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를 거리로 내모는 정부

2010.04.21 | 4대강

4대강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종교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종교와 정치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온 사회에서 역사상 종교계가 정치문제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는 그 사회가 지극히 혼란스러운 위기의 시대뿐이었다. 그리고 위기의 시대에 종교계의 충고를 듣지 않았던 권력은 어김없이 몰락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 역사상 종교가 정치에 직접 개입한 대표 사례는 후삼국 시대에 궁예의 학정에 맞서 당시 불교의 고승들이 목숨을 던져 궁예의 잘못된 정치를 비판한 사례를 들 수 있다. 결국 궁예는 고려 태조 왕건에게 권력을 내주고 쫒기는 신세가 되었고 목숨마저 지킬 수 없었다. 종교가 대규모로 정치에 개입한 가장 최근의 예는 6월항쟁으로 대표되는 87년 민주화 운동시기이다. 당시 수많은 종교인들이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고 특히 명동성당으로 대표되는 천주교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결국 얼마되지 않아 군사정권은 끝이나고 민주주의의 꽃이 피어날 수 있었다. 이토록 종교계가 현실정치에 적극 개입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징성이 큰 일이고 시대 상황이 지극히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지금이 바로 그 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대다수 종교계에서 이명박 정권의 독주를 비판하고 특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사업 중단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수경스님을 중심으로 한 불교계는 일찌감치 한반도대운하와 4대강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오체투지를 비롯한 고행의 길을 걷어 왔다. 지금도 수경스님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여주 남한강변에서 ‘여강선원’을 차리고 4대강사업으로 죽어가는 생명들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 고행의 길을 가고 있으며 4월 17일에는 조계사에서 1만명이 참여하여 4대강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대규모 수륙대재를 진행하였다. 천주교는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20여년만에 처음으로 범 종단차원에서 직접 행동을 결의하고 4대강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보수성향이 강한 주교회의에서 4대강사업 중단을 촉구한 것은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천주교 성직자들은 팔당 두물머리에서 천막을 치고 4대강사업으로 없어지게 될 유기농지를 지키기 위한 농성을 시작한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전국 각지에서 4대강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대규모 야외 기도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앞의 두 종단의 기세에 조금은 가려져 있는 듯 하지만 개신교의 행보 또한 만만치 않다. 지난 4월초 1천여명이 모여서 한강변에서 진행한 부활절 예배를 시작으로 4대강공사현장 각지를 찾아다니는 기독교 성직자들의 기도행렬은 점점 기운이 커져가고 있으며, 그들의 요구는 정권의 심장부를 겨냥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현 상황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4대강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입장을 공식 천명하자 대통령은 서둘러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을 불러 종교계에 대한 홍보와 설득부족을 강하게 질책했다고 한다. 성직자들과 수많은 종교인들이 4대강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 단지 설득 부족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자신의 생각만이 옳고 천주교 주교단과 불교계의 큰 스님들, 그리고 개신교의 수많은 목회자들이 4대강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 4대강사업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치부하는 이명박 정부의 오만한 생각이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상황에서 어찌 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종교계 최고지도자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강변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것이 눈앞에 뻔히 보이는 생명에 대한 살육을 멈추라고 하는 일인데도 밀이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 궁예왕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미륵불이나 하느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이 오만함이 3대종단의 성직자를 거리로 내몰고 있고 그 결과는 어찌될지 역사가 이미 답해주고 있다. 그 참담한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지금이라도 당장 4대강사업을 중단하고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국민앞에 사죄하는 길 뿐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4월 16일자에 게재된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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