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탄소제로 마을을 꿈꾸냐구요? 재밌으니까, 필요하니까…”

2011.08.10 | 재생에너지

제1회 지역에너지학교 참가기


“왜 탄소제로 마을을 꿈꾸냐구요? 재밌으니까, 필요하니까…”


박경화(녹색연합 자원활동가)




공부하러 오는 섬, 연대도


 “개코 아일랜든지, 에코 아일랜든지 우린 고마 반대다!”


주민들의 반대는 말 그대로 격렬했다. 뭐든지 격렬히 반대했다. 통영 사람들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억쑤로 씨부맀다’. 작은 섬 마을에는 ‘카더라통신’마저 떠돌았다. 환경운동하는 사람을 빨갱이라고까지 했다. 섬에 딱 하나 있는 폐교를 외지인에게 팔아서 차라리 그 돈으로 보약 사먹겠다며 반대했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맞닿은 곳, 이곳은 연대도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연곡리 연대도는 50여 가구 80여 명이 모여 사는 작은 섬이다. 이 섬은 통영 달아선착장에서 배로 10분 거리에 있어 손에 닿을 듯 육지와 가깝고,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섬 마을도, 난대림 숲도, 몽돌해수욕장도 자연이 만들어 놓은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2007년 푸른통영21추진협의회와 통영시는 연대도를 지속가능한 마을로 만들기 위해 처음 연대도를 찾아들었다. 마을만들기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과 공감대 형성이다. 그러나 처음 주민들과 협의를 할 때는 섬 크기만큼이나 생각이 좁다고 할 정도로 답답하기만 했다. 어떤 제안이든지 일단 안한다고 했다. 토론은 언제나 산 너머 산이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고, 설득하고, 주민들의 마음이 모일 때까지 오랜 시간 진득하게, 집요하게 기다렸다.



결코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의 마음은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논이었던 묵정밭을 주민들과 일구어 다양한 꽃이 피어나는 다랭이 꽃밭으로 꾸미기로 했다. 밭 매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꽃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다시 이야기하고…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땀 흘려 심은 꽃이 피어나자 사람들의 마음도 열리기 시작했다. 다랭이밭 가꾸기 사업 덕분에 섬에는 처음으로 공공근로가 생겼고, 육십 평생 처음 월급을 받아본 분도 있었다섬 사람들의 격렬한 반대도 원인은 있었다. 조선 선조 때 이 섬이 통째로 팔리면서 보리쌀 한 가마니마저 다 빼앗길 정도로 설움이 깊고, 국립공원 규제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드물어지자 외지인에 대한 경계가 매우 심했던 것이다.


어촌계에서는 폐교를 사들여 생태프로그램을 열 수 있는 에코아일랜드 체험센터를 꾸몄고, 정부 지원으로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하고, 우리나라 섬 가운데 최초로 패시브하우스도 신축하면서 이제 연대도는 ‘탄소제로 섬’을 꿈꾸고 있다. 옛 사람들이 지게지고 나무하던 길을 다듬고 안내판을 세워 섬 전체를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는 ‘지겟길’도 꾸몄다. 섬과 바다가 함께 만든 몽돌해수욕장과 방풍림, 신석기 유적이 발굴된 연대패총, 옛 사람들이 봉화대를 세우고 왜적이 쳐들어오면 연기와 불로 위급상황을 알렸던 봉수대도 연대도의 볼거리다. 섬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이 사업이 바로 ‘에코 아일랜드 연대도 조성사업’인데, 이것이 성과를 얻으면서 2010년 행정안전부는 ‘명품섬 베스트10’에 선정했고, 섬의 가치를 알고 찾아드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보통 국립공원을 찾는 이들은 휴가를 즐기는 관광객이 대부분이지만 연대도는 ‘공부하러 오는 섬’이 되었다.


지루한 강의는 가라!


우리들 역시 연대도를 공부하러 먼 길을 달려왔다. ‘제1회 지역에너지학교’가 연대도에서 제일 유명한 건축물이자 가장 나이 어린 비지터센터, 패시브하우스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화천, 홍천, 정선, 강화도, 서울, 청주, 나주, 김제까지 전국 곳곳에서 에너지자립마을을 꿈꾸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굳이 가까운 곳을 짚으라고 한다면 부산, 진해 정도? 대안에너지와 생태건축 전문가, 통영 기후변화 리더들, 행사 스텝인 녹색연합 활동가까지 60여 명이 모인 자리는 패시브하우스라서 실내를 시원하지만 교육 열기는 뙤약볕만큼이나 뜨거웠다.



