이라며 “해평습지가 사라지면 철새들도 더는 월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라져가는 낙동강의 습지와 모래사장
버스를 타고 병산서원을 빠져나가니 13만 1200㎡의 병산리습지가 펼쳐진다. 평화로운 와중에 멀리 준설 작업 중인 포클레인들이 눈에 띈다. 병산리습지는 보전 가치가 높게 평가됐으나 4대강 사업을 비껴가지 못했다. 습지의 절반 이상이 준설로 잘려나가게 됐다. 주변 농지들도 마찬가지다. ‘농지 리모델링’이라는 이름으로 농사는 중단되고 곳곳에 준설토가 적치돼있다.

황민혁 녹색연합 4대강대응팀장은 “대부분이 농지 리모델링이 필요 없는 곳”이라며 “정부가 공사부터 시작하는 바람에 준설토를 졸속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지에 준설토부터 쌓고 주민들과 협상에 들어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며 “이 때문에 주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평화로운 병산리습지. 멀리 준설 작업중인 포클레인 3대가 보인다. 4대강 공사로 습지의 절반이 잘려나가게 됐다

일행은 자리를 옮겨 하회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부용대에 올랐다. 김 국장은 마을 주변을 둘러싼 모래톱을 내려다보며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이곳 모래톱이 금모래, 은모래 빛으로 반짝거렸다”며 “지금은 상당히 육지화된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로 모래톱 위에는 풀과 갈대들이 수북히 자란 상태다. 상류의 안동댐이 하류에 물과 모래의 공급을 막은 탓이다.

그는 “육지화돼 수풀이 있는 모래톱에는 새들이 앉지 않는다”며 “풀이 자라는 모래톱을 준설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 자연스런 모래톱이 형성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말로 준설이 필요한 곳은 따로 있다는 얘기다.

남은 모래톱들마저도 상류의 4대강 공사로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래사장이 정말 없어진다는 얘깁니까?” 한 참가자가 믿기 힘들다는 듯 다시 물었다. 김 국장은 “그렇다”며 “위에서 준설공사가 진행되면 이곳의 모래도 절반 정도가 사라지고, 마을을 휘감는 구불구불한 곡선들도 보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100% 잃는 것보다 99% 잃는 게…”
참가자들은 구담습지 주변 갈대밭길을 걸으며 4대강 사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구담습지 하류에 진행 중인 구담보에 이르기 전까지 주변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습지의 모습 그대로다. “낙동강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아름다운 길을 걸어왔다”는 누군가의 말에 참가자들은 다행인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한숨을 쉰다.


▲ 일행이 구담습지를 바라보며 4대강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영미(녹색연합 회원)씨는 또 “공사가 얼마나 진행이 됐든지 간에 막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양심이 썩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행동을 촉구했다. 손일호(23·대학생)씨는 “4대강 사업으로 강이 망가진다 하더라도 ‘원래의 강은 이렇지 않고 아름다웠다’고 후손들에게 말할 수 있는 역사의 증인이 되자”고 말했다. 낙동강 20공구의 턴키사업을 설계했다는 한 참가자는 “시스템이 사람을 만든다. 사업을 설계할 때만 해도 나쁜 사업이라는 생각이 없었다”며 “이렇게 체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현장을 봤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경철 국장은 “4대강 사업은 아이들이 깨끗한 강에서 꿈을 키울 생태적 권리를 빼앗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우리의 미래를 빼앗는 사업”이라며 “100억 조를 들여 다시 강을 복구하는 날이 오더라도, 지금 이 상황을 알아야 나중에 더 아름다운 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에 매일 항의글을 올리는 등 행동에 나설 것을 참가자들에게 제안했다. “만약 국토해양부나 환경부 등에 10만여 명 정도가 매일 한건씩 글을 올린다면 큰 힘이 되지 않겠느냐”며 “그렇게 많은 사람이 통한다면 결국 (반대 운동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 안미소 (녹색연합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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