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에서 약속한 기금 ‘4대강 홍보 연필’로 변신?

2009.12.14 | 4대강

[코펜하겐은 지금 ⑦] 4대강 홍보 부스에 ‘아시아 기후파트너십 기금’ 사용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 총회(UNFCCC COP15, 이하 COP15)’가 12월 7일부터 18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립니다.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최대 과제인 기후 변화 문제를 논의하는 COP15는 사실상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회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녹색연합과 공동으로 ‘코펜하겐은 지금’이라는 현장 기획 기사를 출고할 예정입니다. 녹색연합은 4명의 활동가를 현지에 파견했습니다.

한국정부의 ‘녹색성장’ 홍보부스가 15차 UN 기후변화당사국총회 회의장인 코펜하겐 벨라 센터에 설치되어 있다. 정부는 녹색성장 대표 정책으로 4대강 사업 홍보영상을 상영하고, 홍보책자와 연필 세트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지구의 미래’와 ‘지속가능성’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한국정부는 녹색성장에 대한 실체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일방적인 홍보전을 펼치는 것이다. 2022년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12개나 더 짓겠다는 나라의 정책이 어떻게 녹색일 수 있는가?

4대강 사업이 한국식 기후변화 대책?

특히 국내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여론은 반대가 찬성보다 높게 나타난다.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이 통과되기도 전에 기공식을 하는 무리수를 두고, 지난 8일 한나라당은 국토해양위에서 4대강 예산 3조5천억 원을 기습 처리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벨라 센터 현장에서 NGO들이 4대강 사업을 녹색성장과 기후변화 대책으로 선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홍보부스 철수를 요구하자 녹색성장위원회 박흥경 팀장은 “물 부족 문제는 기후변화와 민감하게 연결되어 있고, 4대강 사업은 한국식의 기후변화 대책이다”라고 답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COP15 회의장 ‘녹색성장’ 홍보부스 운영비용이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십’ 기금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이다. 현재 홍보부스는 한국국제협력단에서 파견 나온 기후변화대응반 환경팀장과 정부에서 고용한 홍보대행사 직원 2명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와 관련, 4대강에 댐과 다름없는 보를 설치하면 수질오염 문제가 심각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KOICA 관계자는 “홍보내용은 각 부처의 내용을 취합해 녹색성장위원회에서 최종 작성했으며, 코이카에서 부스 운영 실무를 맡고 있을 뿐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이 부스의 운영예산은 동아시아기후 파트너십 기금 예산으로 운영하고 있음을 공식확인해 주었다.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십 기금은 어떤 돈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7월 G8 확대정상회의에서 한국이 기후변화에 대한 ‘얼리무버’가 되겠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동아시아 기후 변화 파트너십’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2012년까지 총 2억 달러(2300억) 규모를 조성해 개도국들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한-아센안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십 기금 2억 달러 중 1억 달러를 인도네시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 아시아 지역에 사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기금 총액에 비하면 소액인 돈을 ‘녹색성장’ 홍보에 사용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반박할수도 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2009년 국정감사에서 황진하 의원은 KOICA가 집행하는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십의 사업비 집행률이 총 예산 400억 원 중 8억인 2%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개도국을 지원하겠다고 UN 회의석상에서 야심차게 발표한 기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흘러흘러 ‘녹색성장’ 홍보예산에 쓰이고 있다. 황진하 의원은 기금의 사용처를 12개 부처가 심의하고 확정하는 구조이다 보니 예산방향 설정과 집행이 쉽지 않고, 집행기관인 KOICA는 권한이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녹색성장’ 홍보 부스가 철수돼야 하는 이유



박대원 KOICA 이사장은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십 기금의 사용방향에 대해 “아시아 지역 농업 발전에 있어 과거에는 양수기를 설치해 줬지만 앞으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디젤 대신 태양열이나 풍력 발전 시설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 돈이 지금 정작 간절히 필요한 곳에 쓰이지 않고, 한국정부의 정책을 국제사회에 선전하는데 쓰이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한국이 어려운 나라들을 본격적으로 돕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앞으로 대외원조기금 예산은 지속해서 늘어날 예정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통해 우리나라 ODA 운영에 있어, 저탄소 녹색성장과 4대강 정책을 접목한 사업에 우선순위를 두기로 했다. 국책사업과 ODA를 연계하는 방향으로 이제 막 시작한 ‘4대강 사업’에 대해 개도국에서 연수생을 초청하거나 전문가를 파견하는 방식으로 확산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결국 ODA 마저도 국내 정책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따려서 지원을 받는 대상국가와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사업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꼭 필요한 도움을 준다는 ODA 원래 정신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물의 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 지역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진행되는 4대강 사업과 같은 대규모 환경파괴 토목공사가 아니라 물을 오염시키는 오염원을 제거하고, 지역주민이 참여해 수자원을 보호하고 관리하며, 민영화가 아니라 물의 공적인 관리시스템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

현재 COP15 벨라 센터에 설치되어 있는 ‘녹색성장’ 홍보부스는 국민들의 뜻과 달리 4대강 사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개도국에 지원하기로 약속한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십’ 기금으로 운영되는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철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십’ 기금의 운영에 대해서도 민간부문의 폭넓은 참여와 의사수렴을 통해 투명하고, 의미 있게 집행될 수 있도록 제도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십 기금은 ‘한 푼이라도 더’ 지금 당장 기후변화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아시아 사람들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

글 :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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