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스위치를 켜다!

2010.08.26 | 재생에너지

봄기운이 무르익어가던 지난 4월 17일 무주 푸른꿈 고등학교에서 몇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녹색연합에서 활동가 ‘엽집’도 왔고 푸른꿈 과학 교사인 곽진영 선생님도 참석한 자리였다. 청소년이 처음으로 기획하고 진행하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에너지 캠프를 기획모임이었다. 학교의 교육 이념이 생태이면서도 지구온난화랄지 에너지랄지 하는 것에는 그다지 실천적이지 못했던 기획단 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에너지캠프를 어떤 테마, 형식으로 진행할 것인지,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를 정하면서 기획단은 여느 때보다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한 기대감과 설레임이 원동력이 되었을까, 동아리 활동이라던가 여타의 여가 활동을 즐길 주말 시간도 매주 할애해 가며 기획단은 캠프 준비에 몰입했다. 회의가 부족하면 평일 오후에 기획팀, 진행팀, 홍보팀의 그룹 별로 모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 참가자들이 오기 전에 미리 세팅해놓은 태양열조리기. 저녁밥과 옥수수가 익어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캠프가 구체화 되며 여러 가지 논의해야 할 것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 중 가장 먼저는 캠프 참가 대상을 정하는 것이었다. 연령으로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은 너무 광범위 하여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고 성인들은 기획단이 감당하기 힘들지 않겠느냐 하는 이유 등으로 기획단과 눈높이를 같이 하는 청소년들을 캠프 대상으로 선정했다. 에너지라는 것으로 청소년들이 연대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캠프 참가 대상 이외에도 일정, 선발 방식, 구체적 프로그램 등을 논의 하며 기획단은 알게 모르게 배우며 성장하고 있었다.

날은 뜨거워지고 자연스레 매미 울음소리가 귓전에 맴도는가 싶더니 방학이 찾아왔다. 방학중에 캠프 준비는 에너지캠프 인터넷 카페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제는 녹색스위치를 켜요’라는 어엿한 캠프 이름도 생긴 후였다. 카페에서는 연일 논의해야 할 사안들이 올라왔고 기획단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항상 카페를 확인하며 캠프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7월 8일부터 참가자 모집이 시작되었다. 기획단은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안고 카페를 주시했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카페에 방문자가 늘어나고 신청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홍보팀이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같은 잡지나 녹색연합 사이트 등 이곳 저곳에 홍보해 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었다. 신청자들도 그랬을 테지만 기획단은 더욱 힘이 나고 기대에 차 캠프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 하루 물사용량은 20리터로 제한.(세탁기가 없으므로)

캠프가 정말 코앞으로 다가온 8월 6일, 기획단은 사전 준비와 리허설을 위해 캠프 장소인 학교에 미리 모였다. 캠프를 통해 계속 소통해서였는지 오랜 시간 함께 해서였는지 기획단의 만남은 자연스러웠다. 6일에는 캠프 일정과 룰, 캠프진행환경 등을 정비한 후 7일부터 본격적인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물도 제한된 양을 길어다 쓰고 식사도 태양열 발전기로 하는 등 캠프 기간의 룰을 기획단이 먼저 체험해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매일 아침식사를 자전거 발전기로 밥을 지어 하기로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생긴 것이었다. 자전거 발전기에 전기밥솥을 연결해 놓고 아무리 자전거 발전기의 페달을 밟아 봐도 도무지 밥솥에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발전기에 문제가 있는가 싶어 기술자에게 전화를 해 보자 발전기의 문제가 아니라 전력량의 문제라는 것이 밝혀졌다. 기획단은 아쉬움을 남기고 아침밥을 자전거 발전기로 짓기로 한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건물의 모든 전기를 태양광 발전으로 얻는 특별실에서 밥을 짓기로 하고 자전거 발전기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로 했다.

기획단의 리허설 기간은 이외에도 바쁘게 돌아갔다. 참가자들에게 소개해주기 위해 여름방학동안 무성하게 자란 농장의 풀을 베기도 했고 캠프지도를 위해 바이오디젤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학교 탐방 준비팀은 리허설을 하며 시간을 재고, 서로 조정하기도 하고 야외취침을 위해 반나절을 끙끙대며 텐트를 치기도 했다. 종일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영상을 찍는 사람과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는가하면 참가자들을 데리러 나가기에 어떤지 안성면까지 직접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오며 시간을 잰 사람들도 있었다. 날은 찌는 듯이 더웠고 그러다가도 한 번씩 배신하듯 비가 와서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기획단은 곧 있을 만남에 대한 기대로 힘든 줄도 모르고 그렇게 3일을 보냈다.

드디어 캠프 당일, 어쩐지 실감이 잘 나지 않으며 오전까지도 캠프준비를 바삐 하고 있었는데 정오 쯤 되자 한두 통씩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안성면에 도착했다는 참가자들의 전화였다. 이제 정말 캠프는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참가자들이 땡볕에 경운기와 자전거를 타고 속속 학교에 도착했고 기다리던 기획단은 개인 식수를 나눠주고 이름표를 달아주며 반갑게 맞이했다. 지구를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해 왔는지도 승차권을 받아 확인했다. 그리고 전력량을 아끼기 위해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는 룰에 따라 휴대폰을 걷자 참가자들은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친구와의 2박3일간 이별 앞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숙소인 기숙사로 안내한 후에는 캠프의 중심 아지트(?)라고 할 수 있는 쉼터로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가졌다. 기획단부터 시작해서, 자신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고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 결국 자전거발전기로 밥 해 먹는 것은 포기.

