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엔 포클레인과 불도저가 살고 있다

2010.05.11 | 4대강

야생동식물 서식지에서 건설 장비들의 서식지로
“끼이익 쿠웅쾅쾅캉”

포크레인 시동소리가 새벽을 가른다. 흰뺨검둥오리가 놀라 달아난다. 마른 목 적시던 고라니도 도망간다. 남한강이 잠에서 깬다. 벌겋게 파헤쳐진 강가로 덤프트럭과 불도저가 몰려든다. 강변에 있었던 울창한 버드나무와 갈대들은 모두 잘려 나갔다. 산새들의 지저귐은 사라지고, 수많은 야생화는 뿌리가 드러난 채 말라버렸다. 빽빽하게 모여든 공사차량과 중장비들은 강에 기댄 생명들의 터전을 파괴하는데 쉴 새가 없다. 야생동식물들의 서식지가 건설장비들의 서식지로 변했다.

황무지

제 자식 두고 온 둥지 찾아
불도저 뒤로 헤집어진 강변 서성이는
꼬마물떼새 어미의 울음소리가
바람을 멈춰 세운다

알 깨고 나올 새끼들 기다리다
덤프트럭 바퀴 밑으로 사라진 여울 헤매는
꾸구리 어미의 눈물이
강물을 멈춰 세운다

보랏빛 꽃망울 터트릴 꿈꾸다
포크레인 삽날에 뿌리 채 뽑혀 말라가는
단양쑥부쟁이 어린 새싹의 몸짓이
봄을 멈춰 세운다

2010년 4월은 너무도 잔인한 달,
푸른 강물 따라 피어나는 새 생명 뭉개지고
벌건 흙탕물 따라 피비린내 나는 욕망이 약동하는 계절

시린 잿빛 햇살 내리는 남한강엔
불도저, 덤프트럭, 포크레인

수백 년 굶주린 흡혈귀 마냥 우글댄다

힘없이 찍혀 죽어나가는 강에 기댄 생명들 앞에
바람도, 강물도, 봄도
할 말 잃고 멈춰 서 있다

금모래 빛, 갈잎의 노래
추억 속으로 잠기고 있다

멸종위기종, 단양쑥부쟁이를 파헤치다
“어, 표범장지뱀이다.”

“이쪽에는 단양쑥부쟁이가 엄청 난데.”

지난 4월 12일, 남한강 중류에 있는 도리섬에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멸종 위기에 처한 표범장지뱀과 단양쑥부쟁이가 눈에 띄었다. 너구리와 고라니가 다녀간 흔적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예전부터 아름답기로 소문난 도리섬은 한눈에 봐도 야생동식물들의 천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4대강 사업 대상지인 도리섬은 빠르게 파헤쳐 지고 있었다. 생태공원을 만든다는 이유였다. 불과 20일만에 섬 끝에서부터 500m를 파들어 갔다. 단양쑥부쟁이가 모여 살고 있는 곳에서 50m도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들어왔다. 단양쑥부쟁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한강 중류에 많이 모여 살고 있는 멸종위기 야생식물이다.

문제는 환경영향평가였다. 환경영향평가는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꼼꼼하게 환경 조사를 해서, 가능한 자연환경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하는 일이다. 그러나 4대강 사업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도리섬에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는 내용이 전혀 없었다. 환경영향평가를 엉터리로 한 채, 공사를 막무가내로 하고 있던 것이다.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는 확인을 했으니 공사를 멈춰야 했다. 공사 현장에 있는 관계자 뿐 아니라, 공사의 총 책임자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멸종위기종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공사를 계속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멸종위기종들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틀 후, 다시 현장을 갔다. 이번에는 4대강 활동가 뿐 아니라 공사 책임자들과 함께 갔다. 공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포크레인 삽질을 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단양쑥부쟁이 어린 새싹 수백 개체가 뿌리를 드러낸 채 나뒹굴고 있었다. 여러 번 공사 중지를 요청했지만 공사를 계속하더니, 결국 멸종위기종을 무참히 죽이고 말았다. 멸종위기종을 훼손하면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당장 포크레인을 멈춰 세웠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몇몇 환경운동가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공사 책임자도 잘못을 시인했다. 이미 죽어버린 단양쑥부쟁이를 보고 나서였다.

야생동물의 천국이 지옥이 돼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통령은 오늘도 4대강 사업이 강과 자연,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환경부 장관도 덩달아 가능한 더 빨리 공사를 해야 환경 파괴가 덜할 것이라고 헛소리만 하고 있다.

4대강 사업 10퍼센트, 희망은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히는 사람들이 있다. 공사장 인부들이다. 다리 위에서, 길 앞에서, 공사 현장에서 우리를 막아 세운다. 감정이 격해지면 걸걸한 욕지거리는 예사고, 몸싸움도 일어난다. 남녀 차별이 없다. 열대여섯 명이 떼로 몰려들어 한 사람을 질질 끌고 다닌다. 때론 포크레인으로 위협하기도 한다. 수질 측정하기 위해 강물을 떠 놓은 양동이를 발로 차버리는가 하면, 아예 양동이를 빼앗기도 한다.

가끔씩 하소연하기도 한다. 왜 힘없는 우리한테 와서 이러냐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기도 힘든데 왜 자꾸 공사를 방해하려 하느냐고, 자기도 4대강 사업이 미친 짓인 줄 알지만 자식들 가르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목 맨 그들의 목소리에 가슴은 더 답답해질 뿐이다. 직접 강을 손으로 죽이고 있는 공사장 인부들을 만나면,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우리의 목소리는 더 허무해져만 간다.

천벌을 받을 일을 하고 있지만, 하느님께 그들에게 벌 내려달라고 기도할 수 없다. 정말 벌 받을 사람은 오늘도 편안한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종처럼 부리며, 더 빨리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빽빽 소리만 치고 있는 그 누군가이기 때문이다.

공사는 지금도 계속된다. 밤낮없이 강을 파헤치고, 나무를 베어버리고, 철근을 박고, 시멘트를 바르고 있다. 폭약으로 바위를 깨버리고, 깨끗이 정화하지 않은 오염된 흙탕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야생동식물들은 갈 곳 없어 방황하고, 산새들의 노랫소리는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아름답게 남아 있는 습지와 모래톱, 여울이 있다. 4대강 사업은 이제 10% 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강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절망과 한숨으로 강이 죽어가는 모습만 바라볼 순 없다. 답답한 마음이 계속 되겠지만, 단 한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희망을 저버리지 않기로 했다. 따스한 꽃망울 피어나는 봄의 햇살이 다시 남한강가를 비출 수 있도록 오늘도 강가에서 절망 한 움큼씩 떼어 버리고 있다.

※ 이글은 <작은것이 아름답다>에 실린 글입니다.

현재 남한강 공사 현장에는 지난 3월부터 생태지평, 불교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에서 약 10명의 활동가들이 4대강사업 감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일 공사 상황을 확인하고, 수질측정 등의 현장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야생동물소모임과 같은 시민모임과 함께 야생동식물 현황 조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사 현장을 찾아 온 시민들을 안내하는 역할도 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문의 : 이선화(4대강범대위 현장모니터링팀) 010-9695-2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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