이렇게 이야기가 많은 섬을 지루한 해설로 듣기에는 뭔가 아쉽다. 그래서 첫 번째 프로그램은 조별 미션이다. 태양광발전기 촬영해오기, 인상깊은 문패 적어오기, 몽돌해수욕장에서 조가비 주워오기, 다랭이 꽃밭의 꽃 종류 조사해 오기, 에코체험센터의 비밀 알아오기, 봉수대 당산나무의 콩짜개넝쿨 찍어오기까지 조마다 미션을 가지고 연대도의 숨은 아름다움을 직접 찾아 나섰다. 궁금하고 신기한 것은 주민들에게 직접,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 먼 길을 달려온 정도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안에너지와 생태건축, 마을만들기사업에 대한 기본공부는 이미 마쳤을 것이다. 이미 고수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이번 지역에너지학교의 목표는 마을만들기를 꿈꾸는 이들이 서로 끈끈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실제 필요한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너른 마당을 열어놓는 것이다. 이 마당은 한바탕 잔치를 벌이듯 한번으로 끝맺는 것이 아니라 이번을 시작으로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다.


모든 프로그램은 이것을 목적으로 준비하고 진행되었다. 그리고 설명식 강의보다는 참가자들의 질문과 토론시간이 길고, 쉬는 시간도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자리로 배려했다. ‘에너지 자립섬 어떻게 만들었을까?’라는 주제로 연 통영의제21 윤미숙 사무국장님 강의는 주민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협력하게 되었는지가 핵심주제였다. ‘에너지 자립마을 디자인과 정책’을 강의한 녹색연합 이유진 에너지디자인팀장의 강의는 전 세계 에너지 자립마을의 흐름을 짚어보고, 어떤 정책과 제도를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를 나누었다.


‘농촌마을과 저에너지 주택’을 주제로 한 문화도시연구소 주대관 소장님은 흙과 나무로 지은 집만이 좋은 주택이 아니라 지역마다 적당한 집, 우리 시대에 맞는 합리적인 생태건축을 짓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어진 ‘마을과 대안에너지’ 프로그램에서는 대안에너지 고수들과 만남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이 마을만들기사업과 대안에너지에 대한 모든 궁금한 점을 적어내고, 이것을 전문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서울은 에너지마을 지원사업이 안 되나요?’, ‘코디네이터, 좋은 마을사무장 구하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연대도 패시브하우스의 장단점을 알려 주세요’, ‘가장 효과가 있는 바닥난방 방법은 무엇인가요?’, ‘에너지자립마을은 몇 년 걸릴까요?’… 질문은 높은 수준, 낮은 수준을 가지지 않고 마치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대안에너지의 전문가이자 앞선 선배인 강사들은 마을에 적합한 재생가능에너지와 적정기술 성공과 실패 이야기, 지금 우리나라 대안에너지의 현실에 대해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지금까지 대안이라고 굳게 믿었건만 아직은 기술력과 자본, 경험 부족 때문에 대안에너지는 실험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에 간간이 한숨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뜻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실험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마무리 프로그램이자, 이번 교육의 최종목표는 우리 마을의 에너지자립 계획을 직접 세워보는 것이다. 강의를 맡았던 대안에너지 전문가들이 마을마다 토론에 참여하여 아낌없는 조언을 했다. 어느 시대든 어느 곳이든 고수마다 전공과목이 있는 법, 전문가들은 한 마을의 토론에 머물지 않고, 일정 시간이 되면 다른 마을로 계속 이동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나누었다. 마을마다 주어진 조건이 다르고 주민들이 원하는 것도 다르다. 당연히 마을의 상황에 맞는 계획을 세우고 주민들의 발걸음에 맞춰서 진행해야 한다. 교육에 참가한 사람들이 속한 마을은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 있고, 계획단계에 있는 곳, 이제 뭔가를 시작해야 하는 곳까지 저마다 처지가 달랐다. 그러나 마음은 간절하고 때로는 절박했다.


여전히 실험중!


연대도 이장님은 아예 ‘태양발광소’라고 부른다. ‘태양광발전소’라는 말이 낯설어서 아직도 발음이 잘 안 된다. 태양이 발광해서 에너지를 만드니 틀린 말은 아니다.


“패패패패? 그 뭐로?”


패시브하우스도 잘 외워지질 않고 인버터는 절레절레, ‘에라, 모르겠다’이다. 하지만 물 건너온 낯선 이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섬 마을 전체에 태양광 100%를 보급하고 있고, 전기요금이 6만 원이나 나오던 집이 드디어 지난 6월에 1,500원으로 떨어졌다. 섬 사람들은 아껴 쓰는 습관이 배여 있고, 가전제품도 큰 것을 쓰지 않고, 집집마다 일찍 주무신다. 전기요금이 싸졌다고 낭비하는 사람이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환경에 대한 주민들의 의식이 높아져서 최근에는 몽돌해수욕장의 개발문제를 스스로 논의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연대도는 여전히 실험중이다.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협력해야 하는 일은 아직 바닷가 갯돌수만큼이나 널려있다. 그러나 에너지학교를 마친 참가자들의 얼굴은 ‘유레카!’, 새로운 발견을 하고 자신감을 얻은 표정들이다.



“우리 이장님도 모시고 올 걸 그랬어요.”


“다음 교육 때는 현장에서 직접 기계를 만져보면서 진행합시다.”


“기초반, 중급반, 고급반으로 나눠 수준별 맞춤교육을 해 주세요.”


“사업신청부터 운영방법까지 마을의 기본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주세요.”


참가자들의 요구조건은 처음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 그러나 한결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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