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강의 곁에서

2010.05.06 | 4대강

‘여강의 물은 월악에서 발원하여 달천과 합류하여 금탄이 되고, 앙암을 거쳐 섬수(섬강)와 만나 달려 흐르며 점점 넓어져 여강이 되었다. 물결이 맴돌아 세차며 맑고 환하여 사랑할만하다. …중략… 벼가 잘 되고 기장과 수수가 잘되고, 나무하고 풀 베는데 적당하고, 사냥과 물고기 잡기에 적당하여 모든 것이 자족하다. 멀리 바라보면 치악산·용문산 여러 산이 푸르게 뾰족이 솟아 연운의 아득한 사이에 출몰하여 기상이 여러 가지로 변하니 참으로 이른바 명구승지이다.’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조선 초 학자 서거정이 여강을 설명한 글 중 일부입니다. 여강은 지금으로 말하면, 경기도 여주 중심에 흐르는 남한강 중류 일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힘차면서도 맑게 굽이쳐 흐르던 여강은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강을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삶의 풍요와 행복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금빛모래 위로 갈댓잎의 노래가 흐르고 강변의 울창한 숲에는 생명이 넘쳤습니다. 이런 환경은 야생동식물의 훌륭한 보금자리였을 뿐 아니라,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를 막는 귀중한 보배였습니다.

최대 규모의 포크레인 서식지, 강이 죽어가고 있어!
하지만 밤낮없이 계속되는 4대강 사업으로 여강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불도저가 빽빽하게 모여 강과 강 주변을 파헤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생동식물들의 서식지가 포크레인 서식지로 바뀌면서 수많은 생명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해 지는 저녁, 붉게 물든 노을 비치는 강가에서 마른 목을 적시는 고라니와 삵 그리고 너구리, 그 위로 고요히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철새들의 아름다운 풍경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헤집어진 강변에서 알을 잃어버린 듯 서성이는 물떼새, 그 뒤에서 공사차량과 중장비들이 우글대는 삭막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사장에서 흘러나오는 흙탕물, 갈수록 심각해져
공사장 옆을 지나면 뿌연 흙탕물이 공사현장에서 강으로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오염을 막는다는 이유로 공사장과 강 사이에 오염을 방지하는 장비를 설치했지만, 엄청난 양의 흙탕물이 흘러나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뿌연 흙탕물은 물속에 햇볕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때문에 강물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에게는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나 물속 생명들이야 어떻게 되는지 상관하지 않은 채 공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야생동물의 천국, 어설픈 환경평가로 멸종위기종들 사라지게 될 판
현장을 다니면 다닐수록 수많은 야생동식물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법적으로 보호받은 야생동물들을 많이 마주합니다. ‘4대강 사업저지 범국민 대책위원회’ 현장모니터링팀은 지난 3월에는 가창오리를, 4월에는 표범장지뱀을 공사 현장에서 발견했습니다. 민물고기 동호회 ‘어살이’는 지난 2월에 이포보 공사현장에서 돌상어가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정한 멸종위기종 2급 야생동물입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에는 이들이 살고 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환경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수많은 멸종위기종들이 정말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강을 살리는 길, 아직 기회는 있어
현재 4대강 공사 공정률은 약 10% 정도입니다. 지금이라도 공사를 중지하면 아직 남아 있는 강과 습지, 모래톱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주말이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여강 곁으로 내려오는 많은 시민들이 있습니다. 지난 4월 10일에는 약 40명의 녹색연합 회원들이 다녀갔습니다. 비록 강 곁으로 올 순 없지만 죽어가는 강을 보며 가슴 아파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강을 살릴 수 있는 희망은 바로 생명을 사랑하는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일 때 생겨납니다. 법과 절차를 무시하며 강과 강에 기댄 모든 생명들을 죽이려고 온 힘을 쏟고 있는 정부를 막을 수 있는 길, 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에게 달렸습니다. 신경림 시인이 그랬다죠. ‘4대강 사업을 하는 사람도 천벌을 받겠지만, 이것을 못 막는 사람도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현재 여강 현장에는 생태지평, 불교환경연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에서 약 10명의 활동가들이 공사 상황을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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