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고갈’와 ‘기후변화’에도 끄떡없는 도시, 오스트리아 귀씽(Gussing)

2009.07.22 | 재생에너지

월드워치연구소가 발간한 2009년 ‘지구환경보고서’는 기후변화 대안모델로 오스트리아 ‘귀씽’을 소개하고 있다. 헝가리와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귀씽은 1990년대 초까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다. 2만 7천여 명의 주민들은 옥수수와 해바라기씨유, 목재 생산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관광지라곤 12세기에 지어진 헝가리 귀족의 성 밖에 없었다. 높은 실업률과 인구감소로 골머리를 앓았던 귀씽이 지금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미래가 밝은 도시로 손꼽힌다. 유럽에서도 귀씽의 경험을 일컬어 ‘귀씽모델’이라고 칭한다. 도대체 귀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하자
귀씽은 유럽 최초로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용해 전기, 냉․난방, 연료 에너지 100%를 자립한 곳이다. 게다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5년 수준에서 무려 93%가 줄어들었다. 재생가능에너지 덕분이다. 1989년 농구국가대표선수였던 라인하트 콕이 고향으로 돌아와 시의 에너지정책을 맡으면서 귀씽은 변신을 시작했다. 라인하트 콕이 세운 최우선 목표는 젊은이들이 귀씽을 떠나지 않도록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없으면 안 되는 에너지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귀씽에서는 1992년 기준으로 연간 600만 유로를 에너지구입 비용으로 지출했다. 가난한 귀씽에서는 이렇게 에너지 비용을 지불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다행히 귀씽에는 풍부한 농업부산물이 있었다. 1990년대 초부터 ‘귀씽은 화석연료로부터 100% 독립한다.’라는 정책을 수립하고, 유채와 폐식용유, 나무와 가축 분뇨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시설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지자체에서 엄청난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

귀씽은 첨단 재생가능에너지 기술 전시장
먼저 귀씽시 예산에서 에너지 지출을 줄였다. 건물에너지효율화를 통해 에너지 비용을 거의 50%나 줄인 것이다. 그렇게 아낀 예산을 재생가능에너지 투자 예산으로 돌렸다. 1992년 30가구가 모여 있는 작은 마을에 목질계 열병합 발전소를 설치한 이후 귀씽 지역 전역에 목질계 지역난방시스템 설비를 하나씩 짓기 시작했다. 정부 보조금을 적극 활용하고, 재생가능에너지 신기술 시범 시설도 적극 유치했다. 다음으로 유채씨를 바이오디젤로 만들어 차량연료로 공급했고, 1998년에는 빈 공과대학의 자문을 받아 폐목재에서 천연가스를 추출하는 기술에 투자했다. 마침내 올해 6월, 폐목재를 가스화하는 상업 발전소를 완공했다. 150가구에 냉난방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고, 차량연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현재 귀씽에는 27개의 분산형소형발전소가 자리잡았고, 에너지생산으로 연간 1,400만 유로의 수익을 얻고 있다.

재생가능에너지, 일자리를 만들다
이렇게 석유나 가스의 급격한 가격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고, 10~15년간 고정가격으로 재생가능에너지를 공급하는 여건이 조성되자 귀씽에 기업이 몰려들었다. 1995년 나무를 연료로 열병합 발전을 하는 시설이 완공되자, 그 때 이미 석유보다 싼 연료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설비비용을 반영하면 목질계열병합발전소 건설비용이 더 비싸다. 그래서 설비구축 비용은 연방정부에서 보조를 받고, 낮은 연료비로 운영 경쟁력을 갖췄다. 보조금은 연방정부, 주정부를 통해 첨단에너지 시설 연구와 설치 명목으로 지원을 받았다. 피터 바다즈 귀씽 시장은 “처음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에 투자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귀씽이 수백만 유로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여 년 노력 끝에 지금은 재생가능에너지가 석유보다 25-35%정도의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재생가능에너지는 이미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에너지이다.”라고 전한다.

지역에너지 자립 정책을 시작한지 15여년 만에 50여개의 기업이 들어섰고 1,000여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목재건조 공장을 비롯 오스트리아 최대 태양광셀 생산 공장도 자리 잡았다. 공장이 들어서면서 서비스직도 생겨났다. 건축사무실, 경영 컨설팅회사, 재생가능에너지 연구소 등. 전에 없던 호텔도 2개나 생겼다. 에너지자립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귀씽 지역 주민들의 삶을 질은 높아져 갔다.

에코에너지랜드, 관광은 부수입

1995년 귀씽모델을 확산하기 위해 귀씽에 ‘유럽재생가능에너지센터’가 설립되었다. 유럽의 각 지자체 및 기업들과 계약을 체결하고,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컨설팅과 교육을 한다. ‘태양학교’를 통해 교육 하고, 지역 에너지 자립 모델을 설계하는 노하우를 전수하며, 온실가스 ‘0’ 발전소 설계와 에너지 효율개선 정보를 제공한다. 귀씽시장이 대표를 맡고 있으며, 에너지 전문가가 포진해 있어, 유럽 전역에서 귀씽의 성공사례를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생태관광 수익은 덤으로 따라온다. 2007년에만 3만 명이 귀씽을 방문했다. 에코에너지랜드(Eco-Energy Land) 지도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귀씽에서 어떻게 에너지를 생산해 지역주민들에게 공급하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각 마을마다 소형발전소가 있고, 주민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발전소에서 저렴하게 에너지를 구입한다. 재미있는 점은 마을마다 재생가능에너지의 원리를 설명해주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이 마을 어디에 상징물이 숨겨져 있는지를 찾아다닌 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여행자들은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열과 전기를 공급하는 호텔에서 묵으면서 귀씽에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화석연료’를 거의 쓰지 않고 생활을 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에너지고갈 위기에도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에서도 자유로운 귀씽. 귀씽모델의 핵심은 지역에서 나는 에너지자원을 잘 활용했다는 점이다. 지역 에너지자립을 이룩하기까지 지역 공무원, 교사, 과학자, 농민, 중앙정부 등 여러 사람의 참여와 도움이 있었다. 시작 초기에는 지역 내 공공에너지를 효율화하고 절약해서 생긴 예산과 중앙정부지원 예산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생산 시설을 설치했다. 지금은 이미 투자한 재생에너지 설비가 수익을 내고 있고, 거기에다가 지자체, 중앙정부의 지원, 유럽연합 차원의 프로젝트를 결합해 매년 새로운 재생가능에너지 생산 실험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귀씽모델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글 : 이유진 국장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