조별로 모여 본격적인 캠프가 시작된 것은 학교탐방시간 부터였다. 학교를 둘러싸는 숲길들, 생명이 돋아나는 것을 항시 볼 수 있는 살아있는 배움터 농장, 태양이 지나는 길을 따라 설계된 태양광발전 특별실들, 옥상녹화로 여름을 시원하게 나는 도서관, 학교의 폐수, 지하수가 모여 정화되는 생태습지, 그리고 그 길목에서 들리는 맑은 물소리. 자연을 닮은 사람이라는 교육이념을 가진 푸른꿈고등학교가 자연과 조화하는 모습이었다. 참가자들은 첫날부터 인간과 자연이 조화하는 모습을 배우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는 각자 가져온 흰 티셔츠에 캠프 슬로건인 녹색스위치를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 손에는 붓을 쥐고 티셔츠를 펼쳐놓은 채 어떻게 그려야 좋을지 씨름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기획단으로써 너무나도 보기 좋은 것이었다. 티셔츠를 말려놓고는 ‘재앙을 위한 레시피’라는 영화를 보았다. 한 가정이 1년간 오일다이어트를 해나가며 부딪치는 일련의 사건(?)들과 결국은 해낼 수 있다.라는 자그마한 희망을 던지는 영화였다. 영화는 쉼터 앞에서 참가자들이 직접 자전거 발전기를 돌리면서 보았고 태양열 발전기로 익힌 옥수수도 먹을 수 있었다. 풀벌레 소리는 은은하게 들려오고 별이 쏟아져버릴 것 같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밤하늘, 그리고 지구를 위해 땀 흘리는 자전거 페달소리. 캠프 첫날밤은 그렇게 소중한 것이었다.

캠프 둘째 날 아침 식사를 조금 일찍 마친 기획단은 하루를 여는 짧은 회의를 가졌다. 우천으로 인해 프로그램 몇 개가 변경되기도 하고 시간이 조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화두는 참가자들의 의지였다. 당일 아침, 여자기숙사가 생활용수가 있는 도서관에서 멀기도 했고 비까지 온 탓에 한 참가자가 샤워기로 머리를 감다가 진행팀에게 딱 걸린 것이었다. 기획단은 아침에 모두 모여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 플래카드도 석유로 만들어지니까. 반영구적인 티셔츠에 각자의 캠프로고를 그리자!

“우리가 에너지캠프라는 것을 기획하고 참여하기로 한 것은, 지구, 이를테면 환경이라던가 자연이라던가 하는 근본적인 것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희생하고 양보하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상생입니다. 우리가 물을 조금 덜 쓰고 전기를 조금 덜 쓰고 하는 불편한 삶은, 어쩌면 우리를 위해 희생해 왔던 수많은 가축들과 곡식 낱알들을 위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획단의 이 이야기는 캠프를 통해 기획단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지구를 위한 불편한 삶, 그것이 상생이고 우리가 연대하며 나아가야 할 길이었던 것이다. 참가자들이 그것 하나만 기억해준다면 이 캠프는 성공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날짜 선정에 실패한 것인지 태풍 뎬무의 영향권에 들어 하루 종일 지루하게 비가 내렸다. 덕분에 프로그램에 변경사항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 바이오에너지인 바이오가스 제작이 사라진 것은 기획단도 참가자도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대신 참가자들은 대체연료인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데에 몰입하였다. 다소 불쾌한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참가자들은 열심이었다. 오후에 있었던 설치미술시간에는 폐품을 가지고 조별로 작품을 만들었다. 태양광 발전기를 모티브로 만든 꽃은 독창적인 모습으로 재미있었고 폐품으로 괴물을 만들어놓고는 ‘이 괴물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은 무분별하게 소비해왔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 폐식용유로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중. 계획대로라면 우리가 타고 나갈 경운기에 경유 대신 들어갔을.

캠프 마지막 밤이었기에 장기자랑이 빠질 수 없었다. 청소년들의 어울림이 또 하나의 테마였던 ‘이·녹’캠프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각 조별로 준비한 장기자랑에 이어 기획단과 참가자들이 숨기고 있었던(?) 깨알 같은 장기들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밤은 무르익고 둘째 날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earth hour’가 찾아왔다. 지구를 위해 불을 모두 끄는 행사인 ‘earth hour’의 홍보 동영상을 본 후 자가발전 렌턴으로(미처 촛불을 구하지 못해) 서로를 비추며 한 시간 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earth hour’가 끝나고 다시 불이 켜지자 참가자들은 오히려 아쉬워하는 눈치이기도 했다. 분위기 있게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끝난 것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했을 것이고 이제야 좀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벌써 내일이 캠프의 끝이라니 하는 서운함도 있었으리라. 그래서였을까 불을 켜지 못해 금새 모두 잠들었던 첫날과는 달리 자가발전 렌턴으로 작은 방을 밝히고는 남자기숙사의 참가자들은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며 만남의 시간을 연장하고 있었다.

마지막 날은 일어나자마자 청소를 시작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2박3일간 머물렀던 곳을 깨끗이 치우며 참가자들은 캠프를 어떻게 돌아봤을까. 비가 와서 기념 식수(植樹)도 하지 못했고 경운기와 자전거가 아닌 학교 승합차를 태워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고 마지막 날은 썩 좋지 못한 일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만남의 소중함과 상생의 숭고함을 모두가 간직하는 캠프가 되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글 : 권우현 (푸른꿈고등학교 2학년 – 캠프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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