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녹색시선] 여전히 위기인 우리의 사대강으로

2019.07.10 | 4대강

4대강 사업이 한창일 때 부단히 강에 다녔습니다. 환경활동가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강을 찾았습니다. 농성장을 차렸고, 국회 앞 길바닥서 고단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2009년 6월 5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이 발표되고, 16개의 보로 4대강의 물길이 막힌 2012년까지 쉼 없이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결국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국민 절대다수가 반대한 국책사업을 밀어붙인 대통령의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홍수를 막겠다고 했지만 정작 홍수와 상관없는 곳에 보를 만들었고, 가뭄을 막겠다고 했지만 정작 가뭄과 상관없는 곳에 물을 가뒀습니다. 수질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홍수 저감, 가뭄 해소, 수질 개선 등 4대강 사업은 애초 표방했던 그 어떤 목적도 달성해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홍수에 도움 되지 않는 보에다 가뭄에 쓸 수도 없는 썩은 물을 이만큼씩이나 가둬두고 있는 셈입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초과 노동, 철야 작업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만 스물한 명입니다. 21세기에 가당치 않은 일이 이 땅에서 보란 듯이 벌어졌습니다.

22조 원이라는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간 국책사업입니다. 불행하게도 4대강 사업은 정부 스스로 법절차를 완전히 무시하고 상식을 거스른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4대강 사업은 강을 터전으로 삶을 일구던 어부들을 몰아냈습니다. 물길이 막힌 강은 더는 강이 아니기에 그곳에 살던 물고기들은 제 살 곳을 잃어버렸고, 그 물고기들을 쫓던 어부들 역시 설 곳이 없습니다. 4대강 사업은 강을 터전으로 삶을 일구던 농부들을 몰아냈습니다. 여울과 모래톱을 벗 삼아 농사짓던 곳은 콘크리트가 뒤덮인 둔치가 되었고, 그때 그 농부의 땀은 어제의 기록으로만 남습니다. 4대강 사업은 강이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16개의 호수가 된 4대강은 독성물질을 품은 녹조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고, 종국엔 영남지역의 식수 오염 문제까지 불러왔습니다.


그나마 마련된 4대강 재자연화의 새로운 전기

2017년, 드디어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겨울밤을 촛불로 지샜던 시민들이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4대강을 살리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해 5월엔 청와대가 4대강 관련 지시사항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4대강 사업을 감사하고, 물길을 막고 있는 보를 개방해 재자연화 가능성을 타진하고, 16개 보 처리 방안을 2018년까지 마련해서 우리 강 자연성 회복의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참혹한 질곡을 통과한 4대강에 생명을 불어넣겠다는 희소식입니다. 하지만 대통령 공약인 4대강 재자연화는 쉽지 않았습니다. 지방선거와 국회 내 정쟁 그리고 물관리일원화라는 현안 등에 치여 4대강 재자연화는 공전을 거듭합니다. 보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 조직과 예산을 만드는 것도 요원해 보였습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4대강 사업은 국가(행정) 주도로 우리 강을 파괴한 정책실패 행정실패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 4대강을 망친 가해자인 행정 주도로 4대강을 치료하겠다는 것입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했던 시민사회가 4대강 재자연화의 중심에 서야함에도 기계적 중립성을 핑계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방해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8년 8월 민관이 함께 하는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이하 조사평가단)이 환경부에 만들어졌습니다. 민간 전문위원이 4대강 16개 보를 어떻게 처리할지 안을 만드는 기구입니다. 의결권은 민간위원 8명과 공무원 7명 등 15명의 기획위원회에 주어졌습니다. 물 환경, 수리 수문, 유역협력, 사회경제 등 네 개 분야로 나눠 4대강의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디자인하는 조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물론 구성까지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인적 구성을 놓고 행정과 시민사회는 옥신각신했고, 논의 방법을 가지고 토론을 거듭했습니다. 조직은 8월에 떴지만 정작 민간위원 구성을 포함한 조직 완비는 10월에야 완성되었습니다. 녹색연합은 ‘4대강재자연화시민위원회’의 사무국으로써 행정의 카운터파트너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마침내 올해 2월 경제적 편익에 근거해 금강과 영산강의 5개 보 처리 방안이 조사평가단에서 발표되었습니다. 3개는 해체, 나머지 2개는 상시개방 후 추가 모니터링을 하자는 안입니다. 이 안은 7월에 구성될 대통령 직속의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위태로운 4대강
여전히 공고한 벽 앞에 무력합니다. 강의 상처와 강에 기댄 생명의 단절을 외면해야 하는 순간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새롭게 등장한 이해당사자 설득이 아득하고, 4대강 재자연화가 매 순간 정쟁으로 내몰리기 때문입니다. 열렸던 보가 다시 닫힐 때마다, 금강과 낙동강 등 지역에서 전해지는 부정적인 징후들을 마주할 때마다 자칫 바둑의 축처럼 끝단으로 내몰리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때 우린 최소한 정확한 근거와 일말의 합리성을 기대합니다. 시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의 권한을 대리한 위정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상식과 그에 걸맞은 공의입니다. 4대강 사업은 상식을 강바닥에 묻어버렸고, 염려를 표하는 수많은 시민을 길바닥에 세웠습니다. 민주주의 그 자체를 훼손했습니다. 뒤이어 등장한 보수 정권은 오류를 명백히 인정하면서도 끝끝내 방관했고, 불법과 부정의 위정자를 주군으로 모셨던 행정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촛불로 세운 정부가 4대강 재자연화에 있어 절호의 기회이고, 자신의 의무와 권리에 당당한 시민들이 그나마 여기까지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습니다.

내년 총선을 핑계로 정치권은 조사평가단이 발표한 금강과 영산강의 5개 보 처리 방안에 대해 갑론을박합니다. 청와대에서도 뚜렷한 근거 없이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올 연말까지 한강과 낙동강의 보 처리 방안을 마련해야 함에도관련 절차들이 모두 멈춰버린 상황입니다. 일부 보수 언론과 자유한국당은 4대강 사업 지키기에 혈안입니다. 있지도 않은 농민피해가 가짜뉴스로 떠돌아다니고 급기야 ‘4대강 보 해체 저지 범국민연합’이라는 단체가 한기총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좌고우면할 새가 없습니다. 시민들의 관심에서 비켜난 사이 우리 강은 더욱더 처참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16개 보로 물길이 막힌 우리 강을 마주할 때마다, 죽음의 기록이 새로 경신될 때마다, 더 늦기 전에 물길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더해집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보를 열기 시작했고, 무거운 중장비가 할퀴고 간 폐허를 보듬기 시작했는데 자칫 모든 게 멈춰버리지 않을까 조급해집니다. 어쩌면 다시 환경활동가들은 길 위에 서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4대강에 만들어진 보는 그 유지관리 비용만 해도 수천억 원입니다. 해악이 분명하다면 당장 해체하는 게 경제적입니다. 일각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보 해체가 아니라 보 수문을 개방하는 방안도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왜냐면 거의 모든 보가 수문을 완전히 개방한다고 해도 절반 이상 고정보로 여전히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강은 다시 한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글. 정규석(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정책팀 활동가)

이 글은 녹색희망 267호 <먹을까, 사랑할까>에 실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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