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덜 써야 잘 산다

2011.06.16 | 재생에너지

ㆍ영국 제로에너지 단지 베드제드, 난방연료·전기 대폭 줄여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미국인처럼 살면 지구가 4개는 있어야 한다. 지구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이 먹고, 쓰고, 버리는 것이다. 영국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살려고 하면 지구가 한 개 더 있어야 한다. 지구가 참 피곤하고 힘든 셈이다. 그래서 영국의 피버디 트러스트(Peabody trust)는 건축가 빌 던스터와 환경자문그룹(BioRegional)과 함께 지구 하나에 맞춰서 살 수 있는 주택을 짓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주택단지가 바로 영국 서튼구에 자리 잡은 베드제드다. 이름을 풀어보면 베딩턴 제로에너지 단지다.

2000년, 피버디 트러스트는 오수처리시설 부지를 싼 값에 매입해 건축폐기물, 철근과 폐목재를 재활용해 주택단지를 짓기 시작했다. 3층짜리 건물 3개동으로 100여 가구가 입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무로 외관을 마무리해 커다란 배 같아 보이기도 하고, 지붕 위 태양광 시설 사이로 군데군데 풀과 관목이 자라고 있어 집 자체가 숨을 쉬는 것같이 보인다.

지구 하나에 맞춰 집을 짓는 데도 에너지 계획이 중요했다. 먼저 벽 두께를 30㎝로 해 단열을 철저히 하고, 삼중창을 달았다. 지붕에 있는 닭볏 모양의 환기구는 열교환기 역할을 한다. 이런 장치들로 화석연료 없이도 난방을 해결한다. 지붕에는 태양광발전기와 태양열온수기를 설치했다. 건물을 남향으로 지어 창과 천창을 이용해 채광을 한다. 낮에 전등을 켜지 않아도 된다.

부엌에는 똑똑한 계량기가 달려 있다. 집안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의 전력 사용 총량, 가스 사용량을 보여준다. 전기 사용량이 일정량을 넘으면 경보가 울린다. 경보를 막으려면 집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 수를 가급적 줄여야 한다.

단지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열과 전력은 우드칩을 이용한 열병합발전소가 생산해낸다. 인근 마을에서 수집한 목재를 분쇄해 가스화시켜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면서 모든 과정을 자동화하려다 보니 기계적 고장이 잦았다. 주민들은 나무를 분쇄하고, 발전소를 가동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소음’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에너지 자립을 위한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하나하나 문제점을 찾아가면서 보완해나가고 있는 단계이지만 베드제드의 열병합발전소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멀리서 생산되는 석유와 송전탑을 통해 공급받는 대형 화력· 원자력발전소의 전기를 쓰면서 에너지 생산에 대한 환경적·사회적 피해를 특정 지역에 전가해 왔다는 점이다. 그런 시스템에 대한 반성으로 지역에너지(Local Energy)로 전환해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위험천만한 원자력과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화석연료에 의존해서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구상에 환경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재생 가능 에너지도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래서 에너지 생산에 대한 부담조차도 지역별로 나눠야 정의롭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베드제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영국 평균 대비 난방연료는 81%, 전기는 45%를 줄였다. 쓰레기의 60%를 재활용하고, 주민의 86%가 유기농 식품을 먹는다. 물 소비량은 보통 영국인 사용량의 절반, 자동차 이용도 절반으로 줄었다. 더불어 베드제드 주민들은 단지 내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이름을 최소 20명 이상 알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베드제드는 에너지 위기의 기후변화 시대에 우리가 어떤 집을 짓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유진<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팀장>
2011 06/21ㅣ주간경향 9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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