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바람을 경작하다

2010.11.09 | 재생에너지

<추천글> 사람들 사이의 평화없이는 자연과의 평화도 없다

오래 전, 안데스 산맥을 횡단한 어느 탐험대의 이야기입니다.
남미의 산악지대를 여행하던 어느 날, 짐을 져 나르는 셰르파(산악지대에서 살아가는 인디안)들이 갑자기 멈춰 섰습니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난처해진 탐험대는 급료를 올려 줄 테니 빨리 서두르자고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여전히 갈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현지인의 말을 아는 대원들이 대체 왜들 이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셰르파 대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는 여기까지 너무 빨리 걸어왔소. 그래서 마음이 아직 우리를 따라오지 못했소. 마음이 우리를 찾아 여기에 도착할 때 까지 기다려야 하오.”

에너지와 관련하여 전 세계적으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먼저 나쁜 소식은 석유가 고갈되면서 가격이 엄청나게 치솟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에너지의 97%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나라로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자동차, 반도체, 철강, 조선, 석유화학과 같은 에너지 다소비업종이 산업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기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소식 역시 석유가 고갈되면서 에너지에 대한 전 사회적인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검은 금(Black Gold)라 불리며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각광받던 석유가 기껏 150년 만에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길어봐야 기껏 40~50년 정도 지나면 종말을 고해야 할 처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석유재벌인 록펠러의 표현처럼 ‘악마의 눈물’이 되어버릴 처지입니다.
현대 사회는 석유를 통하여 문명을 유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석유는 전 세계 에너지의 35% 가량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석유가 없는 사회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정전사태가 발생한 도시는 무법천지로 바뀌고, 한 겨울 혹은 한 여름의 정전은 사회전체를 죽음의 도시로 만들어 버립니다. 특히 고층 건물과 아파트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고 맙니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 곁을 떠나본 적이 없던 TV, 라디오, 전화기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같은 가전제품은 고철덩어리로 전락하고, 최첨단을 자랑하는 각종 전자통신, 교통망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사회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어 버립니다. 어느새 현대사회는 에너지가 없이는, 특히 석유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렇듯 생활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에너지가 위기에 처해있다. 화석연료는 고갈되어 얼마 남지 않았다. 게다가 화석연료를 펑펑 써가며 그동안 풍족한 생활을 누린 대가로 지구의 환경마저 위기에 처해 버렸다. 지구온난화가 그것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안정화 된 지구상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불과 150년 만에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비례하여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는 매일 100여 종의 동,식물 종이 멸종을 당하고 있습니다. 단 하루 동안에!
하지만 지구는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스스로를 치유하기위한 지구 환경의 반격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그 재앙은 이미 시작되었고 해를 거듭할수록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갈림길에 서있다. 인류의 종말로 갈 것인가? 아니면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희망의 길로 갈 것인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길은 처음 가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이미 걸어왔던 길입니다. 현재의 우리 세대를 포함하여 불과 몇 세대가 더 많은 편리함과 풍요로움에 젖어있느라, 조상 대대로 걸어왔던 ‘그 길’을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프란츠 알트(Franz Alt) 는 우리의 미래와 관련하여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석유로 인한 전쟁이냐, 아니면 태양을 통한 평화냐?’
‘태양에너지는 환경파괴, 저개발, 전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환경보존, 발전,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시한다. 우리에게 평화의 새로운 세기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이가 바로 생태적 예수다. 예수 생태학의 이중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하나 – 사람들 사이의 평화 없이는 자연과의 평화도 없다.
둘 – 그러나 자연과의 평화 없이는 사람들 간의 평화도 없다.’

에너지를 전환한다는 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누려왔던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무조건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과의 화해를 이루어 한 차원 더 높은, 더 많은 생태적인 삶의 질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무한한 줄로 알았던- 유한(有限)한 화석에너지를 아껴 쓰고, 에너지의 효율화를 통하여 에너지 소비를 줄여 나가자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조금 소박하게, 겸손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더 많은 부를 차지위해 발버둥 치기보다는, 더불어함께 가난한 삶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지금처럼 ‘소비가 미덕’인 풍요로움과 굳이 비교하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예를 들자면 에너지의 절약과 효율화를 위하여 대중교통을 중심에 둔 교통정책을 세운다는 것이 무조건 승용차를 타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차로 가득 차있는 도로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나 홀로 자가용’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함으로써 교통체증보다는 쾌적하고 안전한 도로를 만들자는 겁니다. 게다가 에너지 절약과 대기오염을 줄일 수 있으니 일거3,4득 아니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위해서 짧은 순간이나마 지금과 같은 풍요로움을 포기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이 우리 몸에도 너무 익숙해져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것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왠지 모를 두려움까지 있기 때문에 쉬운 길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 놓여있는 길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필연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작은 실천이지만 더불어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마을을 에너지 자립마을로 만들려는 노력. 그것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 가는 길입니다. 마을주민이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가는 모습. 이러한 작은 실천이야말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날개 짓 입니다. 이런 노력이 잃어버린 공동체를 되찾는, 자원과 인간, 환경이 하나의 원을 이루며 순환하는 공생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입니다.
미래의 희망은 여기에, 에너지 자립마을에 있습니다.

부안 방폐장 반대운동 이후 한동안 지독한 트라우마(Trauma)를 앓았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 지,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재생가능 에너지의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태양의 치유를 받은 셈입니다. 에너지 독립을 화두로 농촌의 마을을, 마을 공동체를 새롭게 만들어 보자는 노력이 부안지역에서 피어났습니다.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두려움도 컸습니다. 조심스럽게 꾸준히 걸어가노라니, 뜻을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선머슴 같은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녹색연합에서 에너지를 담당하게 되었다면서…그리곤 바로 재생가능에너지 운동의 동지가 되었습니다. 전주와 제주도에서, 도쿄와 쿠즈마키에서…착한 에너지의 현장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이 책은 사무실에서, 책상머리에서 만들어 지지 않았습니다. 두 발로 기록한 에너지현장의 역사입니다. 저자와 같은 이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지금도 마을에서, 지역에서 노력하고 계시는 에너지농부들을 대신하여 감사를 전합니다.
에너지자립마을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산청, 통영, 화성, 원주, 나주, 임실, 홍성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계셔서 외롭지 않습니다. 마을이 희망입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 길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부안 등용마을에서
부안시민발전소 이현민 소장

* 10월에 발간한 “태양과 바람을 경작하다”의 추천사를 써주신 이현민 소장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