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실개천은 내일의 4대강입니다

2010.11.10 | 4대강

제 고향 진주에는 “남강”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아리따운 강이 있습니다. 지리산 대원사계곡과 중산리계곡이 만난 덕천강, 지리산 뱀사골계곡과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경호강 등과 함께 서부경남 지역 이름 모를 골짜기에서 시작된 수많은 물줄기를 안고 있는 강이기도 합니다. 그 수많은 물줄기중 “나불천”이라는 작은 지천이 있는데요. 진주성의 서쪽을 지키는 서장대 절벽 바로 밑이 남강과 나불천이 합류되는 지점이며, 제 어린 시절의 주요 놀이터 중 한군데입니다.

그곳에서 불알친구들과 어울려 봄가을이면 물고기를 잡고, 여름이면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벌거숭이가 되고,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하천위에서 썰매를 지치며 놀았지요. 제 또래 머시마들은 대부분 이런 추억의 조각들을 가지고 있음직하지요. 그 당시에는 동네 하천을 지금처럼 인공구조물화 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추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서울생활이 익숙해 질 때쯤 “한강”이라는 거대한 물줄기는 다가가기에는 참으로 멀게 느껴지는 강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면서도 도림천, 반포천, 탄천 등이 한강으로 유입되는 구간에 오면 잠깐 자전거를 멈추고 저 하천을 따라가면 어느 골짜기까지 갈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습니다.

눈발이 살짝 흩날리고 찬바람이 매섭게 불던 4월 어느 날, 서울시 동네하천 생태모니터링을 위해 녹색연합 회원 몇몇이 한성대입구역 성북천 입구에 모였습니다. 성북천, 반포천, 망월천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하고 꼼꼼하게 조사를 하였습니다. 사진도 찍고, 야장도 작성하고, 데이터도 기록하면서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 노력하였으며, 몇 달 후 보고서를 받아보니 새삼 뿌듯함이 들더군요.

이중 반포천은 제가 사는 동네와 가깝고 실제로 몇 번 산책해 본 적도 있고 하여 조금 더 언급해 볼까 합니다. 반포천이 실제로 우리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곳은 강남고속터미널 뒤편에 있는 팔레스호텔 앞인데요. 복개된 상태로 도로 밑에 숨어있던 하천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면서 건너편 아파트촌 산책로와 연결이 되고 지하철 4호선 이수역 밑에서 한강과 합쳐집니다. 복개된 하천은 말라서 물이 없으므로, 한강에서 펌프로 물을 끌어와서 흘려보내는 인공하천인 셈입니다. 자연하천으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된 상태이지요.

제가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돌다가 이수역 밑으로 유입되는 하천을 따라가면 어느 골짜기까지 갈 수 있을까 상상해 보았었지만 기껏해야 고속터미널 까지였습니다.

대부분의 동네 하천들은 도로 밑으로 숨겨져서 시궁창 역할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천생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발원지는 시궁창으로 남겨둔체, 눈에 보이는 구간들만 청계천과 비슷한 형태로 하천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서울시내에만 59개의 지천이 있는데요. 동네 하천변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다들 아실만한 내용들입니다. 정작 강물은 쳐다만 보아야 하고 주변 산책로만 이용해야 하는 참으로 이상한 실개천을 만들어 놓았더군요.

제가 반포천에서 느낀 “이상한 실개천”은 다름 아닌 미래의 4대강이라고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마저 듭니다. 이름 모를 골짜기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어제 실개천을 지나 내일 4대강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4대강보다 먼저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동네 하천 개발공사는 4대강 개발공사의 암울한 미래임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습니까?

자연생태 본래의 기능들을 무시하고, 정치경제적 가치를 내세워 시행되는 개발사업은 당장 중단되어야 합니다. 개발지향적 생태보존이 아닌, 자연과 인간의 삶이 어우러질 수 있는 자연지향적 생태보존이 미래의 우리를 위한 길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 정재한 (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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