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일방적인 추진을 우려하며

2013.07.19 | 탈핵

[논평]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일방적인 추진을 우려하며

공론화위원회 첫 단추부터 제대로 채워져야

박근혜 정부는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발족하고(’13.4월), 논의결과를 토대로 임기내 중간저장시설 부지선정과 착공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00번째 국정과제인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 및 산업구조 선진화’의 내용 중의 하나이다. 이는 지난 2004년 제253차 원자력위원회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침에 대해 “국가정책방향, 국내외 기술개발추이 등을 감안하여 중장기적인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 하에 추진”하겠다고 결정한 것에 따른 후속조치로,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사회적인 공론화’를 통해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수십만년간 방사능 독성이 지속되는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는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도 못한 골치덩어리로 안전한 관리를 위한 해결책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그 전기를 쓴 이상, 배출된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할 책임은 우리 세대에게 있다. 또한, 안면도, 굴업도, 부안 사태 등 핵폐기물 처분장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던 예전의 방식으로 핵폐기물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사회적인 공론화를 통해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침을 정하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타당하다.

하지만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추진한다고 하면서 국회, 지역, 시민사회와 공론화위원회 구성에 대한 협의를 하는 와중에 이견이 좁혀지기도 전에 시간에 쫓기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함에 있어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어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사실상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는 진행되기 어려우며 반쪽짜리 공론화위원회가 될 것이 자명하다. 결국, 핵폐기장을 둘러싼 과거의 논란을 재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 대해 일부 원전 지역의 주민들은 사실상의 ‘고준위핵폐기장 부지선정위원회’라고 인식하고 있어서 공론화위원회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오해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 초기 제시한 국정과제가 일차적으로 제공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발족하고(’13.4월), 논의결과를 토대로 임기내 중간저장시설 부지선정과 착공 추진’이라고 국정과제에 명시되어 있으니 사실상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 부지를 선정하기 위한 논리제공, 들러리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런 오해를 풀기는 커녕 세부 추진계획에서 오해를 더 가중시켰다. 지난 7월 3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위원후보 인력풀 추천 요청 공문’에 첨부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추진계획(안)’에 공론화위원회의 논의주제는 공론화위원회가 독립성과 책임성을 가지고 진행한다는 원칙에 따라 논의주제는 위원회가 결정한다고 하면서도 ‘부지선정방식’과 ‘유치지역지원방안’에 대해서 굳이 예시를 들어 명시했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 거는 정부의 의도가 드러난 것이다. 이런 의제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아니라 부지선정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하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에 대한 사회적인 토론을 활성화하고 관리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사실상 고준위핵폐기장이 될 집중중간저장시설 선정을 전제로 부지선정방식과 유치지역지원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다. 결국, 산업통상자원부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고준위핵폐기장 부지선정위원회로 전락시켜 버렸고 원전 주변지역의 의구심은 사실이 되어 버렸다.

또한,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제기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위상에 대해서 아직 산업통상자원부는 해결책을 내어놓지 않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단순히 포화된 사용후핵연료 저장풀의 문제를 해결하는 위원회가 아니다. 사용후핵연료의 관리방안이라 함은 중간저장시설을 넘어 장기처분이냐 재처리냐의 관리방안에 대한 사회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실상의 재처리 기술인 파이로 프로세싱, 외교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원자력협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산업통상자원부의 자문기구가 아닌, 범부처 차원의 독립기구로 둬야 논의 결과에 대해 독립성과 책임성이 분명해진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시간의 촉박함과 총리실의 반대입장을 들어 기존의 위상 그대로 강행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단순히 고준위핵폐기장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이대로로는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용후핵연료 위원회 구성에 있어서도 산업통상자원부가 자의적으로 분야를 정해서 추진하면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 원자력전문가처럼 특정분야 전문가가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이견이 있다. 원자력전문가는 공론화위원회가 해당분야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할 때 자문을 구하면 되는데 위원회에 참여하게 되면 그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원자력 및 방사선환경분야의 전문가들은 친원전세력이 대부분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현실이다. ‘원자력’이나 ‘방사선’이 아닌 ‘공론화’와 ‘합의’에 좀 더 무게를 둔 위원회 구성이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후보 인력풀 추천을 하고 구성에 들어가는 것은 반쪽짜리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의지로밖에 안 보인다. 나아가 이견이 해소되고 협의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토론회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협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일방적으로 토론회 일정을 잡아 추진해버리는 것도 당황스럽기만 하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 구성에 대해서 시간의 부족을 들고 있지만 쫓기는 시간 탓을 하다가 제대로 된 길을 가지 않으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지난 20여년간의 정부의 잘못된 핵폐기장 추진정책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삼고 성과를 내려고 하다가는 노무현정부의 부안핵폐기장 논란을 재현하는 꼴이 될 것이다. 더구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지난 5년간 유보해온 것이 정부 당사자였고 시간이 늦어지게 된 근본적인 책임은 정부에게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론화위원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최근 5개월이 전부이다.

인류가 아직 풀지 못한 난제, 고준위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현세대가 인식하고 지혜를 모아가기 위해서 논의해야할 의제는 많다. 기존의 핵폐기물은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중간저장시설이 필요하기는 한 건지,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한 핵폐기물을 계속 발생시키는 핵발전소를 계속 확대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가 정부의 주장대로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는 재활용인지, 사용후핵연료 처분비용은 제대로 산정되어 있는지 등 핵폐기물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해야 할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이를 한국사회에 주어진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현세대가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도록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그 첫 단추부터 제대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2013년 7월 16일

(가)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 시민사회 네트워크

녹색연합, 에너지정의행동, 생태지평,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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